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터넷에서는 늘 싸움이 일어날까?
이에 대한 답변은 필자가 전부터 생각해왔던 것들의 연장선에서 답이 나올듯하다.
바로, 문제에 접할 수 있는 기회의 확대와 무관심, 그리고 이에 대한 태도문제 이다.
1. 현대 대중 매체의 발달 : 접할 수 있는 기회의 확대
현대 대중 매체의 발달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데 반해, 개개인의 시야와 사고력은 한계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배워야 할 지식은 늘어만 가는데, 교육 시간은 부족해졌다. 결국, 증대된 발언의 기회는 대화와 토론이 아니라 감정소모와 싸움으로 얼룩지게 되었다.
2. 과거의 공론화 : 소수에 의한 공론화
세상은 넓고, 이에 대한 분야는 무수히 많으며, 종류는 다양하다. 이것에 대한 정보는 앞으로도 계속 새롭게 생성되고, 소멸될 것이다. 과거에는 매체 발달이 미흡했기 때문에 각자 관심영역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쳤다. 시민운동도 관심있는 사람들끼리 이야기가 오갔다. (사회 문제에 대한 운동이 대학생들 중심으로 일어났던 이유이기도 하다.) 즉, 문제 인지 상황이 굉장히 한정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관심있는 이들끼리 소통이 된 후에야 점차 대중들에게 확산되는 공론화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론화 과정의 장점은 나름 검증된 지식들, 혹은 식자층의 1단계적인 필터가 된 지식으로 공론화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단점은 정보 통제가 훨씬 쉬웠다는 것도 있다.) 이러한 지식마저도 그나마 관심있는 이들에게서나 활용이 되곤 했지,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사실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소수에 의한 공론화이기 때문에 좋다고 말할 순 없다. (현대와 비교된다.)
3. 현대의 공론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하지만 현대 대중 매체의 발달은 이것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마구잡이식의 정보가 오가고, 이 정보는 신속하게 공론화된다. 어그로 끄는 이가 승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분란과 다툼이 일어나는데, 사실 이는 나쁘지는 않다. '비효율적'이라서 그렇지. 원래 민주주의 시끄러운 것이 답이 아니겠는가. 허나, 이 분란, 싸움의 문제점은 '접하는 기회가 쓸데없이 많다'는 것과 '사람마다 접하는 기회가 다르다'는 배경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어떻게 보면 일상적인 관점, 국민적 관점에서 다양한 접근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긍정적이다.) 대신에 문제는 무작위적인 정보와 무작위적인 다양한 문제들이 동시에 공론화되어 뒤죽박죽 되어 버린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는 정치적으로 '우선순위'를 결정짓는데 있어서 아주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
4.개개인의 인지능력과 인지상황들 : 무관심과 한계
사람들은 모든 사회문제에 대해서 알 수 없다. 저~기 멀리 아프리카 수단이 식수문제로 고생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알까? 요즘엔 광고가 많이 나오니 잘 알테지만, 좀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떠한 문제로 식수가 모자라는지 알고 있나? 관심 있는 사람이라도 '기부'하는데 그칠 뿐, 정말 극소수의 관계자들, 종사자들만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와 같은 일반사람들은 어떨까? 공익광고에 나온 정도의 수준만 알 것이고, 아는데 그칠 뿐, 이에 대해 문제를 이야기 하거나, 기부하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
인터넷에서는 무수히 많은 사회적 문제와 논쟁이 떠다니는데, 우리는 그것을 간접적으로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는 문제들은 정확히 '인터넷에 얼마나 머무느냐'에 따라 접할 기회가 달라진다. 그리고 개개인의 취향, 특성, 관심사 등에 따라서 또 달라질 것이다. 거기다가 개개인의 가치관, 이해도 등등 달라질 요소는 더 있다. 이에 따라 우선순위, 여론의 집중도는 제각각이게 되고, 이러한 부분은 다시 정치적 영향으로 작용하게 된다.
5. 논쟁이 일으키는 태도들
그런데 사회운동과 관련하여 논쟁이 일어날 때의 글들을 보면 한결같다. 관심이 있어서 정보에 대해 잘 아는 이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상대방도 당연히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대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모르는 이들을 향해 혹독한 비평을 날린다. 또 어떤 이들은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가지고 공격하기도 한다. 모르는 것 자체에 대해서 관심가지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순 있으나, 어떤 논쟁에 대해, 무관심헸던 것 자체를 그 논쟁에 대한 주장과 연결지어서 이야기해선 안된다. 어차피 논쟁이라는 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 아니겠는가. 짧은 한 마디 가지고 서로에 대해 얼마나 파악할 수 있겠냐만은 내가 알고 있는 상식들, 배경들이 당연하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히 대화와 논쟁에 방해요소로 작동한다. 물론 친절하게 그럼 일일히 설명해줘야 하는가? 미리 적당히 알고 이야기해야 되는 것은 아닌가? 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논쟁'에 대한 입장에 따른 차이이긴 하나, 논쟁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긴 하다. 그냥 가십거리로 생각하고 접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분명히 방해되는 것은 마찬가지긴 하니까....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른다. 그렇기에 내가 내 생각을 말하기 위해선 내가 어떠한 사고과정을 거쳐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내가 TMT(Too much takler)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은 이곳에 주로 펼쳐놓는데만 그친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 논쟁이 일어난 곳을 보면 절대로 TMT가 통하지 않는다. 일단 내 생각 말하는데 급급하고, '응~ 못 알아들으면 니가 멍청한 탓'하고 넘겨 버린다. 천천히 대화하려는 호흡과 너그러움은 사라진지 오래다. 실상 쏟아지는 정보와 문제를 생각한다면, 그만한 여유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빠른 감정소모와 싸움에 지친 듯하다.
p.s 2
이는 과거의 일과 비교하며 물타기하는 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과거의 제도, 사상은 현재의 시각에서 와서 맞지 않는 것도 많고, 사회적 기술도 마찬가지로 미흡했던 것들이 많다. 허나 논쟁에 있어서 많은 이들이 이러한 부분은 망각한 채, 자신들의 의도에 맞춰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제도와 사상은 다시 새로 고치는 게 맞다. 청산할 수 있는 것은 청산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것을 끌여들여 현재의 논쟁와 연관지어 해석하는데는 의문이 들 뿐이다. 과거의 일들은 현재의 일들에 대해 이해의 여지 정도에 그칠 뿐, 직접적인 정당성과는 별개다.
p.s 3
현대 대중 매체는 사람들에게 싸울 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실제로 자신들의 주장에 근거를 댈 필요도 없이 말이죠. - national geographic channel 닐 타이슨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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