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향수의 편지

어둠속검은고양이 2019. 7. 21. 23:27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편지를 써봅니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까요. 날씨 이야기는 이제 진부해요. 일상을 이야기하기엔 별다른 것이 없구요. 그렇게 바쁜 것 같지는 않은데, 해야할 것들이 많아서인지 하루를 보내다보면 글쓰는 것이 귀찮아지곤 해요. 그래서 글 쓰는 것을 미루곤 해요. 그만큼 현실에 충실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요즘 들어 게을러져 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부지런히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피곤한 것 같아요. 어서 이 삶에 익숙해져야 할텐데 말이지요.

진부하지만 늘 재밌는 것은 타인의 사랑과 심리에 관한 이야기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특별히 기억나거나, 생각해둔 것들이 없어요. 굳이 이야기를 하나 꺼내보자면, 관계에 대한 고민이에요. 상대방의 말과 글에서 그 사람의 생각을 읽어낸다는 것은 어려워요. 아리송하다고 하지요. 확실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나의 마음이지만, 상대방의 나에 대한 마음을 알 수 없어요. 무슨 말이냐면, 이 사람이 나와 대화를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대화를 억지로 맞춰주고 있는 것인지, 대화만은 즐겁게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에요.

눈치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요. 상대방이 원치 않는다면 떠나는 것이 맞겠지요. 누구 하나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해 소심한 사람끼리 쇼를 하고 있는 경우가 있어요. 먼저 말하지 못하는 사람과 생각을 물어볼 수도 없는 사람들끼리 말을 꺼내고 또 억지로 맞춰주고, 웃지 못할 희극을 만들어내요. 하지만 이 역시도 결국 서서히 끝나갈 거에요. 연락이 뜸해지면서 말이지요. 우린 끝없이 관계에 대해 고민해보지만, 그 관계가 상황에 의한 것인지, 심리에 의한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추측으로만 끝날 뿐이지요.

다소 이야기가 무거워졌네요.
다시 돌아가볼게요. 좋아하는 향수가 있으신가요? 몸에 뿌리는 그 향수 말이에요.

전 후각이 좋은 편이에요. 그래서 향을 좋아해요. 물론 일상생활에서 퍼져 있는 내음들도 좋아하지만요. 그래서 종종 저는 향과 관련된 제품들을 사곤 해요. 향초라든가, 향수 같은 것들이지요. 막상 고르려고 가면 어느 것 하나 고르지 못해서 고민하곤 해요. 어느 향이든 대부분 마음에 들 거든요. 대부분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향이기에 '향수'로 이름을 달고 나온 것이겠지요. 하지만 막상 사고 나면 다 쓰질 못해요. 부지런히 뿌린다고 하는데도 말이지요.

문득 드는 생각인데, 작은 병으로 향수 세트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향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미쳐요. 향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의 분위기나 기분이 달라지지요. 그래서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좀 다른 향을 뿌리고 싶어서요.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향이나 밝은 기운의 향, 달달 느낌의 향, 그리고 산뜻한 향까지도.

혹시 누군가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향이 있나요?
그건 그 사람의 체취일 수도 있고, 혹은 그 사람이 쓰는 섬유유연제나 향수일 수도 있지요. 아니면 반대로 향을 맡았을 때, 누군가가 떠오른 적이 있나요? 분명히 이 향수는 공산품이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향수인데도 불구하고, 딱 그 사람에게 맞을 것만 같은, 그 사람만의 향이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요. 전 몇 개 있어요.

그 중 하나는 애틋한 사연을 갖고 있는 향수지요.
저에겐 오랜 친구 두 명이 있었어요. 한 명은 남자애고, 한 명은 여자애인데, 남자애가 여자애를 짝사랑했지요. 고백을 했는데, 차였어요. 그리고 어느 날 남자애한테 전화가 오더라구요. 저한테 택배를 붙였는데, 자기가 군대에 있어서 대신 선물 좀 전달해달라구요. 성년의 날이라고 향수와 캔디를 사서 보냈더라구요. 그 때 잠깐 향을 맡았는데, 참으로 어울리는 향을 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하지 않은 수수한 느낌의 장미향이었는데, 그 담백한 느낌이 딱 그 여자애와 어울리더라구요. 결과적으로 전해주지는 못했어요. 조심스럽게 여자애한테 문의를 했는데, 거부를 해서 결국 제 집에 있었어요. 버리자니 아깝더라구요. 그 마음과 정성이 말이지요. 그래서일까. 아직도 그 향은 기억에 남아있어요. 정작 당사자들은 각자 결혼하고 알아서 잘 살고 있는데 말이지요. 그들은 기억할지 모르겠어요. 그 때의 그 사연과 마음들은 결국 저에게만 남아있네요.

얼마 전에 향수를 하나 샀어요.
차분한 은은함을 주는 향이에요. 화사함보단 절제가 느껴지는 향이지요. 향이 금방 날아간다는 점이 아쉽지만, 꽤나 마음에 들어요. 부디 이 향에 어울리는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 참 향수의 의미를 아시나요?
'나를 잊지 마세요' 라는 의미에요. 향수가 그런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아마도 향수를 뿌릴 때마다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해요. 제게 그 친구의 향과 사연이 남아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당신의 향은 무엇이에요? 물으며 이만 편지를 줄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