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던 삶은 무엇이었을까.
왜 사는가와 같은 질문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어떤 삶을 원했는가지. 말과 행동은 이유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행해지기 때문이다. 이유는 늘 질문을 만들어내지만 그 질문의 답은 항상 정해져 있다. 바로 내가 원했다는 것. 살아가는 것은 결국 내가 원하던 것들을 이루는 과정이니까.
때론 우린 타의에 의해, 환경에 의해 원치 않는 말과 행동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삶에 일시적일 뿐이니 그저 보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삶은 결국 우리의 뜻대로 - 마음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실현시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하지만 그 전에 내가 원하던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살아가는 이가 상당하다. 병 속 벼룩 이야기처럼, 현실적 제약으로 생각조차 미리 각을 보기 때문이다.
목표는 마음이 시키는대로.
행동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렇게 살아야 한다.
내가 원하던 삶을 꿈꾸고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삶을 채워야 한다. 살아있기에 살아가는데만 급급하면 삶은 더 이상 삶이 되지 못하고 하염없이 시간만 보내게 된다.
....이건 나에게 하는 말이다.
정론이지만, 이 글을 쓰는 나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원하던 삶은 내 집 한켠에 다도실을 만드는 것이었다. 호리코타츠 형식으로 커다란 원목 테이블을 놓고 차를 마실 수 있게 꾸며놓고, 그곳에서 때때로 글을 쓰거나 무언가를 제작하며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그 다도실은 정갈하고 깔끔하되, 동양적 느낌의 소품들로 예스러운 느낌이 드는 곳이 되도록 짓고 싶었다. 허나 시간상 이유로, 금전적 이유로 미루고만 있다. 원하던 삶이 집과 연관있으니, 이를 이루기란 꽤나 요원한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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