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한바탕 쏟아져서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서 나오니 빗줄기가 점차 가늘어졌다.
우산이 내 손에 있더라도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이 훨씬 낫지만 괜시리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 우산을 샀으니 비가 계속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우산 구매 비용은 이미 매몰비용인데 말이다.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땐 비가 내리면 친구들과 우산을 같이 쓰고 가곤 했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친구니까.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이성과 우산을 함께 쓴다는 것은 좀 더 미묘한 의미를 담게 되었다. 이젠 비가 내리면 근처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서, 너 하나, 나 하나 쓰고 가면 됐다. 그만큼 우산의 접근성은 좋아졌고, 가격도 부담이 없어졌다. 구태여 서로의 한쪽 어깨가 젖어가는 불편함과 걷는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한 우산을 쓸 이유가 사라졌다.
이러한 불편함을 굳이 감내하는 것은 이젠 좀 더 다른 것에 뜻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우산을 같이 씀으로써 personal space(일종의 개인적 점유공간)을 공유하고, 또 그러한 공간을 공유할만큼 당신과 나는 친밀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종종 여느 작품들에서는 남녀가 우산을 같이 쓰고 걷는 것을 표현함으로써 썸을 나타내곤 한다.
물론 집에 우산이 많아서 더 이상 늘리고 싶지 않다던가, 아주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상황이라 우산을 사기에 애매한 경우도 종종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우산을 씌워준 적이 있었던가.
성인이 된 후로 난 누군가와 우산을 같이 써본 적이 없다.
부득이하게 짧은 거리를 씌워준 적은 한 두번 있으나, 대체적으로 우산을 같이 쓸 기회와 왔을 때 여분의 우산을 들고 나갔던 걸로 기억한다. 우산이 하나 밖에 없다고 그것만 쓰고 나가는 작당을 할 수도 있었으나, 그럴 생각을 못했다. 그런 풋풋하고도, 귀엽게 봐줄 수도 있는 일련의 작업(?)들을 그 땐 왜 생각지 못했을까. 이제와서 그런 작당들을 하고 싶다거나, 아쉬운 느낌이 든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나는 너에게 우산이 되어 준 적이 있었나 싶다.
비가 온 날, 내가 쓰고 온 우산을 탐냈던 너를 보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편의점에서 산 그 우산은 모네의 파라솔 든 여인이 그려진 작은 민트색 우산이었는데, 내 마음에 쏙 드는 우산이라고 말하자, 내 우산과 바꾸자며 뺏어간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그런 너에게 '그럼 이 우산을 같이 쓸래?'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 날 우린 각자 가져온 우산을 각자 써서 다녔다.
난 여전히 1인용 작은 우산을 쓰고 다니지만, 커다란 우산을 집에 사다놓았다.
언젠가는 '이 우산 같이 쓰고 가자.'라고 말할 수 있도록, 둘이서 써도 어깨가 젖지 않고,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그런 커다란 우산을 말이다. 이 우산을 씌워줄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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