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석가탄신일이네요.
전 무교이지만 그래도 선호하는 종교가 있다면 불교지요. 예전에 이 티스토리에서 밝혔다시피 전 불가지론자에요. 신이 있다고 믿지만 우리와 다른 차원에 있어서 우리가 인지할 수 없다고 믿는 쪽이지요. 그건 상상 속의 유니콘을 믿는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박하는 이들도 있지요. 그냥...믿음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죠. 논리적으로 이래저래 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까닭없이 사랑하듯이 그냥 그럴 것이라고 여기는 거지요. 편지를 쓰는 지금은, 신이 있다는 것조차 믿지 않게 된 듯해요. 그냥 현생에 충실한 느낌.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들었다고 하지요. 인간이 지니고 있는 탐진치를 벗어내고 있는대로 자연히 그러함이라는 점에서, 도가에서 말하는 무위자연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여튼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들었지만, 석가모니는 분명히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흔히들 말하는 신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네요. 보통 성인이라고 부르지요.
말이 길어졌네요. 여튼 저는 석가모니를 따르는 불교를 좋아해요. 석가모니를 따르기에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속세와 거리를 두는 점이 말이지요. 아무래도 속세라고 하면 뭔가 너저분한 느낌이 들잖아요? 그것으로부터 벗어난 종교들은 좀 신성해보이고요. 그런 점에서 천주교도 좋아하는 편이지요. 하지만 속세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속세의 그 너저분함이 과연 인간으로서 벗어나야 할 것들인가 싶기도 하네요. 속세의 한복판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것이야 말로 충실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여튼 불교는 속세와 거리를 두는 것에서부터 현대 삶에 지친 이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 같아요. 마음을 내려놓는다고 해야 하나. 실제로 그런 것을 추구하구요.
오늘 절에는 다녀오셨나요? 전 개인적으로 밀린 일들 좀 하고, 모처럼 낮잠도 잤어요. 요즘 피로가 쌓였는지 자주 졸리더라구요. 잠은행에서 빌렸던 잠들을 오늘은 좀 채워놓은 것 같아요. 오늘은 절에 좀 다녀올까 생각했는데, 생각으로만 그쳤지요. 1년 전쯤인가 부산에 삼광사에 연등과 촛불을 켜놓고 왔던 것이 기억나네요. 현실적으로는 연등을 켜거나 촛불을 켠다는 것이 내 가족들의 건강이나 삶에 아무런 상관이 없을텐데.... 그저 기원하는거겠죠. 기원함으로써 내 마음을 편안케 하구요. 오늘 절에 갔더라면 분명히 촛불이나 연등을 하고 왔을거에요. 이러고보면 종교가 불교가 되려나.
자비로운 날이라 그런지 오늘은 해피빈에 들어갔네요.
종종 콩으로 100원이나 200원이 남을 때 적당히 기부하고 말았었는데. 몇 달전에 뭐에 홀렸는지 해피빈에 들어가서 한참 봤던 것이 기억나요. 적당히 기부해야지 했던 것이 1만원씩 3군데를 했더라구요. 눈에 밞히는 곳이 많아서 저만의 기준을 정했던 것 같아요. 1회성 도움이 아닌, 궁극적으로 자립에 도움이 될 것. 재단이 성실하게 운영되고, 후기를 꼭 남기는 곳일 것. 되도록이면 환경이나 문화보다 생존에 필요한 곳일 것. 두루뭉실한 쓰임보다 쓰임이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는 모금일 것. 정도로요. 저는 보다 나은 삶도 중요하지만, 당장 생존이 우선이라 생각해서요. 기부했던 곳 3군데 모두 얼마전 후기가 올라왔었어요. 손글씨로 편지를 써서 직접 올리신 분도 있고, 재단 측에서 보고형식으로 올린 곳도 있었지요. 여튼 오늘 해피빈에 들어가서 또 둘러봤어요. 들어가서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막막해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많고, 그에 따른 예산도 하나하나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요. 한 명의 건강한 사회인을 만든다는 건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과 예산이 필요한 것 같아요. 심과 신이 건강해야 하고, 최소한 의식주가 무난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필요하죠.
오늘은 해피빈을 통해 자비를 실천하는 것으로 절에 가는 걸 대신하려고 해요.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나도 돈 벌어서 내 한 몸 건사하기 바쁜 사람인데. 누군가의 힘듦을 보고 함부로 동정하거나, 기부한걸로 뿌듯해하겠어요. 오늘 하루뿐인 일시적 기부지만, 나의 작은 기부가 누군가의 짐을 덜어서 미래의 발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