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떠오르는

화석이 되어버린 사람을 아시나요.

어둠속검은고양이 2019. 8. 4. 10:28

피곤하다.

어젯밤 그리 쓰러지듯 잠 들어 일어났음에도 피로감이 쌓여 있다. 편안함을 중시하는 나로선 평소에 잘 싣지 않는 캔버스화를 오랫동안 신고 걸어다녔기 때문일까. 아니면 무더운 여름날 장거리를 이동했기 때문일까. 그다지 걷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장거리를 이동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피로감을 가져다 준다. 그건 아마도 수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장시간 있어야 하는데서 오는 긴장감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진이 다 빠진다'라는 말처럼 긴장감은 그 자체로 기력을 소모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이 육체적 피로감은 어제와는 또 다른 피로감이다. 말 그대로 오직 육체적 괴로움에서 오는 피로감이다.

정치를 생각하고, 사회를 생각하며, 경제나 사상, 철학, 법 따위를 종종 생각해보곤 하지만, 이젠 아무래도 좋다. 분명 이러한 생각들은 나의 취미이고, 이것들을 글로 써내려가는 것은 하나의 즐거움이지만, 말해 무엇하랴. 애초에 글의 목적은 나의 생각 정리의 일환에 가깝다. 그러나 점차 멀어져 가는 삶의 간극들이, 소멸해가는 삶의 공유점들이, 생각의 의미없음과 무가치함을 드러낼 뿐이다.

과거의 생각들이 나에게 쓸데없는 걱정들을 가져다주었다면, 이젠 이 생각들은 나의 생각의 무의미와 무가치함을 가져다줄 뿐이다.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나의 즐거움이었고, 생각을 갈무리 해준다는 점에서의 그나마 남아있던 의미가 지워졌다. 일련의 나를 드러내는 작업 중 하나인 글쓰기가, 나를 구성하는 가치관이나 생각들이 더 이상 교류할 소스로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혼자 하는 작업들이, 모든 활동들이 점차 흥미를 잃어가고, 시계처럼 반복되어 가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러한 느낌들은 분명히 관계의 중요성, 관계에 대한 의지나 흥미로 나를 이끌어가지만 타인과의 공유점 소실, 삶의 간극을 느낄 때면 관계 이전에 선행조건인 너와 나라는 두 존재에서 나라는 존재를 내려놓게 된다.

그리고선 점차 화석이 되어가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구태여 타인에게 개입하기도 싫고, 주절주절 떠는 것도 싫고, 그저 다들 그렇게 산다는 듯한, 대중-집단이라는 어렴풋한 관념에 포함되어 살고 싶은 생각이 들 뿐이다. 그냥 남들이 사는 것처럼 출근하고 퇴근하고, 모두가 원하는 좀 더 높은 자리, 좀 더 많은 월급을 얻기 위해 자기계발을 하거나 이따끔씩 쉬면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은 것이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사는 것이다.

그것은 공유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공감받고 싶은 것도 아니며, 교류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관심받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냥 그게 좋다고들 하니까. 다들 그렇게 산다고 말하니까. 그냥 그렇게 생각없이 따라가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타자의 대화나 관심들 타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서 무음으로 꺼버리고 싶은 것이다.

말해 무엇하며, 들어서 무엇하랴.

관계에 회의를 느낀다거나 교류에 의미가 없다거나 공감이나 고민들은 무가치한 것이다라는 식으로 폄훼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분명 그것대로 의미가 있을거라 생각하며, 좀 더 사람을 사람답게,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이것은 믿음과는 별개다.

누군가는 이것을 포기라 가리킬 지도 모르겟으나, 분명히 포기는 아니다.
그건 단지 살아가는 과정으로서 언젠가는 꼭 겪게 되는 하나의 통과의례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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