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세상사 편지

어둠속검은고양이 2024. 12. 21. 11:40

정말 오랜만이에요. 정말로.

오늘은 여유가 생겨서 편지를 써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 모르겠네요.
사실 전에도 몇 번 쓰려고 했는데,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잠들기도 했고, 쓰려고 하니 일이 생기기도 했고, 뭐 그래요.

세상사가 다 그렇죠.
해야할 일은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시간은 늘 부족하죠. 그래서 이건 나중에, 저건 나중에, 이러다가 한 주, 한 달, 한 해가 다 가도록 못하는 일들이 많아요. 회사에 있으면 늘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가요. 일 마치고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대충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잠들곤 하죠. 이런 취미도 하고, 저런 취미도 하고 싶었는데. 새롭게 시작하려고 책도 샀는데 결국 첫 장도 못 폈네요. 어찌보면 제가 게으른 탓이죠.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핑계로 안 했으니 말이에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다들 시간을 아껴가며, 귀찮음을 이겨내며 하는 거죠. 열심히 자기계발을 하며 사는 사람도 많고, 이렇게 저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도 많아요. 각자의 인생, 각자 알아서 살아내는 거죠.

세상사가 그렇더라구요.

아, 그 전에 요즘 꽤나 시끄러운 사건이 하나 있었죠. 그 전에도 여러 사건이 있긴 했지만. 이번 사건은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라서 언급해봤어요. 역사에 '만약에...'라는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성공했다면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삶이 바뀌었을꺼에요. 어떤 이에겐 일생일대의 기회가 됐을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겐 참혹한 시련이 됐겠지만, 좋든 싫든 무언가 변화가 됐겠죠? 그래도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많은 이들이 불행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지금도 그 여파로 많은 이들이 경제적으로 힘겨워하고 있잖아요? 전 삶이 단순해서 그런가 아직까진 여파가 없네요. 아, 제가 사놓은 주식이 좀 떨어진 것뿐? 회사도 다니고, 나름대로 주식 및 펀드, 저축 등으로 자산관리도 하고 있답니다.

다시 돌아와서, 세상사가 그렇더라구요.

누군가에겐 잔인하고, 누군가에겐 자연스러운 일이고.
사람은 동물과 다르게 주변 환경을 바꾸는 존재라고 하죠. 그게 장점인데. 인간이 이루고 있는 이 사회에선 그게 부딪침으로 나타나내요. 자신의 의지를, 사상을,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주변을 바꾸려고 해요. 그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기에 서로 부딪치는 영역이 나타날 수 밖에 없지요. 전 사실 그런 부딪침이 싫어요. 그냥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 존중해주며 살았으면 해요. 하지만 이건 불가능해요. 그 영역이라는 지점이 개인의 영역으로 국한된 것이 아니거든요. 단순하게 예를 들자면, '대중교통시설 인프라를 이용하는 사람으로서 대중교통을 이용할때 적정 수의 사람만 태웠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관철시키려든다면, 그로 인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제약이 생기는 사람이 생겨나겠지요. 그렇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제약을 당하지 않기 위해 맞설 수 밖에 없어요. 그런 거에요. 게임은 서버가 허락하는 한, npc나 아이템 등을 통해 타인을 제약시키지 않고 얼마든지 자신의 편의를 늘릴 수 있지만, 현실은 물리적 제약 때문에 불가능해요.(경제학에선 이를 경합성이라고 하지요.) 앞선 예시처럼 현실적인 예시 말고도 타인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과 같은 무형의 가치들도 마찬가지에요.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인 에르메스는 무형의 가치인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재고를 없애버린다고 하지요. 말이 길어졌네요.

결론은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간섭을 한다는거에요. 그리고 그 간섭은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자면 지구는 다 같이 쓰는 것이고, 이렇게 가다간 다 같이 멸망할 수 있으니 환경 보호합시다! 라고 주장한다면, 그래도 그 의견에 저는 동의를 할 거예요. 그리고 많은 이들이 동의할 테지요. 하지만 어떤 이들은 어차피 나 살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남은 사람들이 이렇게 되든 내 알 바야? 하는 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환경 보호를 하자는 주장에 근거는 논리적으로도 명분적으로도 이해가 되는 선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내 기분 문제'를 자꾸 공공적인 것으로 갖고 와서 합리화하거나 포장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그런 엉터리 주장들을 우리 사회는 또 자꾸만 받아줘요. 주장의 근거를 아무리 포장해도, 밑바탕엔 지극히 내 기분 문제에 해당되는 그런 억지 부리는 주장들을, 그 간섭들을 우린 자꾸 수용하려 들지요. 왜냐면 그걸 반대하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의 낙인을 찍거든요. 그리고 우린 도덕적 완전 무결을 꿈꿔요. 완전무결한 도덕은 있을 수 없는건데. 도덕이란 타인의 관점과 시선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건데. 하지만 우리 사회는 도덕적 완전 무결을 꿈꾸고, 완전 무결하지 않은 이들을 낙인 찍고, 배척 하고, 공격해요. 나아가,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며 비판까지 하지요. 그로 인해 저 억지 주장들을 받아줄 수 밖에 없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 주장들에 대해 스스로 왜? 라는 질문을 던져 봐요. 끊임없이. 우린 왜?라는 질문에 답변을 하다하다 어느 순간 멈출 수 밖에 없어요. 대답할 수 없는 지점이 생기거든요. 어떠한 질문들의 답들의 끝은 결국 내 기분 문제로 치환돼요. 그 기분 문제를 포장하고, 포장하고, 또 포장해서 그럴 듯하게 주장하는 것 뿐이죠. 단지 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억지 주장을 하며 타인의 영역에 간섭하고, 그 간섭들을 우리 사회는 도덕적 결벽성 때문에 비난받을까 두려워 수용하고만 있고.....혼란한 사회에요. 선빵필승이 아니라, 선주장필승이 되어 버린 사회에요. 반대하면? 어, 도덕적이지 못한 인간이네. 이걸로 귀결시켜버리죠. 말이 또 길어졌어요. 나쁜 버릇인데.

또 한 가지.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의도성에 대해 집착할까요? 의도가 안 좋으면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래요. 의도가 불투명하면 우린 의심할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의심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나요. 저는 예전에 도덕성이란 의도와 함께 가야한다고 했어요. 의도가 옳지 않았다면, 그건 그것이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서로가 윈윈하게 된 경우라고. 그렇지만 전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는 이들에게 되묻고 싶어요. 그래서 뭐가 문제죠? 기업들이 이미지메이킹을 위해서 기부를 하거나, 자원봉사를 갔다고 생각해봐요. 분명 의도는 순수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로 인해 피해입은게 뭐가 있죠.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거 잖아요. 그들이 도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도덕적이다 아니다를 따지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들은 행동했고, 결국 사회적으로 도움이 됐는데. 저는 명분이나 식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한편으론 현실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여기는 사람이에요. 현실을 직시해야지요. 의심을 했을 때, 뒤통수 맞을 것을 방지할 수 있다면, 의도의 순수성을 의심할 필요가 있지만, 의도의 순수성을 의심했을 때, 그저 설왕설래만 이루어질 그런 의심이라면 할 필요가 없어요. 그저 혼란만 가중시키니까. 그리고 전 의도가 절대로 완벽하게 순수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의도는 많은 생각과 많은 목적들이 섞이고 섞여서 이루어져요. 어떤 사람을 돕고자 모금 행위를 했을 때, 그 모금 행위는 정말로 순수할까요. 앞서 아이유가 했던 말처럼 인간의 이타성이란 그것마저도 인간의 이기적인 토대 위에 있다고. 모금 행위를 하고 선행을 함으로서 내 기분이 좋아진다면. '내 기분이 좋아지려는 목적'이 있으니, 의도적으로 순수하다고 할 수 없겠네요. 결국 순수는 허상이에요. 그리고 많은 간섭들이 결국 내 기분 문제인 경우가 많지요.

그래도 그 주장들이, 그 행동들이 결과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나타나니까 수용하면서 괜찮게 넘어가는 거에요.
사람은 환경을 변화시키는 존재니까요.

세상사 다 그렇더라구요.
도덕적이니, 비도덕적이니, 의도가 순수하니, 불순하니, 잔인하니 어쩌니, 너는 어떻니, 저떻니, 말이 많고 탈이 많고, 와글와글 시끌벅적.
이러니 저러니 온갖 이유를 붙여가서 싸우지만 주변 환경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끔 변화시키기 위한 것들이며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거라고.
그러니 이리저리 휘둘리지 말고 세상사는 세상사대로 흘러가게 냅두고 우린 우리의 인생이나 우리 입맛대로 바꿔나가는게 좋겠어요.

편지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네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해야할 일이 쌓인 채로, 하고 싶은 일이 넘친 채로, 시간이 부족한데, 여유로운 그런 상태로. 덕분에 오랜만에 편지도 썼고. 음....저번에 약속했던 글들은 못 올렸네요. 다음에 쓸게요. 약속이니 지켜야 하는데, 그래도 뭔가 의무적으로 쓰고 싶진 않아서요. 좀 더 여유로워지면 편안하게 쓸게요. 엉켜버린 실타래지만, 다시 붙잡고 하나씩 하나씩 풀어내야죠. 방청소도 하고, 해야할 것들을 목록화하고, 새롭게 시작할 것들은 좀 하고. 오랜만에 한숨 자고 싶은데 귀찮음을...이겨내야 겠죠?

p.s
날씨가 추워요. 독감이 유행이래요. 건강 관리 잘하시길 바라며 또 편지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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