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런 책들은 평점을 얼마나 줘야할지 모르겠다.
리뷰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임을 알지만, 책을 평가할 때 무언가 기준점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8.5점이 적절한 것 같다. 정정한다. 다시 곱씹어보고, 후에 독자와의 대화부분을 읽어보니 꽤나 좋은 작품이다. 9점이 좋은거 같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점은 당시의 생존자로서 '아우슈비츠'에 대해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고 있다는 것과 매우 담담한 문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그 당시의 상황과 생각에 대해 생생히 담아졌음에도 절제가 느껴지는 점이 매우 좋았다. 인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극한의 상황에서의 인간과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이런 책 하나쯤은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참고로 작가는 이탈리아계 유태인으로서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고, 그의 출신 때문에 가장 밑바닥의 수용자였다. (운좋게도 후에 화학전공을 인정받아 화학공장에서 '육체적으로 편한' 근무를 할 수 있었다.)
작가의 말에서도 작가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로서, 이 책은 이미 말려진 그들의 죄와 잔혹성을 밝히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 측면의 '조용한 연구'를 위해 쓰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을수록 말그대로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에게 있어서누가 어떻게 죽든 간에 오늘 아침에 나올 죽 한 그릇이 중요하고, 물뿐인 윗부분의 죽보다 건더기가 더 많은 밑부분의 죽을 먹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수용소에 있는 자들은 노예일뿐 그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인간'으로서 '벌'을 받는 것이 아니다. 끝없는, 그냥 살아가는 것일뿐. 삶이라고도, 벌이라고도 감히 말할 수 없다. 벌은 인간에게나 주어지는 것일뿐이다. 이 책은 매우 덤덤하게 그 안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극한의 상황에서 도둑질과 구타, 폭력은 당연한 것이며 그들에게 있어서 미래란 없었다. 그저 살아간다는 것이 중요했다. 늘 허기진 배를 조금이라도 채우기 위해 경쟁해야 했고, 새로 들어온 얼빵한 수용자들을 등처먹어야 했으며, 그안에서 어떻게서든 좀 더 살기 위해 거래, 사기, 도둑질 등 각자의 모든 재능과 노력과 운과 수단이 동원되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각자가 배워왔던 문화와 가치관이 행동들로 드러났고, 그 행동들은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생존하게끔 만들어주기도 했으며, 기록의 산물로 태어나기도 했다. 작가의 생각에 영향을 미쳤던 말이다.
(인용)
'수용소는 우리를 동물로 격하시키는 거대한 장치이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곳에서도 살아남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기 위해, 똑똑히 목격하기 위해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최소한 문명의 골격, 골조, 특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애햐 한다. ....(중략) 마지막 남은 것이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지켜내야 한다. 그 능력이란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작가를 비롯해 대부분의 수용자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수용소에 익숙해지면 결국 죽음이라는 것뿐이라는 것을. 수용소는 일을 착취하는 동물을 키우는 곳이지, 포로를 놔두는 곳이 아니었다. 일을 착취당한 끝에 몸이 망가지거나 병들면 가스실로 가야했고, 혹은 과로사 당하기 마련이었다. 그곳에서 노예의 삶을 순응하듯, 순응하지 않아야 했다. 노예로서 하루하루 구타가 없는 것을, 허기짐을 약간 면할 수 있음을 감사해야 했지만, 노예의 삶처럼 일을 해서는 아니 됐다. 일을 많이 할수록 돈을 많이 벌고, 많이 먹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기선 모두가 모두의 적이거나 경쟁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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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들었던, 혹은 작가가 아우슈비츠에서 생각했던 몇몇 것들을 인용해본다.
작가는 카베에 머물기도 했었다.
카베(환자들 수용시설)에 들어오기는 무척 까다롭다. 대부분은 되돌려보내지지만, 몇몇 통과한 이들이 이곳에 올 수 있다. 다만 치료가 힘들거나 노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 환자들은 가스실로 보내지고, 간단한 치료를 통해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는 정도의 환자들만 이곳에 남게 되는 것이다. 효율성으로 따지는 인간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알 수 있다. 카베 안에서 작가는 '우리의 인간성이 아주 연약한 것이며 이 인간성이야말로 우리 생명보다 더 위태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극한의 상황에 있을 때 남아있을 인간성이 있을지, 인간성을 벗기고 나면 인간은 동물이 되는지....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인간으로서'의 자각과 틀, 문명의 조각을 지킬 수 있을지...많은 생각이 들었다.
(인용)
'삶의 의미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모든 힘줄 속에 뿌리박혀 있다. 이것이 인간 본질이 지닌 속성이다.'
(인용)
'나는 '선'과 '악', '옳음'과 '그름'이라는 단어가 수용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지 한번 생각해보라고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다. 우리가 스케치한 그림과 위에 예시한 예들(도둑질)을 토대로 세상의 일반적인 도덕이 철조망 이쪽 편에서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각자 판단해보시기를.'
(인용)
'인간들을 뚜렷하게 구별짓는 두 개의 범주가 존재한다는 것 말이다. 그것은 구조된 사람과 익사한 사람이라는 범주다. ....중략... 보통의 삶에서는 그리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보통 사람은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성공하거나 추락할 때 옆 사람들의 운명과 연결된다. ....중략.... 그러나 수용소 안의 사정은 이와는 다르다. 여기서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한시도 쉴 수가 없다.'
(인용)
'아우슈비츠에서 환자들도 새벽 4시에 기상한다. 침대를 정리하고 씻어야 하지만 서두르거나 엄격할 필요가 없다. 5시 30분이면 빵을 나눠주는데, 얇게 잘라 침대에 편안히 누워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정오에 죽이 배급될 때까지 다시 잘 수 있다. 점심식사 후 4시까지는 오후 휴식이다.'
(인용)
선발과 출발 사이(가스실로 보내는지는 것을 의미한다.)의 2~3일 동안 희생자들은 두 배의 죽을 지급받는 특권을 누린다. 터무니없는 자비심 때문인지, SS의 명령 때문인지는 모른다. 희생자는 두 배의 배급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 권리는 어느 누구도 침해해서는 안된다.) 착각으로 인해 두 배 죽을 못 받은 희생자는 두 배 죽을 받기 위해 가만히 서서 계속 기다린다. 카드를 확인한 배급자가 다시 배급을 해준다. 배급이 정확히 주어지자 곧 죽을 그 희생자는 죽을 먹으러 침대로 간다.
--------------------------------------fin.
인간의 밑바닥?과 인간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극한의 상황에 몰렸을 때 나오는, 인간성을 한꺼풀 벗긴 인간 본연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본연에 대해 본능적으로 쓴 것이 아닌, 절제와 이성, 사유가 들어있다는 것을 생각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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