오랜만이에요. 날씨가 많이 춥네요.
절에 와서 그런지 당신께 편지쓰고 싶어졌어요. 차분히 생각이 가라앉아서 그런가봐요. 오랜만에 당신께 편지를 써요.
오랜만에 도심에 있는 절에 다녀왔어요. 불교를 믿는 건 아니지만, 고요한 절 분위기는 무척 마음에 들어요. 추워서 그런지 사람들도 별로 없네요. 생각을 펼칠 땐 명확했는데. 글로 쓰다보니 무언가 표현이랄까 명확해지지 않네요. 쓰다보니 구구절절 해지는 것 같아서. 그래도 절에 오니 쓰고 싶은 생각이 자연스레 하나로 모이면서 떠오르네요.
전 강렬한 삶을 살고 싶었어요.
타인의 시선에 의한 명성이나 명예 같은게 아닌, 나 스스로에게 빛나는 삶이요. 그래서 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그리 빛나 보이고, 매력적이더라구요. 또한 스스로 치열하게 살고 싶었어요.
어쩌면 이런 제 생각들이 누군가에겐 배부른 투정이겠죠. 네가 고생을 안 해봐서, 치열하게 안 살아봐서 그런다고. 맞아요. 전 치열하게 살아본 적이 없어요. 그건 제가 부유한 집안과 같은 환경 때문이 아닌, 스스로를 몰아부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죠. 누군가에겐 치열함이 선택이 아닌 타고난 운명이기도 해요. 저에겐 반강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였을 뿐이구요. 그렇기에 저 멀리 떨어진 3자 입장에서 그 치열함이, 강렬함이 매력적으로 느껴진 거겠죠.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니까요. 치열함에 있는 그 구질구질함을 겪어보지 못했으니까.
그렇다고 제가 부유한 건 아니에요.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도련님도 아니구요. 그저 생각이 좀 더 많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겁쟁이 소시민일 뿐이죠. 로또 당첨되길 바라며 종종 복권을 한번씩 사는 평범한 회사원이죠. 그것도 월급이 적은.
치열하게 사는 건 충분히 고통스럽고 피곤한 일이에요.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삶은 무척이나 매력적이에요. 마치 담금질을 하면서 칼이 명검으로 변해가는 것처럼요.
하지만 세상은 명검이냐 그저 그런 칼이냐 결과로 가치 판단을 하죠. 담금질 자체를 보지 못하고. 못 보는게 아니라 안 보는게 맞나. 저 역시 그래요. 기왕 칼을 쓰려면 명검을 써야지, 담금질이 좋다고 식칼을 쓸 순 없잖아요. 유용함이 다른데. 결과만 보는 건 어쩔 수 없나봐요.
앞서 말했던 과정이 매력적이라고 해서 결과가 매력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처럼. 치열한 삶들이 그 사람의 결과값을 보장해주진 않죠. 오히려 스스로 갉아먹혀 버리거나 닳아버린 사람들도 많아요.
그래도.
사람은 물건과 다르니까. 담금질 자체의 매력에 빠져볼만도 하죠. 여전히 겁쟁이라 내가 원하는 강렬한 삶, 치열한 삶을 살아가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괴롭고 힘든 구렁텅이를 이겨내가며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원하던 그 매력을, 그 빛을 건져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곧 12윌이네요.
슬슬 연말 준비를 해야겠어요. 연말에 저를 돌이켜 봤을 때, 과연 나는 내가 원하던 매력적인 사람이 되었는가 딥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