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오래된 이야기(?)다.
유병재의 '나의 아저씨'논란이다.
당시에는 그냥 별 생각없이 보고 넘어갔으나, 여기에 좀 더 글을 정리하여 올려놓는다.
유병재 방송인이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보고 너무 좋았다는 댓글을 달자, 이에 대해 '폭력적인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였다. 이에 대해 유병재는 '옳지 않는 가치관을 지닌 캐릭터가 드라마에 나오는 것일 뿐, 드라마 자체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고 반박하였다. 이에 대해 논란이 생기자 유병재 방송인은 사과문을 개재했던 사건이다.
개인적으로 유병재 방송인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 이 글은 이 드라마의 '미화'가 얼마나 '문제' 가 되는가? 대한 글이지만, 유병재 방송인의 글이 참이라는 것을 전제로 쓰고 있으므로 다소 중립적이지 못합니다.
** 이 글의 댓글에 '유병재 나의 아저씨'에 논란 자체에 대한 제 생각을 중립적으로 밝혀 놓았습니다.
우선 하고 싶은 말은 '현실과 가상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이라는 것은 일정부분 현실을 기반으로 허구적 세계, 가상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품은 자유롭게 현실을 비판하기도, 반영하기도 하며, 이러한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사고를 확장해 나간다.
허나, 사람은 인지능력이 있고, 현실을 기반으로 살아가기에 '작품을 작품으로서' 생각하거나, 즐거움을 느끼는데 그칠 뿐이다. 작품들이 어떤 이에게는 꿈을 심어줄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나, 그것은 '본인이 그렇게 느꼈기에' 생각하고, 판단한 결과일 뿐이다. 개인의 영역이라는 소리다.
유병재에게 비판이 아닌 비난을 가한 이들은 인간을 매우 수동적인 존재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당 창작물을 관람함으로써, 그것을 옹호하게 되거나, 따라하게 될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즉 창작물과 미디어 앞에서 인간은 100% 휩쓸린다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다.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안다. 폭력, 살인이 등장하는 스릴러 영화를 관람하고서 그것을 따라하는 사람은 없다. 따라하는 이들은 아직 미성숙한 사람들일 뿐이고, 예외적인 사람일 뿐이다. 우리는 그들을 교정하고,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주관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교육을 해야지, 창작물 자체에 원인을 돌려서 막아서는 안 된다.
인간을 수동적인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외부 환경에 원인을 돌리는 논리는 모든 규제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랍국가가 여성에게 히잡을 강요하는 논리도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남자는 수동적이고, 여성이 몸매를 드러내는 것은 남성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므로(?) 가려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게 되는 것이다. 술, 담배, 폭력, 살인, 게임 역시도 마찬가지다. 게임을 규제하는 논리는 미성년자는 주관적 판단력이 아직 미숙하므로,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게임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논리다. 인간에게 안 좋은 것들이 등장하는 모든 매체, 창작물을 지우고 나면 남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들의 논리에 의하면 '남성의 데이트 폭력'을 취재한 뉴스는 '남성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 된다.
사람들은 그렇게 멍청하지가 않다. 대부분은 사리분별할 줄 안다. 물론 미디어와 창작물이 관객들에게 일부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에 불과할 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가치관에 의해 알아서 거르고 판단할 것이다. 물론 일부는 심하게 휩쓸릴 수도 있다. 허나 휩쓸린 그들이 잘못된 인식,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우리는 교육할 수 있고, 주의를 줄 수도 있다. 그 일부는 미성숙한 사람일 뿐이다. 결국 창작물 보단 개개인의 해석, 사고영역에 일어나는 문제라는 소리다.
작품 내에 모든 것들은 주제를 위한 '보조적인 장치'에 불과하다. 나의 아저씨에서 나오는 일부 남자가 폭력적인 것은 이런 개차반의 인간도 있다는 것이고, 이 인간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추후 시나리오의 흐름이다. 저런 캐릭터가 있다고 해서 드라마가 '폭력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자를 때리세요.'라는 주제를 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태극기 휘날리며'는 전쟁을 조장하는 영화인가? 작품이 특정 주제를 '정당화'하고 있는지 여부는 캐릭터와는 별개이며, 주제에 대한 생각은 개개인의 해석영역에 들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지적하는 것은 '자신만은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다른 대중들은 미디어, 창작물에 휩쓸릴 수 있으니까, 제한해야 한다'와 같은 우월적인 자기인식에서 기반된 지적일 뿐이다. 이번 일도 그렇고, 서양에서 불고 있는 PC운동의 사례를 보면 극단적인 것이 많다. 너무 지엽적이고, 용어, 등장인물 하나에 세세하게 다 신경쓴다. 물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좋고, 긍정적인 효과도 많다. 우리가 생각없이 접하게 되는 부분, 특히 일상적 용어 같은 경우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PC운동이 이제는 작품 창작의 '규제'로 작용한다는 것은 분명 문제다. 이는 분명히 PC운동의 독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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