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방황이 아니라 부유, 추락은 한없이 이어진다.

어둠속검은고양이 2018. 4. 10. 21:56


추락은 한없이 이어진다.

더 이상 추락할 곳은 없으리라 생각하는 것도 잠시 뿐이다.

추락하고 있는 새는 땅에 닿아 죽기 직전까지 추락을 지속할 뿐이다.

애초에 날아본적도 없는 나를 새에 비유하는 것도 웃기지만서도.


난 지금 부유(浮游)하고 있다.


방황이 아니라 부유(浮游).

오래전부터 난 스스로 부유(浮游)하고 있다고 느꼈다.

예전에도 몇 번 이런 글을 썼던 것 같다.


난 방황에 대한 이상한 동경같은 것이 있었다.

마치 사람들이 만루 홈런이라든가, 밑바닥까지 추락한 후에 모든 것들을 뒤짚어 엎는 인생역전 드라마를 꿈꾸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고생은 사서 한다'라는 말을 믿었고, 경험을 해보는 것들이 무척이나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방황을 하고 싶었지만, 애초에 목적의식도, 방향도 없는 나에게 방황이란 있을 수 없었다. 


일단 부딪쳐보자는 마인드로 했던 여러 봉사활동과 동아리활동, 공사장 알바, 학생회활동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자소서에 쓸 말이 있다는 거 정도? 하지만 나의 경험들은 지극히 평범했고, 타인에게 자랑할 정도의 꺼리도 되지 못했다. 글을 포장하는 것도 미숙한 탓에 내 자소서는 재미도, 감동도 없는 흔해빠진 삼류 소설이 되어버리곤 했다. 그것들이 나에게 일종의 추억이 되긴 했지만, 세상은 추억만 가지고 살기에는 너무나도 버겁다. 그 때 그 시절 함께 했던 이들은 모두 사회인으로 살아가기에 바쁠 뿐, 나에게나 한 켠의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난 그 부유(浮游)의 늪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요즘 사람들을 보면 내가 한 노력들이 과연 노력이라 말할 수 있나 싶기도 하다. 8대 스펙이니 뭐니 그런것도 제대로 갖추지는 못햇으니까. .....모르겠다. 그 빌어먹을 그 부유(浮游)의 늪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여전히 난 그대로다. 하고 싶은 활동이라던가 일은 있지만, 그만큼 능력도, 용기도 갖추지 못했고, 그렇다고 이 몸 한껏 불사를 열정까지도 없다. 열정은 있는데, 어디다 쏟아부어야 할 지 모르겠다. 이것 역시도 핑계인가.... 왜 자꾸 어느 한 순간, 그리 뒤돌아 보는지 모르겠다. 방향을 잡았으면 그 길로 쭉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이 영 안 되는 것이다. 방향을 잡긴 한 걸까. 아니면 현실의 내 자신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난 대학교를 잘가면 다 잘 될거라 믿었다. 그래서 노력했고, 좋은 대학교를 갔고, 인정도 받았다. 일이 술술 풀릴 거라 생각했으나, 난 누구보다도 일이 잘 풀리지 못했다. 근거 없는 환상, 믿음의 비참한 말로인 것이다. 대학생 지인들 대부분은 일이 잘 풀렸다. 일이 좀 안 풀린 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길을 찾아 걸어가고 있다. 허나 문제는 스스로 길을 걷지 못하고 있는 나다. 일이 풀리지 않더라도 뚝심있게 자신만의 길을 꿋꿋이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에 적응 잘해서 흔히 말하는 좋은 테크를 탄 것도 아닌 내 자신이 그렇게도 한심해 보이는 것이다. 겁이 많아서 늘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적 고민과 이상적 고민 아래서 그저 떠다니고만 있는 것이다.


부유(浮游)하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뭔가 활동을 했던 때가 그나마 더 나았던 것은 자명하다. 어떻게서든 자신을 다잡으면서 허우적허우적 댔다. 지금은 그럴 고민할 때가 아니다. 스스로 길을 선택했으면 가야만 하는데, 쭈삣쭈삣 가는 것이다. 차라리 한없이 밑바닥으로 추락해서 바닥을 찍고 달려보고 싶은데, 또 그렇게 밑바닥으로 쭉 추락할 용기는 없고, 그렇다고 치고 올라가지도 못하는 것이다. 더 안 좋은 것은 점진적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점진적 추락은 추락이 일어나는 동안 나를 갉아먹는다. 사회적 활동 줄었고, 몸무게는 늘었고, 건강은 나빠졌으며, 인맥도 줄어가고, 늘어나는 건 나이와 생각뿐이다.


........ 근성, 노력, 밑바닥, 방황, 인생역전, 열정과 같은 단어를 난 좋아했다. 그리고 내가 그런 것들의 중심에 서서 뭔가 해쳐나가길 바랐다. 허나 그것들은 나를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중산층 집에서 무난하게 자라서 대학졸업까지 마친 나에게 인생의 굴곡보단 그저그런 직선뿐이다. 누군가는 분명히 내 고민이 배부른 고민이고, 그게 행복한 것이라 말할 것이다. 되도록이면 굴곡이 없는 삶이 좋은 것이라 말할 것이다. 실제로 현실 속에서 만루 홈럼과 인생역전 드라마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난 내 자신이 시련을 겪으며 좀 더 단단해졌으면 했다. 열심히 살아가길 바랐고,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도 아름다워 보였다.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들이기에 동경했을지도 모른다. 추락하고 있는 지금이 시련이라시련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서도, 시련이 아닌 느낌이다. 그저 서서히 갉아먹혀 가고 있는 느낌이다.


부유(浮游)하던 그 날부터 난 추락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추락하고 있다.

더 이상 떨어질 바닥이 있을까? 라 묻지만, 나에게 추락할 여지는 남아있다.


추락은 여전히 한없이 이어진다.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부디 이제 그만 박차고 오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