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오래전에 올리케 헤르만의 <자본의 승리인가, 자본의 위기인가>라는 책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인상 깊었던 문구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자본주의 발전은 인건비의 상승으로 인해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생산비 압박은 기술적 진보를 향한 갈망을 만들어 냈으며 이는 방적기, 증기기관의 등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현대에 와서도 경영가나 자영업자, 생산업자들에게 가장 큰 비용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인건비'라고 말한다.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기술적 진보는 생산의 효율을 증대시켰고 이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이어져 파이 전체를 키우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 이것은 분명 궤를 달리 하게 되었다.
그 책에 대한 리뷰가 불과 7년 전쯤인데, 세상이 너무나도 빠르게 바뀌었다. 분명 기술적 진보가 생산의 효율성을 가져온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소비다. 1차 산업혁명 당시, 방적기와 공장의 기계에 의해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은 다른 산업으로 널리 퍼져 나갔고, 기계가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기에 대량 생산에 걸맞은 대량 소비가 일어나긴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린 4차 산업 혁명을 맞이하고 있다. 이 혁명은 기계가 사람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혁명이다. 인공지능들이 사람을 대체하는데 한계가 있고, 여전히 사람들이 일할 곳은 있을 것이다. 자동화하기 어려운 곳, 자동화하기엔 비용이 어마어마해서 인건비가 더 싸게 먹히는 곳 말이다. 그러나 그런 곳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은 점차 기계로 완전히 대체될 것이며, 이는 1차 산업 혁명 당시의 대량 실직자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실직자가 발생할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량 소비의 축소를 의미한다. 기본 소득제에 대한 논의가 나오는 이유다. 물건을 생산하는 까닭은 판매를 통한 이윤을 갖기 위해서다. 그러나 대부분이 기계로 대체되어 대량 생산은 발생하지만, 그것을 대량 소비해줄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의문점을 생각해보면 당시에 러다이트 운동을 벌이던 노동자들이나 영국의 적기 조례를 로비하던 사람들이 심정이 이해가 간다. (한국은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에 의해서 적기 조례가 이루어지고 있다. 표를 통해 정치인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의 부정적 기능이 아닐까.)
필자는 몇달 전쯤에 흥미로운 유튜브를 하나 본 적이 있다.
책에 관련된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해주면서 좋은 책들을 소개해주는 유튜브인데, 그 영상에서는 다가올 4차 산업혁명에 의한 일자리의 양극화와 소득의 양극화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을 저숙련, 중간 숙련, 고숙련 노동자들로 나누었을 때, 기계로 대체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층은 어느 층일까. 놀랍게도 중간 숙련의 노동자들이다. 오히려 저 숙련 노동자들은 대체되기 어렵다. 인간들이 간단하게 행할 수 있는 서빙, 인사, 상담, 간단한 조립 업무 같은 것들은 대체되기 어렵다. 그것들은 인간들에게는 쉬운 인지 능력만 있으면 쉽게 쉽게 할 수 있는 상호작용적인, 틀에 박혀있지 않은 업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렴한(?) 인건비이기도 하고. 또한 알고리즘화 시킬 수 있는 계산적인 기술들, 틀에 박힌 기술들은 쉽사리 인공지능으로 대체가 가능하다. 영상에서는 업무의 성격을 이해하고 자동화할 수 있는 부분은 기계에 맡기고, 자신은 자동화할 수 없는 부분에 치중하여 고 숙련화 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디지털 경제에 잘 적응한 사람은 고소득자가 되겠지만, 디지털 경제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은 저소득층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자기 컨텐츠화에 성공한 이들은 다양한 곳에서 자기 복제를 통해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 간단한 예로 웹툰 작가를 생각해보면 쉽다. 웹툰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올리는데만 그치지 않고, 그와 관련된 영상, 굿즈, 그리고 제작하는 과정을 담은 인터넷 방송 등을 통해 콘텐츠를 늘려가고 있다. 디지털 경제에 제대로 적응한 사람들이다.
자, 이제 다시 돌아와보자.
앞서 필자는 인건비의 상승이 자본주의의 파이가 커지는데 기여하는 좋은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에 들어 고도화된 기술로 인해 인건비의 상승은 자본주의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실직자를 양산하여 소비 위축을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와 유사한 것으로 일자리의 양극화와 소득의 양극화를 다룬 유튜브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지난 몇 년간 인간다운 삶을 제시하며 인건비를 급격하게 올린 정책은 과연 좋은 정책이었을까.
우린 인간다운 삶을 위한 인건비 상승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너무 빠르게 올리는 것 아니냐라는 볼멘소리를 하는 정재계를 향해 돌을 던지곤 했다. 마치 노동자를 위한 선(善)의 정치를 펼치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와 노동자의 고혈을 빨아먹는 악의 정재계라는 대립구도가 형성되었고 인건비 상승에 대해 착하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물론 이건 정재계의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지난 세월 어찌나 악독하게 굴었던지 참. 여하튼 간에 이 인건비 상승에 대해 일부 현장에서는 환영을, 일부 현장에서는 모르는 탁상행정이라며 반발했다. 뭐 반발하는 사람들에게 시민들은 '그 인건비 하나 제대로 못 지킬 사업이면 망해야지, 뭐.'라고 환영의 인사를 날렸다. (실제로 좀비기업은 망해야 할 기업이긴 하다. 꾸역꾸역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낳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에라도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찌하기 어려운 딜레마다. 반대로 이걸 빌미로 뻔뻔하게 구는 기업들도 많다. 우리 기업 망하면 노동자들도 다 죽는데~?? 얄밉다.)
급격한 인건비 상승은 무인 키오스크 도입으로 돌아왔다. 물론 코로나의 영향으로 가속화된 것도 있다. 기계로 대체될 수 있었던 업무들은 빠르게 대체되고 있으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 다루는 기사는 없다. 뭐 아르바이트생 하나, 저 숙련 노동자들 하나 사라진 게 대수라고. 중요한 것은 저 악의 무리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인건비를 올려서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냈다는 훈장뿐이다.
일자리의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소득의 양극화도 더 심해졌다.
자산의 양극화도 더 심해졌다.
그렇다면 평생 인건비를 그대로 놔뒀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난 그것에 대해 대답할 수 없다.
그것은 그냥 다같이 가난해지자는 마인드로 양극화의 시기를 잠깐이나마 늦출 수 있을 뿐이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지만 어찌됐든 기술적 진보와 함께 양극화는 심해질 수 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나 정부가 양극화를 앞당겼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결국 살아남는 사람들만이 살아남는 것이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다.
p.s
참조 유튜브 영상, 책그림 <왜 나는 그대로인데 부자들은 넘쳐나는 걸까 - 일자리의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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