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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탄신일 편지

오늘은 석가탄신일이네요.전 무교이지만 그래도 선호하는 종교가 있다면 불교지요. 예전에 이 티스토리에서 밝혔다시피 전 불가지론자에요. 신이 있다고 믿지만 우리와 다른 차원에 있어서 우리가 인지할 수 없다고 믿는 쪽이지요. 그건 상상 속의 유니콘을 믿는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박하는 이들도 있지요. 그냥...믿음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죠. 논리적으로 이래저래 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까닭없이 사랑하듯이 그냥 그럴 것이라고 여기는 거지요. 편지를 쓰는 지금은, 신이 있다는 것조차 믿지 않게 된 듯해요. 그냥 현생에 충실한 느낌.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들었다고 하지요. 인간이 지니고 있는 탐진치를 벗어내고 있는대로 자연히 그러함이라는 점에서, 도가에서 말하는 무위자연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

일상 2024.05.16

살아가는 편지

비가 한참 내리더니 그쳤네요. 벌써 새벽이에요. 공기가 참 맑아요. 그래서 편지를 써요. 눈을 천천히 감아보세요. 코로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코로 숨을 내뱉어보세요. 코로 들어오는 공기가 머리까지 들어와 한번 돌아 다시 코로 나가는 걸 느껴보면서요. 뭔가 참 신선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숨 쉬는 건 정말 평범한 것인데 이러면 뭔가 신선하죠? 우리 삶이 그래요. 평범함이, 일상이 반복되죠. 그렇게 반복적으로 살다보면 반복적으로 살아지는거에요. 익숙해지죠.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에요. 어찌됐든 그건 살아가는 삶이고, 그것으로 행복하다면야.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이게 삶이라는 것인가.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이던가. 하고 말이지요. 아는만큼 보인다고 하죠. 사실 특별히 많이 알 필요는 없어요..

일상 2024.05.06

그냥 편지

뜨거운 여름 한낮의 매미의 울음 소리. 걸어가는 가족들 사이로 아기의 웅얼거리는 소리. 때때로 옆을 지나치는 조용한 차소리. 어떤 소리들은 계절감을 가지고 있어요. 무더운 여름날의 매미소리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꼭 그런 소리가 아니더라도 뭔가 향수를 불러 일으킬 것만 같은, 그리운, 혹은 편안한 느낌을 가져다주는 그런 소리들이 있어요. 혹자는 백색소음이라고 말할테지만, 전 그 소리들을 소음이라 부르고 싶지 않아요. 아무리 백색이라는 단어를 붙였어도 말이죠. 오히려 백색소음과 달리 자연스러운 소음일 수도 있어요. 단지 그 소리들이 내 안의 정서나 경험 등으로 어떤 기분을 불러 일으키는거죠. 잔비가 내리고 있어요. 모처럼의 휴일날 날씨가 흐리니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막상 잔비가 내리니 글 쓰고 싶어지네요. ..

일상 2024.05.01

적응

....결국 나도 사람이다.사회에 적응해야지.비판은 힘의 역학관계가 명확할 때, 가능성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변화시킬 힘이 있을 때. 그전까진 사회를 아무리 비판해봐야 끝에 남은 건 도태뿐. 사회를 개인이 이길 수 없으니까. 비판하는 이가 없는 사회는 죽어버린 사회지만 알 게 뭔가.외모나 과열된 경쟁 의식이 문제라는 걸 알지만, 그 흐름 속에서 그걸 비판해봐야 본인만 실패자, 투정 부리는 도태남이 될 뿐.고고히 홀로 이 사회를 완전히 벗어날 것이 아니면 대세에 맞추는게 편한 길이다.정상은 정상이고, 비정상은 비정상이다.제 아무리 비정상이라 외쳐봐야 본인만 도태다.사회에 순응하면 안된다.비판의식을 가져라.뭐 이런 것들이 나쁘진 않는데, 결국 사회 속에 살아갈 사람이라면 적응했어야 한다는 걸.이 사실을 ..

당연함과 익숙함의 대가

익숙하다는 건 당연시 된다는 것.당연하다는 것은 소중함을 잊게 된다는 것.당연한 일상 생활이라는 것은 없음에도 우린 일상 생활은 당연하다는 듯이 영위한다. 늘 하던 것이고, 늘 이루어지던 것이므로.깨끗한 옷, 깨끗한 집, 늘 맛있는 식사.그리고 편리한 사회적 인프라까지도.그것들은 모두 당연한 일상에 가려진 사소함이다.그 사소함들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당연하게 잊는다.망가진 인프라.망가진 삶의 양식.익숙함과 당연함으로 사소함을 잊은 대가를 우린 비일상이라는 미래로서 분명하게 치루게 될 것이다.p.s그래서 옛 사람들이 이성을 중시하고 감각을 그렇게 경계했는지도 모르겠다.p.s1이성이 광기의 시대를 가져오고, 그 이성이 돈의 가치로만 일의 가치를 측정하는 걸 보면 또 모르겠다.

감성의 시대

사람들은 요즘 시대를 감성의 시대라고 말한다. 애플이 감성적인 디자인으로 성공했고, 삼성이 갤럭시 플립으로 성공했듯이. 그러나 요즘 사람들이 감성을 찾는 것은 역으로 감성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인류가 야만의 시대에 확고한 기준점이 되어주었던 이성을 찾았듯이. 사람은 결핍된 것을 원하는 법이다. p.s 누군가는 그럼 왜 연대의식을 찾지 않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결핍은 원하는데 있지 아니한 것이다. 연대의식은 결핍된 것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무쓸모해진 것이다. 사회적 편의성이 잘 이루어질수록 사람들이 파편화되는 건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예의

우리가 가난에 대해 늙음에 대해 실패에 대해 조금만 더 예의를 가졌음 좋겠어요. - 82cook 어느 이용자의 글에서 p.s 기품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우리 사회는 가난을 멸시하고, 늙음을 우습게 알고, 실패를 비웃는다. 가난한 이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 틀딱이면서 꼰대짓하네. 응~ 실패자 말은 안들어. 우리 사회는 약자에 대해 매우 가혹하다. 약자도, 가난도, 늙음도, 실패도 모두 경쟁에서 도태된 것들이라 치부하기에.

사소한 정치

사소한 습관이 인생을 바꾸듯이 사소한 정치가 사회를 바꾼다. 정치는 매우 사소해서 직접 와 닿지 않는다. 당장 내가 투표를 한다고 해서 뭔가 내 삶이 바뀌거나, 사회가 바뀌거나, 나에게 직접적으로 이득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 사소한 것들이 어느 새 모여서 사회를 바꾸고, 바뀐 사회는 내 삶의 방향마저 바꿔버린다. 완성도는 디테일에서 차이가 나듯이, 사소하지만, 사소하기에 중요하다. 직접적인 변화를 이끌 수 없는 사람들에겐 이 사소함이 유일한 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