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평가는 순전히 주관적 평가임을 밝혀둔다.
이 작품의 첫 소설,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사랑을 믿다' 라는 단편 소설이 어찌나 이리 마음에 와 닿는지.
소재, 문체, 소설의 양, 간결함 등등 이 모든 것이 온전히 이 소설, 그자체로 하나라는 느낌을 주었다.
이 소설은 삼중의 액자식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만, 전혀 복잡하지 않게, 매끄럽게 이야기가 연결된다.
남자 주인공이 술집에 들어가며 과거를 회상하고, 그 과거 속에서 여자와 나눴던 그 대화와 상황, 생각을 풀어내고 있다.
이 소설은 그저 흔하디 흔한 사랑 이야기이며, 사랑이 끝난 후 '사랑을 믿지 않는다'는 그런 이야기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이 소설은 마치 사귄지 2~3년 된 커플같다. 격정적이었던 사랑의 한철이 지나고 다들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는 그런 느낌의 그런 시기의 소설같다. (실제로 사랑이 식어 매너리즘에 빠진 경우도 있으나) 사랑하는 이를 멀리서 관조할 수 있을 때의 잔잔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나이 먹은 사람들의 사랑이라고 할까? (실제로 이 주인공들은 30대다.)
그녀는 이제 나른한 오후의 눈을 가지고 있다고 남자는 말한다. 삼년 전 그녀는 사랑의 실연을 겪고서 큰고모를 찾아간 후 철학관으로 착각해 가정집에 있던 세 명의 여성을 보게 된다. 그녀는 그 여성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 후 그녀는 실연을 극복하게 된다. 아마도, 그녀는 그 때부터 나른한 오후의 눈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매우 특별하다. 내가 말하는 사랑의 특별함이란, 사람들이 말하는 그 느낌의 특별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2년전 사랑의 실연을 어떻게 극복했냐는 그녀의 친구 말에 보이지 않던 사소한 것들로 미세한 각도를 틀어보라고 말한다. 사랑에 처음 빠졌을 때, 사랑은 매우 특별하게 느껴진다. 마치 '사랑'이 '별' 이라고 하고, 사랑 외의 사소한 것들이 A, B, C, D....이런식인 것이다. 주변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은 '별'이 아님을, A, B, C, D와 같은 알파벳처럼 E같은 것임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나는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라고 느끼는 시기라고 말했는데 - 나는 매너리즘에 빠졌다기 보단, 서로가 서로의 삶을 공유하게 되어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이는 시기라고 생각하지만...보통 여기서 여자분들이 사랑이 식어다고 여기기 십상이다.) 사랑은 실은 그와 같다. 다른 사람들이 평범하게 사랑하고 이별하듯이 그녀의 사랑 또한 역시 그런 것임을,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삶이고, 다른 사소한 것들처럼 하잘것 없음을 그녀는 깨달았을 것이다. 나는 이런 의미로 사랑이 특별하다고 말한 것이다. 사랑하는 동안에는 사랑은 별이다. 그러나 사랑은 별이 아니다. 다른 사소한 알파벳처럼 마찬가지로 똑같은 알파벳이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는 순간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똑같은 사랑었는데 말이다. A,B,C,D....무수히 많은 사소한 것 들과 마찬가지인 알파벳 E인 사랑이 있는데, 그 사랑을 E가 아닌 별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착각들이 사랑을 사랑답게 만든다. 사랑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러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하잘 것 없음에도 그 사랑을 깨닫는 순간 사람은 변화를 겪는다. 여기의 남자와 그녀는 그것을 알았다. 사랑이 하잘 것 없음을, 그러나 그 하잘 것 없음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그 차가운 진리를 시리도록 받아들이기만 하면 됐다.
사랑은 잡을 수 없는 환영과 같다.
사랑은 사랑하는 순간에만 특별하게 존재한다. 제 눈에 안경처럼 사랑에 빠지는 순간 사랑이 존재하고, 제 눈의 안경이 벗겨지는 순간 하잘 것 없는 다른 것들과 똑같은 것임을 깨닫지만, 그 때의 사랑은 전처럼 빛나지 않는, 무언가 다른 느낌이다. 여전히 같은 사랑인데 말이다.
여기서 나오는 몇몇 문구는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
이곳에 기억이란 오지 않는 상대방을 기다리는 방식이자, 포즈임을 배운다.
그녀는 대낮 같은 나의 기다림을 알아채지 못한다.
사랑이 하잘 것 없음을, 그러나 그 하잘 것 없음이 변화시킨다는 진리를 시리도록 받아들이면 됐다.
그들은 왜 사랑이 하잘 것 없다고 했을까...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은하계 지구에서, 전세계 대한민국, 서울 이 곳, 이 시간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도 나도, 그 사람도 함께 사랑해야지 연인이 될 수 있기에...그러나 그 사랑은 조금만 시기를 빗나가도, 서로가 보내는 신호를 한쪽이 알아채지 못한 순간 사랑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주 미묘한 톱니바퀴처럼, 무언가 조금만 틀어져도 이루어지지 않는 아주 섬세한, 그런 '하잘 것 없는' 사랑...하지만 그 '까다로운' 사랑은 특별하지도 않고, 다른 사소한 것들처럼 일반적이며, 삶일 뿐이다. 그렇기에 사랑은 그 하잘 것 없지만, 그 사랑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우리는 그 진리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됐다.
사랑이 끝난 후, 뒤늦게 깨달은 사랑, 그러나 그 시기를 놓쳐기에 사랑할 수 없음을, 그렇기에 뒤돌아보면서도 그 시린 진리를 받아들인 채로 가는 것임을 이 소설은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회상과 이야기를 통해서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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