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세상의 해상도를 올려주는 행위' 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한 문장이 '왜? 공부를 하지?' 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명쾌한 답변이라 생각한다.
세상은 넓고, 깊다.
그리고 우린 그 세상 위를 떠다니는 조각배다.
차라리 위 글처럼 세상이 모니터처럼 바라만 볼 수 있으면 다행이지, 세상은 우릴 향해 끊임없이 덮쳐온다. 그리고 우린 그것을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이겨내야만 한다. 만약 이겨내지 못한다면 정처없이 휩쓸리다가 결국 가라앉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린 세상으로부터 끝없이 흘러들어오는 수 많은 정보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생각하고, 추론하여 예측해야만 한다. 정보들 속에 숨겨진 사전 경고들을 파악해야만 한다.
우리들 공부하면서 익히는 지식이라는 것은 단편적인 정보에 지나지 않지만, 공부를 통한 지식의 축적들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준다. 까페에서 들리던 클래식 음악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들리던 것도, 전시회가 열린 예술 작품들이 다 비슷해보이던 것도, 내가 사는 현실과는 무관해보이는 전문적인 과학 분야의 발전도, 뉴스에서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 것처럼 보이던 주가나 경제 속보들도. 이 모든 것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고,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이해하고, 그 변화들이 앞으로 내 삶에 어떤 방식으로 다가올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면 우린 앞날을 대비할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분명하게 세상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은 우릴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기술은 갈수록 발전하고, 사회는 갈수록 유기적으로 얽혀간다. 이제 지구 반대편에서 터진 하나의 사건들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우리가 원치 않아도 세상은 우릴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자그마한 편린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하고, 그렇기에 공부를 해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지닌 세상의 해상도가 낮다면, 우린 그 작은 편린들을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칠 것이고, 갑작스럽게 닥친 위기 상황 앞에서 영문도 모른 채 고군분투를 해야만 할 것이다. 공부는 세상을 좀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해상도를 올려주는 행위다.
p.s
해상도를 올릴수록 다시는 그 전 단계로 돌아가지 못할 테니, 우리가 올려야 할 해상도를 잘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경우에 따라선 해상도를 올리지 말아야 할 것들도 있다.
p.s 2
학창시절에 하는 공부들은 세상을 향한 공부를 할 수 있게 기본 스탯을 마련하는 행위다.
학창시절의 지식들은 생각보다 써먹을데가 없지만, 그 지식들을 익혀가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추론능력과 사고능력, 언어해석능력, 분석력을 통해 앞으로 세상의 해상도를 높이기 위한 밑거름이 된다. 그건 마치 모니터 해상도를 높이기 위한 기본 부품들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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