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이나 여론을 보다보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로 자주 나뉘는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구도 속에서 항상 '피해자 중심'으로 생각하자는, '피해자 인권이 중요하지, 가해자인권이 뭐가 중요하냐'는 소리가 자주 나온다. 이렇듯 우리가 '피해자'를 중시하게 된 것은, 우리가 접하기 힘들었던 피해자/가해자의 소식들과 수사과정에서의 부주의함, 제도적 결함 등을 빠르고, 신속하게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이러한 여론을 생각해보자면,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도 크다고 생각한다.
과거 필자는 '인심은 광에서 난다',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서로 아우성치고, 침묵을 강요한다'와 같은 글을 짤막하게 쓴 적이 있다. 그와 비슷하다. 다들 사는게 힘들어지게 되면서, 피해자와 약자의 입장에 감정이입을 더 잘할 수 있게 되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가해자-피해자 구도가 좀 더 손쉽게 만들어지고, 가해자에게는 처절한 응징과 보복을, 피해자에게는 보상과 포용을 펼친다.
물론 나는 이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들이고, 또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법이 현실 반영을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가해자-피해자의 도식 구조가 극명한 대비효과를 내면서 사람들의 고민도 사라지게 만든다는 점이다.
편하다.
가해자와 피해자. 가해자는 응당 처벌받아야 하므로 마음 놓고 비난을 해도 된다. 나의 울분과 분노를 다 받야만 한다. 그리고 피해자에게는 따스한 관심을 줘야 한다. 이러한 감정해소는 일시적 감정해소로 끝이 나버린다.
우리가 고통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왜 20-30대의 취직문제, 집값문제, 노인문제, 복지문제, 여성문제에 이야기하는가. 그것은 사회적 환경과 제도적 뒷받침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변환경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집이 너무나도 가난한 10살짜리 아이가 빵을 훔쳤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이에 대해 뭐라 이야기할 것인가. 이 아이는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일 뿐인가? 우리는 그 아이의 잘못된 행위보다, 빵을 훔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그 배고픔 그 지독한 가난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런 환경에 대해 분노를 표할 것이다. 그것은 환경과 제도의 손질을 가져올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에 있다.
범죄에 있어서 가해자-피해자는 금방 도식화되고, 구분이 잘 된다. 요즘 터지는 싸이코패스적인 사건들을 보면 '성악설'을 믿고 싶게 만들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미숙한 법과 제도를 보자면, '피해자 인권도 못 챙겨주면서 가해자 인권을 신경쓰냐'는 한탄도 충분히 이해될 법하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단순하게 가해자로 구분짓고 처벌해버리고 끝내버릴 일인가. 사회와 환경만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쩌면 사회와 환경의 피해자였을지 모를)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우린 제2의 가해자와 제 2의 피해자를 계속 양산하게 될 것이다.
물론, 한때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나로썬 가해자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는 나의 주장이 스스로도 탐탁치 않긴 하다. 솔직히 굉장히 싫고 화도 난다. 하지만 더 이상 가해자와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잘못을 되돌릴 순 없지만, 속죄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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