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그럴 때가 있어요.
왠지 모르게 자존감이 떨어져서는 본인이 무가치한 사람으로 느껴지고, 지금 이대로 괜찮은지 앞날이 불안해지는 때요. 돈이 핵심 교환 매개체인 현대에선 돈을 버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죠. 어떻게 하면 나의 이런 능력들, 장점들을 돈으로 치환시킬 수 있는가가 핵심이에요. 돈으로 치환시킬 수 없다면, 그건 더 이상 능력이 아니죠.
우린 사회 시스템에 종속되어 버렸고, 이 시스템은 이제 사람없이도 알아서 굴러가요. 사회 시스템이 불안정해지면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듯이, 사회 구조나 시스템은 사람 한두명쯤은 별 것이 아니라는 듯 밞고 지나가요. 어차피 사람은 많고, 한두명, 수십명이 죽는다고 해서 사회 시스템에 작동에 문제 생기는 것 아니니까요. 물론 핵심부품에 해당하는 인물들은 중요하지요. 그들은 단 한명만 죽어도 시스템 전반적으로 파장을 미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가에 있는 돌맹이 취급을 당하지요. 중요인물들처럼 굳이 사회가 보호해줘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해요.
이렇듯 본인의 능력들이 한없이 무가치한 것으로 추락할 때가 있어요. 그건 마치 판매업자가 죄인처럼 고객의 결정만을 기다리듯 나의 능력들이 사회에 선택되길 바라는 것이지요. 나의 능력들이 선택받지 못하는 순간 능력은 무능력으로 치환되어 버려요. 그 선택의 핵심은 나의 능력들이 상대에게서 돈을 받아낼 수 있느냐지요.
사실 우리가 돈은 모으는 것은 궁극적으로 먹고, 자고, 입기 위한 것이지, 돈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지요.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다면 돈 따윈 필요없지요. 내가 농사지어서 식재료 구해서 조리해 먹고, 누에로 옷을 만들어 입고, 나무를 베다가 집을 지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은 돈이 필요해요. 가장 기본적인 생산활동에서도 도구가 필요하거든요. 나의 두 손으로 직접 도구를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생산활동을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일개 개인이 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노동력과 시간을 필요로 해요. 어쩌면 도구를 만들다가 일생의 절반을 보내버릴지도 모를 일이지요.
결과적으로 우리는 사회 시스템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게 되어 버렸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도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지요. 그러한 의존성은 매우 정교하게 이루어져서 어느 한 부분이 살짝 어긋나면 전체적으로 영향이 가요. 하지만 이러한 의존성은 돈으로 가려져 있지요. 우린 돈만 내면 얼마든지 많은 것들을 제공받아요.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서비스는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 그만이에요. 돈을 원하는 이들도 많고, 서비스 제공자도 넘쳐나거든요. 그래요. 그래서 돈은 매우 중요하죠.
이제 사람은 자급자족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어요. 굳이 자급자족할 상황도, 필요성도 없고, 또한 그것은 매우 비효율적이지요. 효율성과 풍족함을 선택한 대신 우리는 사회의 부품이 되어 버렸어요. 등가교환인 셈이니까 이것을 애석해할 필요는 없어요. 단지 사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이진만큼 사회 시스템이 불안정해졌을 때의 리스크가 좀 커졌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사회 시스템이 불안정하구요. 이럴 때 일수록 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각광받지요. 원래 희소한 것일수록 빛나보이는 법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스스로를 독려해보면서 더 나아지려고 애를 써도, 돈을 버는 능력이라는 현실 앞에선 무너지기 십상이에요. 때문에 많은 이들이 돈 버는 능력이나 갖고 있는 재산을 부러워해요. 재산은 다른 돈벌이의 밑천이 되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자신들의 무능력-돈을 버는 능력과 무관한 능력들에 자괴감과 절망감으로 자신을 채찍질하지요. '나는 쓰레기야. 나는 무능력해'하고 말이지요.
나의 능력들이 채 돈 버는 능력으로 개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면, 포기해야 하는 많은 것들을 생각해요. 그리고 과거의 기회들을 바라보곤 해요. 단 한 번 뿐이었던 그 많은 기회들을요. 인생은 되감기를 할 수 없기에 이젠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영원히 없어요. 윤회설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윤회해서 태어난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지요. 그렇기에 그 기회는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지요. 포기하게 된 현실을 마주하고서 말이지요.
수 많은 가정들과 수 많은 기억들과 수 많은 기회들은 그저 넋두리에 불과할 뿐이에요. 넋두리에 생각이 잠길 때면, 그리움이 서서히 스며들지요. 괜찮아요. 아직 인생 절반도 오지 않았어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아요. 기회는 분명히 또 올거에요. 그 땐 기회를 그리워하지 않도록 확실하게 붙잡을거라고 다짐해봐요. 부디 그 땐 당신도 절 선택해주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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