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다는 것은 중요하다.
이것은 삶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덕목과도 같다.
이것은 자아, 가치관, 성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개인의 삶을 뒤바꿀 수도 있다.
이러한 당당함은 스스로에 대한 인정에서 비롯된다.
타자의 인정이 아닌 스스로의 인정.
상대도, 나도, 동등한 하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율적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본인 스스로를 인정할 때 비로소 당당해질 수 있다.
이는 그 사람의 지적 능력, 운동 능력, 싸움 등과는 별개다.
하지만 학생때는 완전한 자율적 존재가 되기엔 버겁다.
또래 친구들의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존재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이 때의 '당당함'은 '타자의 인정'과 동일시 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기에 '폭력'을 통한 과시를 보이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과시적인 폭력은 타자의 인정을 넘어서서 추앙을 받고, 이는 자신감, 당당함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폭력수단이 약해지는 순간, 자신의 가치가 사라진다고 믿으며, 실제로 또 다른 폭력에 의해 제압당한다.
사회에 나가는 순간, 학창시절의 '폭력'은 힘을 잃고, '권위'와 '권력'이 이를 대체한다. 그리고 이렇듯 폭력에 의존하여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던 이들은 '권위'와 '권력' 앞에 굴종하거나, 현실을 외면하며 '폭력적 인간'으로 남아있곤 한다. 반대로, 학창시절 피해자였던 이들이 '폭력'을 추앙하여 후에 '폭력적 인간'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허나, 진짜 문제는 학생시절에 학습된 '당당함 = 타자의 인정'이라는 공식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학생시절과는 달리 사회에서는 인정이 다른 것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당당함 = 타자의 인정' 이라는 공식에 얽매여 있다. 그래서 사회에서 요구하는, '타자의 인정'을 위해 목을 맨다. '나'가 없으니, 자존감이 없고, 자존감이 없으니 타자의 인정에 목말라 하며, 타인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수단들 - 외모나 몸매, 혹은 권위와 권력, 자본을 추종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갑질을 해댄다. 상대방을 깔보고, 무시함으로써 자신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며, 그로써 '타자의 인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당'해진다. 이들은 자식들에게도 '잘못된 당당함'을 가르친다. 자식들을 오만방자하게 키우며, 기죽지 말라고 가르친다. 타자에 대한 행동들은 당당함과는 완전히 무관하다. '당당함'이란 스스로에 대한 존재에 긍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존감과 연관되어 있지, 타인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갑질을 강요하는 사회'가 됐다.
뉴스를 통해 간간히 보도되는 갑질은 표면적으로 드러날 정도로 노골적인 사항에 해당될 뿐이지, 더 큰 문제는 갑질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다. 분명 우리는 갑질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갑질을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어디에도 갑질을 강요하는 것은 없어보인다.
하지만 우린 끊임없이 타인을 평가하고, 타인의 평가에 의해 자신의 존재를 평가한다. 외모로, 돈 버는 능력으로, 귄위로, 권력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우리 역시도 그러한 것들로 평가를 당한다. 그리고 평가 결과는 타자에 대한, 타자에 의한 인정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인정들은 '당당함'으로 치환된다. 이러한 당당함으로 우린 우리의 가치를 확인한다.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것은 인간으로서 지니는 원초적 불안감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이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 들고, '당당해진 나'를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고, 불안감을 해소하려 든다.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행위는 결코 나쁘지 않은 것이며, 자연스러운 행위다. 허나, 불안감을 해소되는 지점이 '잘못된 학습'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문제다.
우린 스스로에게 당당해져야만 한다.
p.s
처음에는 ' 타자의 인정은 필요 없다. 타자의 욕구에 맞출 필요도 없다. 허나, 최소한 타자에게 무시당하지는 않아야 한다. '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사람은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허나, 되짚어 보면, 무시-인정은 결국 타자에 의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역시도 타자에 의한 변화였다. ....우리는 어째서 타자의 무시-인정과 같은 시선들에 대해 예민해지는 것일까.
우린 완전히 자율적일 수 없고, 이러한 자율성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시험대에 오른다. 마찬가지로 이유로 스스로에 대한 당당함(자존감)도 끊임없이 시험대(자존심)에 오를 것이다.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을 지키는 과정이며, 무척 피곤한 삶이다.
......나 역시도 무시당하지 않는 삶과 스스로에게 당당한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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