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언론의 힘은 약해졌지만 영향력은 강해졌다.

어둠속검은고양이 2021. 1. 13. 01:58

필자는 이틀 전쯤에 맞춤형 알고리즘과 정치적 양극화에 대해 글을 썼었다.
그 글은 사람들이 맞춤형 서비스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정보를 편식하게 되고, 그로 인해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내용이었다. 정치적 양극화와는 별개로 사람들에게 있어서 맞춤형 서비스는 언론(흔히 말하는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대중매체)의 힘 그자체도 크게 약화시킨다. 사람들은 더 이상 언론을 언론으로 생각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제 정보를 어디에서든 얻을 수 있게 되었으며, 어디에서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여론을 형성하던 역할은 이제 언론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그러나 문제는 그만큼 여론이 형성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또 다른 의미로 게으른 행동주의자들이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그 의견들이 여론으로 형성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실상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에 불과할 뿐, 아무것도 아닌 셈이다.

그렇기에 언론의 정치에 대한 영향력은 오히려 증대되고 있다. 세밀화된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는 언론이 시민들에게 언론의 제 역할을 못하게 된 것처럼 그만큼 잘게 쪼개져버린 시민들의 의견들은 정치권에도 압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맞춤형 정보만을 접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이 대세인 걸로만 느끼고 있을 뿐이다. 개인들만큼이나 정치적 의견이 세밀해진다는 것이 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집단의 정치에선 오히려 독인 셈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의견들은 대중매체가 다루고 나서야 그것은 하나의 의견 - 여론화된다. 수많은 의견들과 거짓된 정보와 선동과 왜곡의 가짜뉴스 사이로 정치권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언론기관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예를 들어 어떤 정책을 펼칠 때, '이것은 시민 여러분들의 목소리입니다. 그 목소리들의 출처는 유튜브 댓글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커뮤니티 사이트의 댓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그 정책을 펼친 사람이 진정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신뢰할 수 있겠는가? 결국 정부에서 추진되는 정책들은 시민들과 언론의 멀어진 사이만큼이나 시민들에게 괴리감을 가져다 준다. 다수의 시민들의 눈에 어긋나 보이는 소수 집단의 의견이라도 정치권이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최소한 그들은 그 영향력은 침묵하고 있는(?) 개개인에 비하면 뭉쳐 있기 때문이다. 불합리 해 보이는 입법들이 판치게 되는 것 그 때문이다. 그 불합리가, 그 불공정함들이 문제라면 시민들이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더 큰 여론의 힘으로 그것을 막아서야 하지만 그 시민들은 쪼개져 버렸기에 불가능해진 것이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이지만, 정작 그 정치에 직접 뛰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에 뛰어들만한 자금이라든가 능력이라든가 시간적 여유라든가 그런 것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까대는 것으로 만족하고 정치를 눈 앞에서 치워버리고, 행동력 있는 소수의 의견만이 채택되어 국가가 굴러가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더 이상 시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해주지 못하는 언론들과 그 언론을 가지고서 정책을 펼칠 수 밖에 없는 정부.
언론의 힘은 약해졌지만 오히려 언론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