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
평가란 무엇일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평가로 정의할 수 있는가.
우린 평가받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빠르게 평가를 내린다. 대상을 묘사하는 것은 단지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말 그대로 묘사에 불과한 것인가.
가령, "저 남자는 코가 작고, 눈동자가 커, 피부는 하얗네." 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고 해보자.
이 말에는 결코 평가가 들어있는 것 같지가 않다. 코와 눈동자에 대한 크기를 말했을 뿐이고, 피부에 대한 색을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과연 이것이 묘사에 불과할 뿐인가, 평가가 들어가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작다, 크다, 하얗다'는 단어들은 제각각 '정도'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주관성이 들어가 있다. 나는 저 남자의 피부가 하얀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은 저 남자의 피부가 하얗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피부는 하얗네."
분명히 이 말 자체에는 '호불호'도 없고, '점수화'하는 것도 없다. 그러나 이 말에는 발화자의 주관성, 즉 평가가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여기서 평가란 '타인이 타인을 향해 행하는 모든 주관적 판단이라 할 수 있다. 매우 넓은 의미의 정의다. 그러나 우리는 위와 같이 말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린 어떤 대상에 대해 논함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는 자유의 침해한다고 말할 것이다. 평가를 거부한다는 것은 침묵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평가에 있어서 서로가 어느 정도 용인이 되는 지점은 존재한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서 '우리는 평가를 거부한다.'는 말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구분'되길 바란다.
남과 다른 '나만의 차이점'을 갖길 원하고, 그 차이점을 알아봐주길 바란다.
우리는 구분짓기를 통해 타인과 타인을 구분하고, 친밀도와 우선순위가 매긴다. 우린 누구보다도 구분되길 원하고, 하나의 고유한 존재로 남아있길 원한다. 그래서 개개인을 알아봐주고, 타인과의 다른 나를 알아봐준다는 것에 감동을 받는다. 허나 구분짓는다는 것, 차이점을 알아챈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평가의 대상이 된다는 것과 같다. 결국, 평가받길 원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빠르고, 자연스레 평가를 한다. 이것은 무의식적이며, 거의 본능에 가깝다. 단지 노골적으로 점수화하지 않았을 뿐이고, 상품처럼 등급으로 줄 세워놓지 않았을 뿐이다.
즉,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나다.
하나의 인간으로서, 마치 작품이나 물건처럼 점수화되고, 등급화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경쟁을 부추기는 언행들과 끊임없는 줄세우기에 진절머리가 난 것이고, 타인의 가십거리로서 소비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평가 자체를 완전히 거부한다거나, 완전한 침묵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끊임없이 평가를 내린다.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다. 반대로 평가당하는 입장에서는 거부할 자유가 있다. 물건처럼 점수화되고, 등급화되어 순위가 매겨지는 것에 불쾌해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공공연한 평가는 매우 무례한 것이며, 조심해야할 지점이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우린 도달할 수 없다.
우린 타자에 대해 늘 궁금하고, 타자에 대해 늘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같이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감내해야 할 호기심과 고통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요구되는 수 많은 기준으로 분류되어지고, 평가내려진다. 사회는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할 생각도, 볼 생각도 없다. 그저 하나의 부품으로서 부품의 역할을 잘 해내는가 대한 판단만 존재한다. 결국 등급화, 점수화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인간이 부품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에 대항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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