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지식의 수용능력과 판단력에는 한계가 있다.
도구는 늘 양면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도구에 압도당할 때, 우리의 판단력과 이성은 마비되어 도구에 의해 휘둘려진다.
지난 세월 인터넷의 외연적 확장은 수 많은 이들을 압도했고, 그들을 '삶의 관객'으로 만들어버렸다. '외부로부터 안전한' 자신을 느끼며, 인터넷상에서 타자의 삶을 보고, 즐기며, 말초적인 반응을 하는데 급급해졌다. 마치 자동차 운전석에 앉을 때, 안정감을 느끼며 자동차에 대한 공포감을 잊고 과속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러한 안정감은 그 인터넷 속의 반응들이 자신을 향하게 되는 순간 깨져 나가게 되고,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기방어를 하게 된다.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절대 신화의 상대주의적 시각과 공감성을 무기로 도망치고, 회피한다.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하는 것은 맞는 말이나, 그것이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수 많은 자료와 논거를 가지고서 가능성의 폭을 줄여나가는 작업을 반복하고 한편으로 가능성을 열어두어 판단의 오류를 방지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적정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적정하게 가능성을 닫는다. 중요한 것은 그 가능성의 '정도'다.
그러나 인터넷에서의 '가능성의 정도'는 모호하다는데 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수 많은 자료들은 주관적 생각이나 조작, 왜곡 등의 개입가능성이 높고, 파급력이 강력하다. 그러나 지켜보는데 익숙한 '삶의 관객'들에겐 지금 당장 보이는 것이 중요하지, 배경따윈 아무래도 좋다. TV 프로그램을 지나가는 오락으로 즐기는 사람들 중에 누가 일일히 그 프로그램의 숨겨진 배경, 상징적 의미를 찾고 있겠는가.
그래서 SNS를 하는 수 많은 이들은 단편적인 정보에 즉각 '반응'할 뿐이며, 그 반응들이 현실의 자신을 위협하는 순간, 모든 가능성을 펼쳐놓으며 너스레를 떤다. 그러한 가능성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가능성을 부정하는 이들을 오히려 공격하여 '자신의 안전'을 담보한다. '이론적으로 맞는 말인'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이들은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분하면서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은 '안전한 현실'에 안주하고 있되, 인터넷에서의 자료와 글들은 '가상'일 뿐이라 여기면서도, 그 가상에 대한 반응에 스스로 위협과 불편함을 느끼고 타자를 공격한다. 그리고 이러한 쓸데없는 '가상'의 정보들은 계속 양산되고, 확장되어, 마침내 현실로 드러나게 되고, 역으로 가상세계가 현실을 지배하게 된다.
주관적 판단력과 추론력, 심리적인 측면을 고려한, 현실기반의 인터넷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p.s 쓰다보니 교육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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