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이 책...매우 유명한 작품이다.
다들 들어봤을 책이며, 영화로도 나온 책이다. 나온 지가 꽤 된 책이지만, 꾸준하게 증쇄가 되고 있으며, 2002년에 번역 개정판이 나온 뒤로 2014년까지 71번 증쇄가 이루어졌을 정도로 인기많은 책이다.
이번에 본의 아니게 책을 선물로 받을 기회를 얻었다. 그 때 DVD 봤던 기억을 살려 이 책으로 골랐는데, 아...고르길 너무나도 잘한 느낌이다. 영화와는 정말 또 다른 느낌이다. 영화에서와 책에서의 결말을 비슷하지만, 영화에서는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다. 역시 소설이 빛나는 이유다. 더 길게, 더 자세히, 내적 묘사까지도 가능하다는 것. 소재의 탁월성, 그 상황에서의 인간 본연의 성질에 대한 고찰, 그러나 지루하지 않는 대단한 흡입력까지도....이 책의 후속작으로 눈 뜬 자들의 도시,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등 총 도시 3부작이 나왔다. 책을 읽을 때 불편한 점이 있다면, 이 작가...기호를 쉼표와 마침표 외에는 쓰지 않는다.....거기다가 하다 못해 대화를 했을 때 구분되게 줄 바꿈이라도 해주지....책을 읽으면서 혼란이 오지는 않았지만 불편했다. 작가의 문체를 알게 된 이상, 출판사에서는 작가 그대로의 문체를 번역하고자 그대로 썼을 거라 생각하지만, 처음에는 일부러 저예산으로 하려고 번역을 이렇게 했나???? 왜 이래??? 생각했다. 사실 그 점에서 마이너스(-)를 감히 주었다. 그러나 그 불편에도 끝까지 쭉 읽어나가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
작가 주제 드 소자 사라마구는 포르투칼 출신의 작가로 도시 3부작 이외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그의 작품에 대한 가치가 인정되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눈먼 자들의 도시가 대표작으로 여겨지도 하는데, 콕 찝어서 대표작으로 말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그래도 그만큼 상당한 소설이다.
약간의 스포가 있다.
1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인데, 특이한 것은 고유명사가 나오질 않는다. 주제 사라마구는 고유명사도 어지간해서는 쓰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고 한다. 여기서 주인공은 누구일까? 일단 안과의사의 아내로 보여진다. 어느 날 한 남자가 갑자기 실명하게 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생각과는 달리 어둠컴컴한 것이 아니라, 백색으로 하얀 세상만 보인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그리고 서서히 비극은 시작되는데, 그와 접촉했던 인간들도 하나 둘씩 백색 실명을 하게 된다. 소설 속 당국의 생각을 빌려보자면, 이 실명은 전염병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전염되는지 알 수가 없다. 그 환자들의 눈은 멀쩡했으며, 아무 이상이 없는 것인데, 어찌됐든 백색실명인 상태다. 그리고 그 실명이 나타난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것으로 보아 강력한 전염병인 이상 어쩔 수 없이 최대한 격리시키는 것이 답이다. 이 전염병에 대해 조사를 해야 하는데, 눈이 멀어버리니 어느 누가 조사를 하려 할까....어찌됐든, 그래서 의사와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 검은 색 안경을 썼던 여자,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의 부인, 그 외 인물들이 하나 둘씩 정신병동 건물로 끌려오게 된다. 그리고 아직 눈이 멀지 않았지만, 한 번이라도 그 주위에 있었던 잠재적 보균자들은 오른쪽 병동에, 눈이 먼 이들은 왼쪽 병동에 두고, 병에 대한 원인과 진단이 내려질 때까지 식량을 조달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맹인들을 위해 통제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전부 다 맹인인데, 그것도 갑작스럽게 되어버린. 그들을 위해 통제해줄 '눈이 보이는 인간'이 없다. 오직 한 사람, 안과의사의 아내만이 눈이 멀쩡하다. 의사의 아내는 거짓말로 눈이 멀었다고 한 채 의사와 같이 이 병동으로 들어왔다. 끝까지 눈이 멀어있는 척을 해야만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병동에 오는 식량의 양도 문제고(적어서), 배변욕구도 문제고, 모든 게 다 문제다. 이 병동으로 오는 사람들은 늘어만 간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인간들은 어떻게 행동하게 될 것인가..... 모두가 눈이 멀었다. 부끄러운 모습을 눈치 볼 필요가 없다. 너도, 나도. 배는 늘 허기지다. 성욕도 마찬가지로 남아있다....과연 이 상황에서 어떻게 인간은 '조직'을 만들어, 살아갈 수 있을까. 식욕, 성욕은 남아있고, 눈은 멀었고, 그로 인한 행동의 제약은 매우 심각하고, 귀찮다. 밖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턱이 없지만, 우선 현관문을 나가면 군인들에 의해 난사를 당한다는 그것만 알 수 있다. 의사 아내는 이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우리는 이 안의 상황을 통해, 제도와 조직과, 법과, 윤리와, 이기심, 인간의 본연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볼 수가 있다. 영화에서는 밖으로 나가게 된 후의 일은 짤막하게 나온 것으로 기억하는데, 소설에서는 밖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이 할당되어 쓰여져 있다. 밖에 나온 의사, 의사아내, 첫번째 남자, 첫번째 남자 아내, 검은색 안경 쓴 여자, 안대를 찬 노인, 꼬마애....이 7명은 '아내'에게 의지하여 살아가기 시작한다. 정신병원 바깥 또한 전혀 온전치 못한 상황이다. 모든 도시, 국가, 전 세계가 눈이 멀어버린 상황이므로. 자세한 것은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은 역시 후회없는 선택이었다. 영화도 추천하고, 책도 추천한다. 책 값이 전혀 아깝지 않은 책이다.
소재, 상상력, 흡입력에서 +를, 앞서 말했다시피 읽기 불편하게 만든 문체?에서 -를 주었다.
추가1.
주제 사라마구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일까.
성악설일까? 인간 본연의 모습은 악하다고? 그렇지만 '눈이 먼 상태', 즉, 타인의 시선이 사라지자,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가 도둑질, 탐욕, 강도, 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났음에도 그런 사람들 안에서 자신과 무리를 지키고자 하는 눈 먼자들이 분명히 있었다. 오히려 의사 아내(유일하게 눈을 뜨고 있는 자)가 장님들을 괴롭히고, 죽이고, 왕처럼 행동하는 것이 더욱 '성악설'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재미는 다소 반감되었겠지만...작가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눈 먼 자들과 의사 아내가 각각 악함과 선함을 대표하고, 그 차이는 단지 타인의 시선이다. 라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비록 눈 먼자들이 의사 아내에게 많은 행동적인 부분에서 의존을 하고 도움을 받았지만, 결코 그 의존은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눈 먼자들은 의사 아내에게 심리적 울타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보았다. 눈 먼자들을 여섯이나 험한 세상에서 부양해야 하는 것이 그토록 힘들고, 심적으로 지치게 만들어도, 그들은 끝까지 함께였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인간의 사회성과 제도가 아닐까. 그리고 인간 본연의 신체에 의존적인 모습도.
인간은 사회를 구축해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사회는 모두 인간이 가장 기본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선행을 행하는 것도 전부 개인에게서 나오고, 그 개인들이 뭉쳐서 사회를 만든다. 그리고 그 사회, 무리를 구성함으로써 인간은 자신만의 울타리를 만들고 보다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 개인은 '정상'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다. '정상'이라는 말에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하지만, 두 손, 두 발, 두 눈, 두 귀....심신이 건강하고, 아프지 않은 그런 사람이 기본 구성원으로 상정되어 있으며, 그 바탕 위에 사회가 세워져 있다. 인간이 이룩했다는 찬란한 문명과 제도는 결국 인간의 신체가 '정상적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정상'이지만 말이다. 의사 아내가 갇혀 있을 때 나타나던 인간의 폭력성과 욕구불만, 탐욕은 '신체'에 의해 일어난 것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배고픔'이라는 최소한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 크다. 살기 위한 욕구, 소유의 욕구로 인해 이러한 일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눈이 멀지 않았더라도, 무리를 짓고 규칙에 맞게 생활하는 것이 좀 더 오래 갔을지언정 결국 싸움이 일어났을 거라 100프로 확신한다. 또한 그 법과 제도도 '인간'을 지킨다는 미명하에 개인에 대한 억압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그러한 제도마저도 정부는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고, 우리가 신뢰하는 정부와 사회와 제도는 결국 그 구성원이 져버리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눈이 멀어버리고 사람들은 전부 최소한의 가족공동체만 이루며 살아간다. 물론 여럿 뭉치기도 하나, 결단코 많은 수를 넘어가지 못한다.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무리를 구성하고, 그 외 것은 다 놓아버린 채로.
이 책이 매력적인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사회와 제도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는 것을 일면 보여주는 것 같지만, 또 그러한 사회와 제도가 존재하지 않으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다는, 사회와 제도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마치 동전의 앞뒷면을 모두 보여주는 느낌이다.
'좋은 작품은 하나의 진실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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