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처서의 편지

어둠속검은고양이 2023. 9. 1. 09:07

어떤 말로 편지를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처서의 기간? 슈퍼 블루문?
일단, 오래만이에요.

조만간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바쁘기도 했고, 피곤하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저녁에 글을 미처 쓰지 못하고 오늘 오전에서야 잠깐 글을 쓰기 시작하네요. 미루고 미루다 글을 쓰게 된 이 날이 공교롭게도 슈퍼 블루문이 뜨는 날이었네요. 어쩐지 보름달이 유난히도 크게 보이더라니. 편지를 쓰며 보름달을 꼭 한 번 보라고 말해드리고 싶었는데 지나버렸어요. 이래서 다 때가 있는건데.

얼마전엔 처서였어요. 저도 절기를 보는 편이 아닌데, 달력을 보다보니 밑에 쓰여진 절기를 보게 되더라구요. 입추는 가을의 시작을, 처서는 더위가 물러남을 의미하지요. 근래에 날씨가 많이 더워진 탓에 입추가 와도 그다지 가을이 온 느낌을 못 받겠던데, 처서가 지나고 나니 확실히 가을이 다가온 것이 느껴져요. 가령, 아침에 샤워하고 나오면 살짝 찬 기운이 느껴질 때, 불어오는 바람에 한낮인데도 공기가 탁 틔인 느낌을 받을 때, 새벽녘에 선선함이 다가올 때, 초저녁쯤에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올 때. 그런 것들이지요. 조금 있으면 언제 더위가 있었냐는듯 추운 겨울을 맞이하겠죠.

전 편지에도 썼다시피, 요즘 급격히 무너지는 느낌이에요. 염치와 눈치가 사라진듯한 느낌. 지독히도 눈치를 주던 나라였는데, 다들 그냥 놔버렸다고 해야 하나. 원래부터 사고방식이 특권의식이나 계급의식이 강했던 것이 눈치와 염치로 그나마 억제 됐던 걸까요? 눈치와 염치가 사라지니 주변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막나가는 느낌입니다.

일을 저질러 놓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미 일어난 일인데, 니들이 뭘 할 수 있는데? 같은 태도랄까. 이젠 미안해하지도 않고, 숨기지도 않아요. 처벌이 워낙 솜방망이라서 그런지 처벌 받으면 그만이야~! 응~처벌 받으니 죄값 다 치뤘어~ 떳떳해 이런 거 같아요. 처벌보다 이득이 크니까요. 그래서 하나둘 얼굴에 철판깔게 되는거 같아요.

.....예전에 그런 글을 본 적이 있었어요. 공동의 원칙에 벌금을 도입하게 되면, 죄책감을 돈으로 사게 된다고. 그래서 약속을 어기는 것에 처음엔 미안해하던 것도 벌금내고 말지 하면서 미안해하지도 않는다고.

관행으로 해왔던 부정부패가 밝혀지면 그래도 사과라도 하고 제스쳐라도 취했는데, 이젠 그 부정부패들을 일종의 직업적 특권으로 여기는거 같아요. 꼬우면 니들도 여기 취직해서 해 그런 느낌.

갑자기 급 우울해지네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면 늘 부정적일 수 밖에 없죠.

그래도 우린 우리만의 방식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라는 거대한 흐름을 우린 어찌 할 수 없지만, 우린 우리만의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어요. 누군가는 하잘 것 없는 사회적 부품일 뿐이라고 말하겠지만, 사회적 가치로 따지는 것이 아닌 존재 그 자체로서, 우린 여기에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길 바래요.

우린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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