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오래 전에 공동체주의가 바탕인 개인주의와 개인주의가 바탕인 공동체주의에 대한 글을 썼고,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집단주의와 개인주의가 바탕인 집단주의에 대해 언급했으며, 서양과 동양의 자본주의에 대해 공동체 의식과 개인주의를 엮어 글을 쓴 적이 있다. 세 주제 모두 다른 것 같으면서도 유사한 점이 많은데, 결국 말하던 것은 집단과 개인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로 인한 동서양의 차이점 분석이었다.
공동체주의 하에서 발생된 개인주의는 한국사회의 흐름과 유사한데, 공동체주의에선 공동체가 개인에 우선하기에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고, 오히려 그걸 강요한다. 그 결과 사회가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공공을 위한 희생은 비웃음거리로 전락하며 공공 직업들은 니가 돈 벌기 위한, 능력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으로 전락한다. 그렇기에 굳이 명예직으로서 대우받지 못하고 오히려 박봉으로 후려치기 당해 직업적 책임의식도 사라지게 된다. 과거엔 가스라이팅 혹은 집단으로서 강요라도 했지만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현대 사회에선 더이상 먹히지 않는다.
반대로 애초에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개인의 자유나 권리가 집단보다 중요하기에 공공을 위한 직업에 대한 예우가 다르다. 개인의 권리나 이득 이전에 공공을 위해 희생한다는 사고방식에 따라 사회가 돈으로 대우를 못해줄지언정 최소한 명예를 지켜주려고 한다. 그렇기에 꼭 돈뿐만이 아닌, 명예를 위한 직업 선택이 이루어질 수 있다. 즉, 애초에 공동체를 중시하는 사회였냐,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사회였냐에 따라 사회적 의식이 후대에 발전하는 양태가 다르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은 명백히 전자다.
그렇기에 한국에선 공공을 위한 직업에 대해 최소한의 존중도 없고, 모난 돌이 정맞는다는 말처럼 튀는 개인을 단체-사회적으로 말살하려 든다. 이와중에 이미 파편화 된 개인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기에 국가라는 추상적 공동체에 종속되길 거부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 개인들 역시 타인의 개성을 존중치 못하고 눈에 튀지 않는 모습으로 타인이 변하길 강요하여 그들이 싫어하는 국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모두를 믿을 수 없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믿을 것이 있다면, 그건 필연적으로 돈이다. 돈은 약속을 이행시킬 수 있는 도구라는 점에서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는 인간보다 신뢰가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그러니 일에 대한, 직업에 대한 책임의식은 필요 없게 된다.
책임의식이 있어봐야 명예는커녕 일과 제약만 늘어나고 오히려 돈은 늘기는커녕 줄어들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위험은 누군가에게 떠넘겨버리고 이득만 챙기게 되는 것이다. 사회가 무너진다고? 그거야 누군가 희생해서 늦추겠지. 누군간 희생해서 막아내겠지. 그리고 무너지지 않는 사회에서 꿀 빠는 건 사회가 무너지는 걸 막아설 때 가만히 있던 나고.
이젠 글러먹었다. 각자도생을 넘어 누군가 하겠지의 방관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사회와 책임의식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국가는 발악하고 있지만, 근본을 바꿀 생각은 없다. 뭐든지 스스로 지켜야할 때가 곧 조만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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