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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이문열 지음

어둠속검은고양이 2014. 6. 29. 07:00

추락하는것은날개가있다

저자
이문열 지음
출판사
N/P | 1993-12-1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소설(국내소설) D3-1초판 : 1988년 11월 05일 08판...
가격비교글쓴이 평점  

이 책에 대한 평점은 순전히 주관적인 것에 의함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10점을 주고 싶었으나, 뭔가 모르게 확고한 것은 한 발 빼게 되는 것이 인간의 심리가 아니던가? 그래서 8점 줬다.
선배가 추천해준 책인데, 아....이 책을 추천해준 선배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바이다. 너무도 흥미진진해서 하루만에 다 읽었다.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어서 헌책방을 알아보고 있다. 조만간 사러 갈 생각이다.(최대한 깨끗한 걸로 직접 보고 가져와야지...)

20대 임형빈(법대생)의 서윤주를 향한 불꽃같던 사랑 이야기.
동거까지도 했던 그들이었으나, 20대 초반의, 현실이 보이지 않았던 그 폭염과도 같았던 사랑은 결국 서로를 향해 불태우고서 현실에 의해 차갑게 식어버렸다. 그렇지만서도 이런 사랑을 해보고 싶은 것이 또한 인간의 욕망이 아니던가 싶다.
20대가 지나 30대가 되어서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윤주에 대한 형빈의 광기에 가까울 정도의 집착과 사랑은 결국 그들을 서로 이끌게 만들었으나, 역시나 그 불 같은 사랑은 서로를 태워버린 채로....죽음이라는 비극을 가져왔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서로를 향해 같이 추락한다는 그런 비극적인 결말이 왜 그렇게도 마음에 들고, '사랑'이라는 진정성을 느끼게 해주는지는 애매하다...보편적으로 사랑하고, 결혼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짝짝짝. 이 어찌보면 올바른(?) 결말이고, 해피 엔딩이고, 즐거움인데도, 역설적으로 함께 추락한다는 비극이 오히려 사랑을 더욱 빛나게 해준다. 지금은 뭔가 진부하게만 느껴지는 슬픈 비극인 로미오와 줄리엣보다도, 이 임형빈과 서윤주의 사랑이 비극적인 '사랑'을 확고히 보여주었다....이 둘이 그 때, 그 문리대에서 한순간의 스침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점은 이 소설을 읽어본 이들은 다들 한번쯤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어땠을까? 그리고 윤주가 정신을 차리고 살았더라면? 혹은 임형빈이 제대로 성공한 후에 결혼했더라면? ....여러 가정들이 책을 읽는 동안 곳곳에서 스쳐 지나갔다.

윤주를 통해 난 그저 미래의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현재를 메마르게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았다. 불행히도, 오늘날에도, 윤주가 그리도 싫어하던, 현재의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것은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는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아메리칸 드림....대신에 그와 유사한 것들을 찾아서 끝없이 해메이고 다니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보인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아메리카 드림처럼 한순간에 활짝 필것을 꿈꾸는 여성이 길을 헤매이고 있을지 모른다...
윤주는 어느샌가 자포자기를 하고 회피했다....이미 끝나버려 아픈 것인데, 그것을 자꾸만 바라보게 함으로써 현실을 더욱 무겁게 만들고 아프게 할 필요가 있을까....그러나 결국 그 대가는 너무도 컸다. 회피는 결국 눈 앞까지 다가왔고, 그녀를 끝내버렸다.

대체 어떤 점이 그리도 서로를 향하게 만들었을까....그리, 서로를 태우고 태워 녹여버리게 만들었을까....
윤주에 예상했던 바대로...(비록 10년이나 지나서 끝났지만, 뭐 그 당시에 예상대로 헤어졌지만) 둘은 끝났다....

신기하게도 많은 부분이 공감되고, 씁쓸하게 스쳐지나갔다.
서윤주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그냥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는 그저 그런 여성으로 보일뿐이지만, 결단코 그녀는 그저그런, 자기합리화만을 주장하며 개인의 허영심과 사치를 부린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과 맞서 싸웠고, 자신의 사랑을 위해 사랑과 싸웠으나, 그 사랑에 치이고 만 여인이었다. 그녀의 삶은, 그 문리대에서 임형빈과 마추쳤던 그 순간, 이렇게 될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아니,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둘은 반드시 어떤 파국으로 흘러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처음부터 하나의 총으로 인한 살인사건으로 시작하지만) 이 둘의 관계가 파국이 아닌 결말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왜 그녀는......그리도 그랬나 싶다가도 뭔가 이해가 된다.

......실은 이 말이 하고 싶었다.
그녀의 삶이 비극적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삶 속에서의 그녀가 이해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씁쓸하게도 공감된다는 것...내 일순간의 과거를 보는 느낌이기도 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이 글이 탐탁치 않다....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막상 쓰다보니 뜻대로 써지지 않는다....
책을 덮자마자 짤막한 감상문을 써두었던 글이 있어 추가해본다.

윤주...그녀는 형빈을 잘 알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단지 고시공부하는 쑥맥의 남자일지언정 그의 깊은 내면속에는 자신과 본인 스스로도 불살라버릴 수 있는 그의 불타는 열정과 사랑을 말이다. 그것이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던 그녀는 그와 거리를 둔 채 충분히 이성적이고도 계획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격정적인 사랑에 점차 늪으로 빠져 들어가고 말았다.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라고 형빈에게 물어보고 있을 때, 이미 그녀는 그가 어떤 상태인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 특유의 위험에서 벗어나려는 감이 충분히 경계심과 주의를 주었음에도 그녀는 그의 사랑이 싫지 않았다.
혹은, 이성이 이미 마비되어 있는 상황이라 잘 되어 가고 있다는 그의 말을 의심조차 못하고 믿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그녀의 예감대로, 불안히 흘러가고 이 사랑에 대한 행동들의 최종형태는 바로 현재로서 최대한 함께 향락을 일삼는 것.
사랑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아름답게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모습 속에서 과거가 언뜻 보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