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한참 내리더니 그쳤네요.
벌써 새벽이에요. 공기가 참 맑아요. 그래서 편지를 써요.
눈을 천천히 감아보세요. 코로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코로 숨을 내뱉어보세요. 코로 들어오는 공기가 머리까지 들어와 한번 돌아 다시 코로 나가는 걸 느껴보면서요. 뭔가 참 신선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숨 쉬는 건 정말 평범한 것인데 이러면 뭔가 신선하죠?
우리 삶이 그래요. 평범함이, 일상이 반복되죠. 그렇게 반복적으로 살다보면 반복적으로 살아지는거에요. 익숙해지죠.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에요. 어찌됐든 그건 살아가는 삶이고, 그것으로 행복하다면야.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이게 삶이라는 것인가.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이던가. 하고 말이지요.
아는만큼 보인다고 하죠. 사실 특별히 많이 알 필요는 없어요. 지금 우린 정보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뭔가 막에 갇힌 듯 답답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면. 문득 내가 원하던 삶인지 의구심이 든다면. 다시 되짚어 볼 필요가 있죠. 내가 세상을 아직 몰라서 내가 원하던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지 말이죠. 선택은 선택지가 있을 때 할 수 있는거에요. 하지만 우리가 몰랐기에 선택지가 없을 수도 있지요. 아는만큼 보이는 거지요. 그렇기에 그 선택은 좀 더 무겁고 확실할거구요.
고향으로 내려와서 지낸 지 어느 새 4년쯤 되는 것 같아요. 제 삶의 방식과 어느 정도 맞아서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는데. 최근에 책도 읽고 인스타도 했더니 제가 시대를 못 따라가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여기선 굳이 따라갈 필요가 없으니까요. 최첨단 신기술이나 새로운 문화 트렌드도 생활에 필요해야 써먹는 법이죠. 다만 그 흐름들이 시대의 흐름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기도 해요. 결국엔 그 흐름들이 직업이나 유망함, 문화적, 사회적 소통 등으로 우리의 삶을 덮칠테니까. 여기서 그냥 흘러가는대로 사는 것이 진정 제가 원하던 삶이었을까요. 취직해서 힘들게 돈 벌고 그 돈으로 적당히 취미생활하며 사는 것. 이게 평범한 거고, 그 평범함이 소중한 건 알겠는데 이렇게 그냥 살아지고 있는게 과연 "내가 선택해서 살아가는' 삶인지는 의구심이 드네요. 어느 새부턴가 행복하다면 그만입니다-라는 핑계로 삶을 방치한 것은 아닐까 하고요.
취미가 없다면 여러가지 시도해서 찾아보고,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도중에 그만두더라도 일단 시작해보고. 그래서 익숙한 것을 최대한 피하고, 익숙치 않은 것들의 시도로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추구하는지, 그것을 바탕으로 내 삶의 방향을, 내가 원하는 방향을 잡아야지요.
그리고 그 위에 사회적 문화적 이슈를 찾고,작품이나 독서를 통한 교양과 통찰력으로 세상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내 삶의 방향을 쌓는 거예요. 나 자신을 아무리 잘 알아도 그걸 실현할 무대는 세상이니까. 세상에 대한 이해와 나에 대한 이해가 병행되어야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거죠. 그것이 옳든, 그르든, 가볍든, 무겁든.
그건 분명한 선택이고 선택으로 살아가는 거니까.
뻔히 알고 있었는데.
귀찮음과 피곤함에 못이겨 방치한대로 살아간거죠.
어렵다, 인생.
날씨도 좋고, 좀 더 주체적으로 선택해 살아가고 싶어서 이번에 편지를 썼어요. 당신은 살아지고 있나요, 살아가고 있나요. 우리 모두 잘 살아가길 바라며 편지를 이만 마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