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떠오르는

신화가 되어버린 사랑, 그리고 현실

어둠속검은고양이 2019. 7. 27. 06:41

전요, 돈도 필요없어요. 그저 당신과 사랑만 있다면요.

이런 말을 하는 제가 우습나요? 분명히 이런 말은 이제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요. 이젠 아무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아요. 하지만 전 사랑만 있으면 다 괜찮을거라 생각했어요. 모든 것을 잊게 해주고, 어떠한 아픔이나 고통도 극복할 수 있게 해줄거라 믿었죠. 그건 정말로 저를 강하게 만들어줬거든요.

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은 현실이었어요. 모든 것들은 다 돈이었죠. 사랑은 감정의 교류와 경험이 있어야만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그것들은 전부 돈이 필요했어요. 우린 늘 감정의 교류보다도 돈을 먼저 신경써야 했어요. 예산에 대한 고려사항이 1순위였고, 그 때문에 사랑의 감정 교류는 후순위로 밀려나기 일쑤였지요.

그렇게 우리의 감정들은 희미해지다 못해, 점차 삭아갔어요. 우린 서로를 원해서 만났는데, 오히려 서로에게 고통만 주고 있었어요. 눈 앞에 음식을 보고도 굶주리는 사람이 더 힘들까요, 아니면 음식을 구경조차 못한 사람이 더 힘들까요.

이렇게 사랑이 하나 저물어가고, 현실이 하나 떠오르네요.
저의 말은 또 다른 신화가 되어 버렸어요. 이젠 아무도 사랑을 찾지 않아요. 현실을 찾지.

우리의 사랑은 비웃음 절반, 걱정 절반으로 시작됐어요. 하지만 그들의 눈빛 속에는 무언가 일말의 기대감이 담겨져 있었죠. 우리의 헤어짐은 그 눈빛에 담긴 기대감을 애틋함으로 바꿔놨어요. 하지만 그것은 결코 애틋함이 아니었어요. 그건 우리에게 아픔이자, 한계이자, 허탈함 그 자체였어요.

우린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됐어요. 이제부턴 각자 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야만 하겠지요. 상처의 두려움보다는 상처의 미안함이 더 커서, 그래서 홀로 짐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생각해요.

부디 우리의 아픔을 포기라고 지칭하지 말아줘요. 애틋하게 바라보지도 말아주세요.
꼭 말해야만 하거나, 아는 척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저 묵묵히 걸어가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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