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영화

더 테러 라이브

어둠속검은고양이 2015. 10. 27. 20:11




더 테러 라이브 (2013)

The Terror Live 
8.4
감독
김병우
출연
하정우, 이경영, 전혜진, 이다윗, 김소진
정보
스릴러 | 한국 | 98 분 | 2013-07-31
글쓴이 평점  



전에 영화관 가서 봐야지 하다가 못 본 작품.

어쩌다 보니 TV에서 보게 되었다가 이제서야 글을 써본다.

이에 대한 평이 호불호가 갈리던데, 영화평을 본 입장에서 다시 이에 대한 평을 쓰자니...타인의 평가가 내 생각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아서 괜히 본 것 같기도 하다. 결말 부분에 있어서의 옳다/그르다 관점도 있었고, 시나리오 자체에 허술함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비판하든, 칭찬하든 간에 몰입감에 대해서는 다들 수긍했다. 나 역시도 이 영화를 무척 재밌게 보았기에 이리 평을 써본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영화는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평에 지적했듯, 시나리오가 허술하긴 하다. 테러범 한 명이 대한민국 경찰을 전부 따돌리고, 테러를 자행하면서도 그것을 생방송까지 한다는 점에 있어서 조금은 능력이 과장되어 있고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지만서도, 정부에 대한 풍자나, 블랙유머가 잘 스며 들어 있고, 이것을 연출로 몰입감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 있어서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각 캐릭터마다의 성격이나 생각이 확고하게 살아있었다. 그리고 그들 각자의 상황에서 자신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한 인물을 두고 싸우는 구도는 긴장감과 몰입감을 제대로 심어주었다.


스포일러 있음.


경찰이 테러범 하나를 손쉽게 잡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 테러범의 능력이 과장되어 초인적인 것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경찰의 무능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그 이유는 바로 대테러대책반의 사후 대책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테러에 대한 대처를 하지 못한 자신들의 무능함과 대통령이 오겠다는 거짓약속으로 인해 희생자가 늘어났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평범한 시민(?)인 윤영화(하정우)마저 사살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 영화는 처음에 직접적인 폭력인 '테러'로 시작된다. 테러 역시도 하나의 엄청난 폭력이며 일어나선 안되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허나 그 '테러'가 어째서 일어나게 되었는지 이유를 따지고 예방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테러범의 입을 통해서 나온다. 바로 자본의 폭력과 정부의 무관심이다.


테러범(정확히 말해 테러범의 아버지)은 2만 5천원 더 준다는 소리에 늦은 밤 다리 확장 공사를 하러 갔고, 그로 인해 물에 빠져 죽게 되었다. 야간 공사라 돈을 더 주었고, 공사한다는 것은 본인이 택한 길이기에 뭐라 할 순 없다. 허나, 그 당시 나라의 행사 때문에 경찰도, 119도 어느 누구도 사고난 노동자들을 돌보지 않았고, 그로 인해 죽게 되었다. 그 노동자가 죽고 난 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명을 돈으로 보상할 수는 없지만, 솔직히 말해, 진정으로 사과하는 자세를 보였다면 테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 위로금이라 포장된 돈 몇푼이었다. 테러범은 그렇기에 돈을 요구했다. 허망하게 사라져버린 그들의 목숨을 위로하기 위해 말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윤영화는 이 정부와 자본,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테러범 사이에서 새우등 터지고 있는 사람으로 표현된다. 이야기 하자니 좀 복잡해지는데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1. 정부의 목적은 '권위'와 '대통령의 안위'다. - 테러범에게 일체의 협상은 없다-

2. 테러범의 목적은 '진심 어린 사과' 다.

3. 자본을 상징하는 언론인 차대은(이경영)의 목적은 시청률이다. -자극적-

4. 대테러실장(전혜진)은 정부와 동일하나, 테러범 검거가 목적이다. -시간끌기-

5. 청와대 비서관은 정부와 동일하다. 덤으로 자신이 힘이 뭐가 있겠나...대통령의 사과를 해준다고 확답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한다고 말할 수도 없고, 책임지고 그렇고....


 정부에 대한 입장은 경찰청장이 나오면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매우 권위적이고 강압적으로 나가면서 테러범을 자극한다. 허나, 그로 인해 허망하게 목숨을 잃고 만다. 테러의 이유에서도 밝혀졌듯이 정부는 민간인에 대한 안전에 관심이 없다. 오로지 어떡해하면 '권위'를 지킬 수 있을까가 목적이다. 물론 테러범의 요구에 수용한다는 것 자체도 문제가 있긴 하다. 테러범의 목적이 암살이었다면, 그의 말대로 했다가 대통령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권위'차원 뿐만 아니라, 테러범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함부로 행동하기가 매우 조심스러웠을 수가 있다. 어찌됐든, 영화 전체적 느낌과 결말까지 보고 짐작컨대, 대통령의 안위보단 '권위'를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비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차대은이 말한 것처럼 정부는 인질이 죽음으로써 여론이 테러범에 집중되게 하고, 테러하는 식의 '불행한 희생이 있었지만 정의는 승리한다'라는 것을 어필하고 싶어했다.


  테러범의 목적은 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였다. 이 부분이 바로 정부와 정면으로 대립하는 부분이다. 그는 테러만으로는 사과를 받아낼 수 없기에 여론을 움직이려고 했고, 그 여론의 대표자로 윤영화를 택했다. 그리고 윤영화의 목숨을 손에 쥐고 있다.


 차대은에게 있어서 사실 윤영화의 목숨을 알 바 아니다. 그의 목적은 오로지 시청률일 뿐이다. 테러범의 말대로 할 필요 없다며, 위험하지 않다고 협상을 없다고 내지르라고 말한다. 아마 윤영화가 그의 말대로 하다 죽었더라도, 그는 손해보는 것이 없었다. 그저 윤영화가 테러범에 의해 희생되었다며 추모하자면서 프로그램 쇼를 만들었을 것이다. 만일 윤영화가 죽지 않았더라도, 테러를 중지하고, 협상은 없다라는 자극적인 말을 하게 함으로써 테러를 잡는데 지대한 공헌을 세움과 동시에 시청률 확보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윤영화에게 테러범을 자극하라며 협박을 한다. 그의 손에는 윤영화의 비리가 담긴 정보가 있다.


  대테러실장의 목적은 테러범 검거이다. 경찰청장이 죽은 마당에 그녀에게 있어서 살길은 이제 테러범 검거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테러범 검거를 위해서는 윤영화의 시간끌기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녀는 어떡해서든 윤영화를 달래서 최대한 시간을 끌도록 만들어야 한다. 물론 시간을 끌되, 윤영화가 '대통령이 사과를 하라'와 같은 테러범의 입장을 수용하도록 하는 발언을 하도록 냅둬서도 안되는 상황이다. 그녀에게는 윤영화가 원하는 조건을 들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러한 3명의 관계 사이에서 여론을 움직일 힘이 있는 윤영화는 외로운 줄타기를 해야 한다. 일단 가장 큰 카드패는 테러범이다. 윤영화의 직접적인 목숨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윤영화를 그렇기에 그 테러범의 말에 최대한 귀기울이며 맞춰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허나, 그것을 차대은과 대테러실장이 두고보지 않는다. 그들의 이익과 목적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차대은은 시청률을 위한 자극을 얻기 위해 그냥 내지르라고 말하지만, 대테러실장은 자신의 직위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자극을 삼가해야한다. 대테러실장은 달콤한 말로 윤영화를 속이고, 윤영화는 그에 넘어가 테러범을 안심시킨다. 그리고 그 결과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필자가 보기엔 차대은이 제대로 상황 파악을 한 것 같은데, 솔직히 만분의 일의 확률이라도 자신의 목숨이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차대은의 말처럼 테러범을 자극할 수는 없을 듯 하다. 옆에서 직접 죽는 것까지 본 상황이니 말이다.


  결국 이 셋의 줄다리기 결과, 민간인은 죽고, 윤영화의 생활도 끝장나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끝에선 윤영화를 죽이라는 대테러실장의 명령까지 내려온다. 국민을 속였단 사실이 알려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국민이 '잔혹한' 테러범에 의해 '죽은 마당'에 테러범을 사살함으로써 '정의가 구현된 마당'에 '테러범의 요구를 전혀 수용할 의지가 없었다'라는 메세지가 나온다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참으로 씁쓸한 뒷맛이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실질적으로 저런 요구가 나온다면, 과연 대통령은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까 싶다. 애초에 테러가 안 일어나면 그만이지만서도 말이다. 윤영화가 말한 신문고라던지 법적 제도를 통해서 억울함을 호소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것이 안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저렇게 각자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켜버리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그 희생시키는 상대가 거대한 권력이나 자본을 가진 이들이라면 더욱이. 그들의 사소한 움직임조차도 '개인'에게는 엄청난 재난으로 다가오기에 함부로 맞서 싸울수가 없다. 그렇기에 간접적인 폭력이 자행되는 곳이 바로 현 사회다. 그에 대한 열쇠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무기력한 개인이었던 윤영화였다. 그에게는 여론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물론 그 여론의 주가 되는 미디어 역시로 '시청률'에 목말라있는 차대은같은 자이지만 말이다.


결국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윤영화는 '자축'하는 정부에게 축하메세지라도 보내주듯이 빌딩을 국회의사당으로 떨군다.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타인을 쉽게 희생시키는 현대인의 모습과 자본과 시청률에 목말라 있는 미디어, 그리고 권위에만 매달린 채 국민에게는 무관심한 정부였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는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그저 한 사건으로서 결말을 낼 뿐이다. 블래코미디로서 풍자만 한 채로 끝나버린다는 점이 아쉽기도 하지만, 적절한 메세지가 담긴 재밌는 영화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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