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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논쟁이 일어나는 이유 : 기회의 확대와 접근성 차이에 대한 태도

어둠속검은고양이 2018. 5. 11. 22:31

왜 인터넷에서는 늘 싸움이 일어날까?


이에 대한 답변은 필자가 전부터 생각해왔던 것들의 연장선에서 답이 나올듯하다.

바로, 문제에 접할 수 있는 기회의 확대와 무관심, 그리고 이에 대한 태도문제 이다.


1. 현대 대중 매체의 발달 : 접할 수 있는 기회의 확대

현대 대중 매체의 발달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데 반해, 개개인의 시야와 사고력은 한계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배워야 할 지식은 늘어만 가는데, 교육 시간은 부족해졌다. 결국, 증대된 발언의 기회는 대화와 토론이 아니라 감정소모와 싸움으로 얼룩지게 되었다.


2. 과거의 공론화 : 소수에 의한 공론화

세상은 넓고, 이에 대한 분야는 무수히 많으며, 종류는 다양하다. 이것에 대한 정보는 앞으로도 계속 새롭게 생성되고, 소멸될 것이다. 과거에는 매체 발달이 미흡했기 때문에 각자 관심영역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쳤다. 시민운동도 관심있는 사람들끼리 이야기가 오갔다. (사회 문제에 대한 운동이 대학생들 중심으로 일어났던 이유이기도 하다.) 즉, 문제 인지 상황이 굉장히 한정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관심있는 이들끼리 소통이 된 후에야 점차 대중들에게 확산되는 공론화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론화 과정의 장점은 나름 검증된 지식들, 혹은 식자층의 1단계적인 필터가 된 지식으로 공론화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단점은 정보 통제가 훨씬 쉬웠다는 것도 있다.) 이러한 지식마저도 그나마 관심있는 이들에게서나 활용이 되곤 했지,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사실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소수에 의한 공론화이기 때문에 좋다고 말할 순 없다. (현대와 비교된다.)


3. 현대의 공론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하지만 현대 대중 매체의 발달은 이것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마구잡이식의 정보가 오가고, 이 정보는 신속하게 공론화된다. 어그로 끄는 이가 승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분란과 다툼이 일어나는데, 사실 이는 나쁘지는 않다. '비효율적'이라서 그렇지. 원래 민주주의 시끄러운 것이 답이 아니겠는가. 허나, 이 분란, 싸움의 문제점은 '접하는 기회가 쓸데없이 많다'는 것과 '사람마다 접하는 기회가 다르다'는 배경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어떻게 보면 일상적인 관점, 국민적 관점에서 다양한 접근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긍정적이다.) 대신에 문제는 무작위적인 정보와 무작위적인 다양한 문제들이 동시에 공론화되어 뒤죽박죽 되어 버린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는 정치적으로 '우선순위'를 결정짓는데 있어서 아주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


4.개개인의 인지능력과 인지상황들 : 무관심과 한계

사람들은 모든 사회문제에 대해서 알 수 없다. 저~기 멀리 아프리카 수단이 식수문제로 고생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알까? 요즘엔 광고가 많이 나오니 잘 알테지만, 좀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떠한 문제로 식수가 모자라는지 알고 있나? 관심 있는 사람이라도 '기부'하는데 그칠 뿐, 정말 극소수의 관계자들, 종사자들만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와 같은 일반사람들은 어떨까? 공익광고에 나온 정도의 수준만 알 것이고, 아는데 그칠 뿐, 이에 대해 문제를 이야기 하거나, 기부하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


인터넷에서는 무수히 많은 사회적 문제와 논쟁이 떠다니는데, 우리는 그것을 간접적으로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는 문제들은 정확히 '인터넷에 얼마나 머무느냐'에 따라 접할 기회가 달라진다. 그리고 개개인의 취향, 특성, 관심사 등에 따라서 또 달라질 것이다. 거기다가 개개인의 가치관, 이해도 등등 달라질 요소는 더 있다. 이에 따라 우선순위, 여론의 집중도는 제각각이게 되고, 이러한 부분은 다시 정치적 영향으로 작용하게 된다.


5. 논쟁이 일으키는 태도들

그런데 사회운동과 관련하여 논쟁이 일어날 때의 글들을 보면 한결같다. 관심이 있어서 정보에 대해 잘 아는 이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상대방도 당연히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대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모르는 이들을 향해 혹독한 비평을 날린다. 또 어떤 이들은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가지고 공격하기도 한다. 모르는 것 자체에 대해서 관심가지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순 있으나, 어떤 논쟁에 대해, 무관심헸던 것 자체를 그 논쟁에 대한 주장과 연결지어서 이야기해선 안된다. 어차피 논쟁이라는 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 아니겠는가. 짧은 한 마디 가지고 서로에 대해 얼마나 파악할 수 있겠냐만은 내가 알고 있는 상식들, 배경들이 당연하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히 대화와 논쟁에 방해요소로 작동한다. 물론 친절하게 그럼 일일히 설명해줘야 하는가? 미리 적당히 알고 이야기해야 되는 것은 아닌가? 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논쟁'에 대한 입장에 따른 차이이긴 하나, 논쟁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긴 하다. 그냥 가십거리로 생각하고 접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분명히 방해되는 것은 마찬가지긴 하니까....


'무지가 죄다. 무관심한 것이 죄다.' 라고 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이 사람의 말의 맥락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저 문구에 동의할 수는 없다. 정치에,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대가는 분명히 본인에게 돌아온다. 하지만 무관심에 대해서는 관심을 '촉구'하는데 그쳐야지, 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죄도 아니다. 단지 모르는데 고집 부리는 것이 문제지.

과연, 개인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개인과 연관된 모든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 다 알고, 조사하여 판단할 수 있는가? 애초에 그런 시간이 있는가? 없다.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근대화 이후, 교육과 지식, 정보가 부르주아의 산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생업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시대에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했던 것은 노예들이 일을 대신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에 와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관심사에 따라서, 입장과 가치관에 따라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인터넷 논쟁에서는 전혀 상대방의 지식 여부, 사고력 여부는 고려 대상이 되질 못한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배경지식들, 알고 있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이야기한다. 논쟁에 참여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말하는 방식은 싹 숨긴 채,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곤 한다. '무관심한 대가. 침묵은 동조.'라고 욕하며, 공감을 끊임없이 강요하고, 상대방을 '무지한 인간, 악인'으로 몰아가기 바쁘다. 모르는 문제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은 분명히 지양해야 할 태도이지만, 인간적 한계상 우리는 대부분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으로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거기서 대화와 타협, 조율이 나오는 것이다. 인터넷이 논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사실 애초에 너무 많은 분야에서 너무 많은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개인들에게 다가오고, 우리는 그것을 처리(?)하기 급급해져서 그런걸지도 모른다. 대중 매체 발달은 정보의 투명성과 공개성을 높이고, 이에 대한 정치권의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민주주의'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으나, 반대로 그만큼 혼란과 고통을 감수하도록 만들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이 밑받침이 되었더라면, 문화적으로 성숙한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라 생각하지만, 지금은 경제적 침체와 더불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서 아쉬울 따름이다.

6.결론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아졌으나, 파편화된 정보들을 부분적으로 취하는데 그치게 될 뿐이고, 이렇게 많은 정보들 속에서 우린 모두 '장님 코끼리 만지는 논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모적인 논쟁은 모두 서로를 인정치 않는 태도에 있다. 모르는 이가 한소리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열낼 필요가 없다. 이것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것은 무시하거나, 설득 뿐이다. 물론 그 설득은 매우 지루한 ,구구절절한 소리가 오가야 할 것이다. 반대로, 잘 모르는데 오지랖 부리는 인간들도 상당히 매우 많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보 부족에 대해서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고, 싸우려 든다. 어느 문제에 대해 관심이 생기면 관련 정보부터 좀 살펴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p.s 그래서 나의 대화 접근법은 '일단 모른다'이다.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른다. 그렇기에 내가 내 생각을 말하기 위해선 내가 어떠한 사고과정을 거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내가 TMT(Too much takler)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은 이곳에 주로 펼쳐놓는데만 그친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 논쟁이 일어난 곳을 보면 절대로 TMT가 통하지 않는다. 일단 내 생각 말하는데 급급하고, '응~ 못 알아들으면 니가 멍청한 탓'하고 넘겨 버린다. 천천히 대화하려는 호흡과 너그러움은 사라진지 오래다. 실상 쏟아지는 정보와 문제를 생각한다면, 그만한 여유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빠른 감정소모와 싸움에 지친 듯하다.


p.s 2 

이는 과거의 일과 비교하며 물타기하는 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과거의 제도, 사상은 현재의 시각에서 와서 맞지 않는 것도 많고, 사회적 기술도 마찬가지로 미흡했던 것들이 많다. 허나 논쟁에 있어서 많은 이들이 이러한 부분은 망각한 채, 자신들의 의도에 맞춰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제도와 사상은 다시 새로 고치는 게 맞다. 청산할 수 있는 것은 청산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것을 끌여들여 현재의 논쟁와 연관지어 해석하는데는 의문이 들 뿐이다. 과거의 일들은 현재의 일들에 대해 이해의 여지 정도에 그칠 뿐, 직접적인 정당성과는 별개다. 


p.s 3

현대 대중 매체는 사람들에게 싸울 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실제로 자신들의 주장에 근거를 댈 필요도 없이 말이죠. - national geographic channel 닐 타이슨 인터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