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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화되는 최소한의 도덕심 - 무형의 가치들

어둠속검은고양이 2020. 12. 29. 19:45

오늘은 다소 우울한 글쓰기가 될 듯합니다.

이 글은 다소 추억 보정이 된 것일 수도 있고, 제 주변이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글로 올 한 해를 마무리하기엔 아쉽습니다만, 마무리 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꼰대 같은 발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어느 한 인간이 살면서 느끼게 된 점을 써 내려간 글이라 생각해주세요.

 

어렸을 땐, 무형의 가치가 그래도 최소한 존중은 받았던 것 같은데.

사랑이니, 의리니, 도덕이니, 인간다움이니, 뭐 그런 것들 말이죠.

그것들이 최소한의 선(line) 이상으로 작동했고, 그렇게 배웠고, 믿어왔던 것 같은데.

 

이제 그것들은 정말 최소한으로만 작동하게 된 것 같아요.

그냥 최소한 인간다운, 사회생활할 정도, 딱 그 정도일뿐이죠.

박진영 씨가 겸손은 보험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타인에게 물어 뜯기지 않고 뒤통수 맞지 않기 위해서 갖추는 용도죠.

 

세상 사람들은 선이니, 정의니, 감성이니 그런 것들을 외치지만 실상 관심 없어요.

그냥 내가 도덕적이다라는 것을 보이기 위한 쇼에 불과할 뿐이죠. 그들에게 있어서 약자라는 것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할 뿐이에요. 정치인들이 시장에서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습니다'라고 외치는 것과 다를 바 없죠. 요즘 몇몇 단체가 시끄럽지요? 실로 악마가 감탄할 법도 한데, 악마들은 늘 선한 자의 가면을 쓰고 있죠. 그리고 대다수는 그 가면에 넘어가요. 속인 놈이 문제지, 속은 놈이 문제냐고 말할 법도 한데, 사실상 그 가면에 기대어 자신의 도덕성을 치장하려고 했을 뿐 실질적인 관심은 없었다는 거지요.

 

어찌 보면 인과관계가 바뀌어있는 것 같네요. 약자나 빈자를 보면서 연민을 느끼고, 안타까워서 도와서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서 돕는 거지요. '그래서 넌 누굴 도와본 적 있냐?'라고 비판할 테지만, 전 그들의 행동들이 위선적이니까 문제라고 비판하려는 건 아니에요. 전 도덕적 상대론자(결과론자)니까요. 단지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느끼고, 분석할 뿐이죠.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도덕적인 그 무언가, 무형의 가치 추구를 하는 행위들은 일종의 한 분야 같아졌다는 거예요. 이 시대에 들어서 그 어느 시대보다도 도덕성과 정의와 선을 강조하는 이들이 넘쳐나지만, 그것에 가치를 두고 있는 이들은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아요. 현실이 퍽퍽해서 그래요. 현실은 현실대로 돌아가고, 그렇기에 엄중한 잣대로 유형의 가치로 서로를 평가하지만, 무도회장에 가면 격식 있는 옷차림을 입듯이, 도덕과 관심을 울부짖지요.

 

세상 어느 누구도 어린아이들이 속물적이거나, 사람을 손익계산적으로 평가하는, 소시오패스 같은 사람이 되길 바라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그 어느 시대보다도 유형의 가치를 중시하고 있어요. 아이들도 이젠 다 알아요. 돈이 얼마나 좋은지, 돈을 벌기 위해서 어른들이 얼마나 개고생하고, 그로 인해 가치가 정해지는지를요.

 

외모, 몸매, 인성, 자산, 성격, 친구들, 주변 사람들........

온갖 평가 요소가 가득한 세상이지요. 빈번하게 평가가 이루어지고 등급이 매겨지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무형의 가치들을 갖고 있길 바라는 건 너무 모순적인 것 같아요. 누군가는 그럴 거에요. 아이들'만'이라도. 어른들의 때가 타지 않기를 바란다고. 그러나 그 무형의 가치들만을 믿고 자란 아이들이 겪게 될 현실은 너무도 참혹한 걸요. 그렇다면 누군가는 또 그럴 테지요. '그럼 넌 아이들이 소시오패스가 되고, 손익계산적으로 행동하게끔 가르쳐야 한다는 거냐?'라고요. 그건 그것대로 엄청난 비극이지요. 저 역시 그렇지 않길 바라고 있어요. 

 

하지만 세상은 이미 변해버렸어요.

평가 요소가 가득하고, 평가하기 쉬울 정도로 서로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졌고, 어른들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서로에 대한 견적을 뽑아내지요. 도덕이나 예절, 정의, 선에 대해 외치는 것은 일상화가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 특별하게 외치듯이 비일상적인, 이벤트적인 것으로 바뀌었지요. 그 이벤트를 주최하신 분들은 돈을 벌어먹었고, 처벌도 제대로 안되고 있는 현실이지만요. 이제 그냥 도덕은 이벤트예요. 무형의 가치에 관심을 두기보단 유형의 가치들, 평가요소들에 집중하는 것이 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지요. 무형의 가치들은 그냥 남들이 하는 것처럼 간간히 하면 돼요.

 

모 배우가 난민에 대한 발언으로 매번 구설수에 올라요.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해요. '당신은 그들과 직접적으로 살을 맞대지 않을 환경에서 사니까, 난민을 수용하자고 말할 테지만, 정작 난민과 접촉하며 불편을 감내하며 살아야 할 사람은 우리다.'라고요.

 

사랑이라는 것도 받아본 사람이 줄 수 있는 것처럼, 사랑, 도덕, 정의, 미래에 대한 생각, 환경, 교육....뭐 이런 무형의 가치들에 대한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마음도 전부 그만한 경제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가능한 것들이에요. 제가 오래전부터 인심은 광에서 난다고 강조하곤 했죠. 그들은 무형의 가치에 대해서 그것의 멋짐과 인간미에 대해서 설파를 할 테지만, 현실에 치인 대다수는 '니나 잘해!'라고 분노로 화답하겠지요. 어쩌면 대다수 사람들이 현실에 치여 있기 때문에, 도덕에 무관심해진 자신과 답답한 마음을 이벤트처럼 외치면서 해소하는 걸지도 몰라요. 아마도 그 무형에 가치에 대한 아름다움과 인간미도 점차 양극화되어 갈지도 몰라요. 소위 말해 옛 중세시대처럼 귀족들은 그들만이 사는 곳에서 관계를 맺고, 교양을 익히고, 문화를 가꾸면서, 그들과 다르게 포악하고, 몰상식해 보이는 대중들과 거리를 두겠지요. 하층민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문제있다고 말할 순 없어요. 그러나 그들의 인간미나 도덕심은 생존과 현실 앞에서 삭아가겠지요. 봐요. 난민에 대한 입장부터 다른 반응이 나오는걸요?

 

'너만의 가치를 찾아라, 남의 평가에 신경 쓰지 마라. 착하게 살아라'와 같은 입 발린 소리에 귀 기울지 마세요. 그들 역시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요. 사람들이 옳다, 선이다 말하는 무형의 가치들은 정말 최소한이에요. 그 이상의 무언가를 외치는 것은 그냥 이벤트며, 그것으로 이득을 취하는 자들의 눈속임일 뿐이죠. 그들은 자신의 도덕심을 해소시키면 그만일 뿐, 그 후 폭풍은 사회가 알아서 감당할 문제겠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내 평가 요소를 얼마나 끌어올리느냐에요.

내 스스로가 인정하든 말든 사회는 그것으로 나를 패자와 승자로 평가 내릴 것이고, 그 꼬리표는 영원할 것이에요.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현실에 맞춰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