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다양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 그 욕망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어린 시절뿐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상당히 제한적인데, 그 이유는 아이의 신체적, 정신적 미발달과 경험 부족으로 인한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달리기를 너무나도 좋아한다면 그 아이는 달리기를 자주 하려할 것이지만 건강한 20대에 비해 체력과 육체가 덜 발달이 되었기에 달리기를 자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부모들은 그 아이가 진정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다른 활동에 비해 좀 더 자주 달리기를 할지언정 정말로 마라톤 선수만큼 달리기에 대한 열정이 있는지는 외적인 행동 관찰이 힘들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측면은 더욱 관찰이 힘들다. 아이들은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낄 테지만 이에 대한 감정들을 언어적으로 표현하기 힘들기 때문에 화를 내거나 우는 것, 이 2 가지로만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부모는 이 아이의 심리적 상태가 어떤 것인지 파악하기 더욱 어렵다.
대신 아이는 커가면서 정신과 육체가 발달하고, 교육을 통해 언어과 지식을 배움으로써 자신의 욕망들을 좀 더 세밀하고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로 인해 아이들은 그들의 욕망을 조금씩 조금씩 깎아나갈 것이다. 이는 흔히들 말하는 '자신의 가능성을 가두지 마라'는 것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슬픔에도 여러 가지 감정들이 있을 것인즉, 복잡 미묘한 슬픔에 유사한 감정들이 흔히들 말하는 슬픔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지니고 있을 테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유사한 단어인 슬픔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그 감정을 '아, 내가 슬프구나'하고 그 단 하나의 사고로 가둬버리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자라면서 배우게 되는 예절, 법, 사회와 같은 교육은 자신의 욕망을 좀 더 솔직하고,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대가로 사람들의 욕망을 제어하는 족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족쇄들은 사회의 계급적, 자본적 영향에 의해서 사람들마다 다르게 작용하게 된다.
가령, 권력과 부를 지닌 자식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드러내는데 꺼리낌이 없다.(성격상 차이는 있다.) 그 날 것 그대로의 욕망을 드러내서 부딪치게 될 여러 문제들을 충분히 덮을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차이가 난다. 외부적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을 충분히 수습할 수 있는 부모들은 그 자식들이 실수를 할 지라도 그런 욕망들을 솔직히 드러내길 바랄 것이다. 그래야 앞으로 발생할 문제들을 미리 진단하고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아이가 드러내는 솔직한 욕망을 통해 그 아이의 진로와 훈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솔직하게 욕망을 드러냈을 때 그것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수습할 능력이 없는 부모들이라면 그 아이의 욕망을 처음부터 무난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평범한, 그런 사회적 인간인 상태로 조절하려고 할 것이다. 사고 친 후에 수습하는 것보다 사고를 치지 않게 만드는 것이 훨씬 더 편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부터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어떨 때 기쁨을 느끼고, 어떨 때 슬픔을 느끼고,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고, 사회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어떤 행동까지 할 수 있는지 등등 본인 스스로에 대해 이해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 이해의 차이는 그 사람의 앞날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족쇄들은 어릴 때부터 시작해서 성인이 된 후까지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다수의 어른들은 일찌감치 배워온 예절과 도덕, 법, 사회, 인관관계 등등 여러 가지 것들로 자신들의 욕망을 제어함으로써 한 명의 무난한 인간으로 살아간다. 자신들의 욕망을 마음껏 펼쳤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활 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욕망을 펼쳐내도 나의 삶에 큰 지장이 생기지 않는다면, 수습이 가능하다면, 어릴 적부터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선(line)들을 쉽사리 넘게 된다. 사람들은 욕망하는 존재이고, 그 욕망들을 충족함으로써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능력이 뒷수습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욕구 충족을 우선시하기도 한다.
결국 이 글의 요지는 인간은 저마다 다양한 욕망을 지니고 있는데 여러가지 제약(경험, 교육, 신체적, 정신적 미발달, 환경, 타고난 신체적 조건 등)으로 인해 그 욕망들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계급과 자본에 따라 그 욕망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범위가 충분히 늘어날 수 있으며 이는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는 시야와 행동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부가 증가될수록 타인을 고려치 않고 자신의 욕망을 최우선적으로 펼쳐내는 오만방자한 인간들이 많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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