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본주의에서 자본을 빼는 순간 죽은 목숨이다.
2. 사람나고 돈 났지만, 그래도 돈이 난 후에야 사람이 나더라. 최소한 자본주의의 현실에서는.
3. 인간의 존엄성보단 생존이 우선 아닌가?
4.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지만 적어도 굶어 죽는 것보단 돼지가 낫잖아?
5. 빵이 충족된 후에야 펜과 예술을 찾고, '인간다움'을 찾는다.
6. 그럼에도 신념과 인간다움에 목숨마저도 버리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다고 해서 그 진실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상으로 책을 덮고 나서 떠오른 생각들이었다.
요 근래에 책을 통 못 읽었다.
쭉 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생각보다 생각할 것과 정리할 것이 많아서 워낙 친적을 나가지 못했다. 그 와중에 살짝 소개받은 내용이 마음에 들어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이정도의 소설의 양과 내용이라면 부담없이 쭉 읽어내려 갈 수 있었다. 나에게는 이정도 수준의 소설이 딱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 소설 속 내용 자체는 부담없이 다가오지 않았다. 화가 나고, 답답한 내용이었다. 소설이 쓰인 그 자체, 문체나 묘사 등에 화가 났다기 보단 소설에 감정이입이 된 탓인지,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 너무도 화가 나고 답답하고 거부감도 슬몃 들었다. 나는 문체나 묘사, 전개방식, 구도를 볼만큼 배운 사람도 아니거니와 그런 것과 거리가 멀다. 그저 내 주관대로 리뷰를 써본다.
우선 이 책에 8점을 부여한 것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끝맺음이었기 때문이다. 사건은 끝이 났을지언정, 등장인물의 삶은 전혀 끝나지 않았다. 뒤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보는 듯 하지만, 내 성격탓인지는 몰라도 결단코 좋은 결말을 상상할 수 없었다. 속시원하게 해결되지 못했던 그 끝맺음에 마이너스, 그리고 내용상으로 책을 온전히 읽기에 거북함이 들정도의 처절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처절함이 이 소설을 매력이었다. '나는 누구보다 참는 건 잘했다. 누구보다도 즐길 수 있었다. 다시 시작이었다.' 라는 이 마지막 문장에서 소설 <환영>이 시작되었다고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밝힌 것처럼 정말 그랬다. 정말 '다시 시작이었다.'
이 책은 바닥에서 바닥으로, 끝없는 바닥으로 낙하는 여성의 기구한 삶을 그리고 있다. 그럼에도 주인공 윤영은 그 바닥에서 다시 시작한다. 굴레를 벗어나려는 이 끝없는 새로운 시작은 어찌 이다지도 불쾌한 내용으로 인해 더욱 빛이 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 책에서 3가지를 좀 더 집중적으로 생각 보게 되었다.
1. 성매매
2. 가족의 의미
3. 자본주의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주인공 윤영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시원에서 하루하루 아르바이트해서 먹고 사는 여성이다. 딱 한몸 건사해서 사는 그녀는, 같은 고시원에서 만난, 공무원 임용 공부를 하던 착하지만 무능력한 (의지도 없고 열받게 만드는) 남자와 옥탑방에서 동거를 하게 된다. 이유는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고, 남편이 그 아이를 빌미로 그녀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겨우 풀칠하는 그녀에게 있어서 가족은 가족이 아니라 짐덩이다. 그의 하나뿐인 똑똑한,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워 줄 것 같았던 명문대생의 여동생은 명품짝퉁사업에 뛰어들어 말아먹고, 사채과 꽃뱀, 사기 등으로 도망다니다 죽었고, 남동생 준영도 대학교 가서 주인공에게 용돈타령이나 하고 있다 마지막에 주인공의 전세대출금을 갖고 튄다. 그리고 주인공의 엄마는 돈 못 버는 남편 대신에 아둥바둥 살다가, 간암으로 남편을 보내고, 주인공에게 매달려 살고 있다. 그녀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 살다 버림받고, 다시 주인공 곁으로 돌아오지만, 과거 주인공의 여동생에게 있는 돈, 없는 돈 다 빌려주었다 떼였던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주인공의 인감도장과 계약서를 찾아 주인공 남동생에게 전세대출을 받아주는 등 여전히 '가족'이라는 미명하에 주인공의 동생들만 챙긴다. (그러나 실상 그 가족에서 주인공은 배제되어 있다. 그녀는 주인공의 희생을 아주 당연시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도 하나뿐인 가족이니까라는 말로서.) 그녀에게 있어서 공부하는 남편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그의 무의지력에 놓은지 오래고, 살기 위해서 왕백숙집이라는 식당에서 몸을 팔면서 돈을 벌기 시작한다.(...김동인의 감자 느낌이 약간 난다.) 남편의 집안 또한 근근히 살아가고 그저 남편의 시험 합격이 희망일 뿐인 그런 집이다.....묘사와 쓰이는 용어, 내용도 상당하기에 어느 정도 각오하고 보시는 것을 권한다.
비참해도 너무나도 비참하다....
우선적으로 성매매에 대한 생각은 이것저것 너무도 많이 떠올랐다. 과거에도 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한 적도 있지만, 정말 어렵고도 조심스러운 주제다.
1.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성매매는 참으로 모호하다.(짧게 배운 어줍잖은 여성주의라 읽다가 불편하더라도 양해바란다.)
1)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성에 대해 주체적으로 자기성적결정권을 가진다는 면에서 보자면 이러한 성매매 또한 여성의 권리로서 인정해 줄 수 있지만, 2) 여성의 성을 상품화한다는 면에서 다시금 남성에게 종속시키게 됨으로써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것으로 작용한다는 면에서 무조건적으로 인정해주기도 애매하다.
2. 또한, 과거 성매매에 종사하시는 여성분들께서 성서비스'노동자'로서 인정해달라고 알몸시위를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에 대해 말이 많았다. 일부 여성들은 그 여성들의 주장 내용을 자신의 여성성과 동일하게 바라보고, 그러한 '뻔뻔한' 요구로 인해 자신의 여성이 그들과 똑같이 '저급해지는' 것으로 느껴 매우 공격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자. 우선 자본주의에서의 노동이라는 것은 노동자가 자신의 육체를 사용하여 일정 시간만큼 창조활동(서비스든 직접적 물건생산이든)을 하는 것을 뜻하며, 노동자들은 그 노동에 대해서 권리를 인정받고 있다. 즉, 노동자들 또한 육체를 이용해서 물건을 만들거나 서비스한다는 측면에서 '성서비스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물론 이에 대해 많은 반박이 있지만, 일단 제쳐두자.) 한마디로 육체를 이용해 자본을 벌어들인다는 메커니즘(육체의 상품화)자체는 똑같다는 것이다. 정직하게 손재주를 이용하여 만들었을 때는 육체의 상품화가 아니며, 성기를 이용하여 서비스를 만들었을 때는 육체의 상품화라고 하는 것은 명확한 구분 기준점이 되질 못한다. 그렇다면 인간성이 가벼워지고 수단화 된다고 말하는 것은 어떨까 싶지만, 이 역시도 또한 자본주의 하에서 육체는 이미 수단화된다는 것과 자본의 침투로 인해 그 안에서 인간성이 말살된다(대량 해고)는 것 역시도 충분한 근거가 되질 못한다. 그렇다고 마냥 성매매를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해주기에는 왠지 모르게 윤리의식이 땅에 떨어지고, 인간성이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최후의 보루가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다.
3. 그렇다면 성매매를 하지 않는 여성은 할 줄 몰라서 안하는가?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것이며, 적은 돈 받아가며 힘들게 아르바이트비로 생활하시는 여성분들도 많다....왠지 이러한 여성분들을 무시하는 느낌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찬성하지 않는 편이긴 하다. 인간의 자본 종속화에 아주 제대로 가속도를 붙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며, 이는 다시금 고스란히 여성의 육체 종속화와 함께 여성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태된)남성이 더욱 더 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자로 권리를 인정한다고 한들,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를 생기는 법이다. (물론 법의 사각지대가 무서워서 법으로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만..)
4. 요즘 광고나 인터넷을 보면 유사성행위 관련 직종(?)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보이며, 이는 수요가 그만큼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뒷세계와 연결되어 해외로 성매매 원정까지 갈 정도로 말도 많다.(남자 또한 동남아로 성매매관광 떠나니 할 말 없다....아무리 성욕이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라지만, 대체 왜 다들 못해서 안달인지....이성이 있고, 참을성이 있는 것이 인간 아니었는가?? .....베트남이었나? 코피노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많은 곳이...쨌든,) 그러나 이러한 유사성행위가 이 소설 속 주인공의 윤영과 같은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인지, 다른 대안이 있음에도 더 편하고 쉽게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선택인지는 잘 보면 답이 나온다. (요새는 방학동안에 아르바이트 식으로 화류계에서 일하는 애들도 있다고 하니.....)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매매를 하는 것에 대해 무조건적인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가기에도 그렇다. (좀 더 편한 선택으로 한 것임에도...)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만능주의와 함께 막대한 지출비와는 달리 적어진 수입은 살기 퍽퍽해진 사회구조에서 기인하는 것도 분명히 있다.
6. 또한 어디까지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으로 지정할 수 있으며, 어디까지가 살기 위한 성매매/편한 선택을 위한 성매매인지 구분하여 나눌 수 있을까.
.....'가족'에 의해, '운명'이라도 되는 듯, 지독하리만큼 피폐해져만 가는 삶 속에서의 살아남기 위해 성매매를 택한 윤영에게 우리는 과연 성매매는 옳지 못한 것이며, 인간의 존엄성과 윤리의식을 과연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화가 났던 부분은, 성매매를 택한 윤영도, 윤영을 그렇게 만든 환경도 아니었다. 그러한 절박한 환경에 처한 윤영을, 그 여인의 약점을 '돈'으로 사버리는 그 남자들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러한 인간들이 없었다면 과연 윤영을 아이를 키울 수 있었을까...각종 고지서와 밥값과 분유값과 기저귀 값을 낼 수 있었을까....그냥 쥐약먹고 셋 다 동반 자살하지 않았을까.....참으로 얄궃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없다는 것은 결국 목숨이 없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존엄성도 일단 생존하고 나서부터 있는 것이었다. 배운 것 없어 그저 닥치는대로 처절하리만큼 살아가는 윤영에게 존엄성 따위는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성매매, 자본주의에 대해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독하지만 계속 읽게 만들어 현 사회를, 진실로부터 외면하지 않기를, 좀 더 생각해보기를 권하듯이 찌르고 있었다.
두번째로 가족이었다. '가족의 탄생'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보면, 피로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서도 가족으로서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오히려 피붙이인 동생(배우 엄태웅)을 집에서 쫓아낸다. 가족이라는 정의를 우리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과연 피를 나누었다고 해서 가족일지....실은 우리들 대부분의 가족은 해체되고 있다. 각자 벌어 먹고 살기 바빠서 아이를 낳지 않고, 부모님을 뵙는 것 마저도 빠듯하다. 용돈까지 준다고 한다면, 그 또한 무시무시한 지출이지만, 그 용돈이 없으면 부모님세대는 먹고 살 수가 없다. 아니, 용돈으로 부족해서 페지를 줍고 다닌다. 다음 자식 세대를 교육시키고 나면 현재 세대들은 답이 없다. 연금 들 돈 조차도 없다...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주인공 한명을 희생시키고 그 위에서 저리 살아가는 이들이, 저 흡혈귀 같은 존재들이 과연 가족일 것인가.....
왜 우리의 주인공은 그렇게 욕하고, 분노하면서도 결국 연을 끊지 못하는가.....마지막에 엄마를 다시 받아주고, 그로 인해 남동생에게 전세계약 대출금을 날리고 다시금 그녀는 성매매를 하러 가게 된다.
간혹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가족간의 불화로 인해 본인의 삶이 침해를 당해 압사 당하기 직전인 이들이 종종 보인다. 그리고 그들에게 네티즌들은 따끔하게 일침을 놓는다. 가족이라고 해서 다 같은 가족 아니고, 일단 본인이 살아야 하니 가족 인연 끊고 사는 것이 답이라고...
그녀를 힘들게 하는 엄마, 남편이지만, 그렇게 다시 꾸역꾸역 모여 산다. 그들 때문에 하나 낳은 딸 아영이의 다리 치료도 제대로 못 해주고 있다. 그녀는 딸의 다리 치료를 위해서라면 평생 몸이라도 팔 생각이다. 가족의 삶을 갉아먹어 본인의 삶조차도 유지못하게 하는 것이 과연 가족인것일까...그렇다고, 역경으로 인해 쉽게 가족이라는 틀을 무너뜨린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니, 애초에 가족이라는 틀로 개인을 붙잡아두는 것이 과연 진정 제대로 된 '가족'제도 인가... 우리는 가족의 정의를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읽으면서 가슴을 후벼파던 몇 문구를 소개하며 이 리뷰 아닌 감상문을 마치고자 한다.
- 엄마가 평생 몸을 팔아서라도 네 다리 고쳐 줄게.
- 희망이 있다는 사실이 희망이었다.
- 나도 아이가 두려웠다. 아이가 나의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이기 때문이었다.
- 나는 누구보다 참는 건 잘했다. 누구보다도 즐길 수 있었다. 다시 시작이었다.
'취미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자미상, 미쓰다 신조 지음 (0) | 2014.08.27 |
---|---|
적군파,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지음/임정은 옮김 (0) | 2014.08.04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이문열 지음 (0) | 2014.06.29 |
제 6의 물결 - 제임스 브래드필드 무디, 비앙카 노그래디 지음 (0) | 2014.03.17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오찬호 지음 (2) | 2014.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