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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코르셋 운동의 본질과 평가로 얼룩진 사회

어둠속검은고양이 2018. 6. 8. 15:04

*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요즘 탈코르셋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탈코르셋....

이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는 불필요한 성별대결로 이어졌기 때문인데, 사실 이 운동은 성별대결로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 운동은 남녀를 떠나서, 모든 인류에게 해당할 수 있는 운동이며,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운동이다. 무슨 소리냐고?


이 운동의 본질은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거부하겠다'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우린 지쳤다.

우린 타인에게 평가받는데 익숙해졌고, 이에 대해 깊은 환멸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학생 때는 성적과 품행으로, 대학생 때는 학점과 스펙으로, 사회인이 되었을 땐 돈 버는 능력으로, 결혼 후에는 자식과 자산으로.......외모는 365일 내내, 평생을 따라다닌다.


우린 지쳤다.

남성들도, 여성들도 모두 평가 받는다. 그리고 우습게도 우리 역시 타인을 이러한 잣대로 평가한다. 쟤는 어디에서 일한다더라, 쟤는 외모가 별로다. 쟤는 집이 잘 산다더라 등등.... 우리는 수많은 가십거리로 타인을 소비하고, 타인 역시도 우리를 가십거리 삼아 뒷담화 해댄다. 그렇다면 타인이 나에게 가하는 평가 중에서 가장 '노골적인 평가'가 무엇이냐? 라고 묻는다면, 남성은 '능력' , 여성은 '외모' 아닐까 한다.


...사실 남자들도 외모에 스트레스 받는다. 면접 준비를 위해 머리도 꾸미고, 피부도 좋게 가꾼다. 물론 여성에 비하면 새발의 피겠지만서도. 여튼, 하고자 하는 말은 그렇다. 우리가 타인에게 평가받을 때, 1순위로 거론되는 것들이 무엇인가?


여성 = 외모 / 남성 = 능력 이다.

"소개팅할래?" "어디 회사 다닌데?, 무슨 일 한데?" "어떻게 생겼어? 예뻐?" 와 같은 일상적인 사소함에서부터 면접자리까지. 물론, 면접 자리에서는 노골적으로 외모를 따지진 않을 것이지만, 서비스직에서는 공공연한 비밀로서 외모는 필수불가결한 요소 중 하나다.


여성들이 '탈코르셋'을 외치는 이유가 '외모'에 치중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 때문에 그렇다. 외모 평가 받는데 지쳤고, 우린 평가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결국 '탈코르셋'운동이 '외모'에 치중되긴 했지만, 그것의 본질은 '외모'가 아니다. '타인의, 나에 대한 평가 거부'가 핵심이다. 굳이 치자면, '외모 평가 거부'가 '타인의 평가 거부'의 첫 단추일 수는 있겠다. 타인의 평가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이 운동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운동이다. (문제는 외모로 치중되면서 성별대결로 치환되어 버렸다는 것이지만...)


하지만 여성들에 비해 이 운동에 적극적이지 않는 이유는 외모 지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적거나, 좀 더 수용할 수 있는 폭이 넓어서 그럴 것이다. 물론 '능력 평가에 대한 거부 운동'을 한다면, 20-30대 젊은 남성들이 적극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그런 운동을 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고, 본인들이 능력이 부족하다는 셀프 증명밖에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뭐라 해야 하나... '외모 차별'은 있어서 안된다는 어떤 도덕적 당위성은 있지만, '능력 차별'은 당연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능력만큼 돈 버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사회적 인식 속에서 능력 기반의 경쟁은 건전한 것이고, 모든 개인은 능력 개발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고정관념이기 때문이다. 결국 '타인의 평가 거부'운동이 확대되지 못하고, 외모에 갇히게 된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운동은 역시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요구되는 것은 '타인보다' 잘난 능력-외모다. '상대적 외모' , '상대적 능력'이다. 상대적으로 뛰어난 것들이 요구되고, 이에 맞춰져야만 먹고 살 수 있는, 혹은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즉, 외모 역시도 '경쟁능력'에 편입되면서 논란이 생기게 되었다. 외모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도덕적 당위성과 '외모도 능력'이라는 사회적 인식 하에 생기는 '정당한 경쟁력 싸움'이라는 두 가지 입장이 싸우고 있는 셈이다. '타인의 평가 거부'라는 것이 과연 현실적일 수 있느냐? 라고 묻는다면 필자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다.


탈코르셋이라는 단어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 하는 말도 한결 같다. "화장하든 말든 그것은 니 자유고, 우린 뭐라 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그로 인한 불이익은 너가 감수해야 할 일이다." 라는 것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입장이다. 필자도 이 부분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다.


전세계의 모든 이들이, 다 같이, 동시에, 외모를 안 꾸미고, 능력개발을 안하면, 타인의 평가 거부 운동이 효력을 발생할 수 있을 것이지만, 이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인정받고 싶어할 것이고, 누군가는 먹고 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코르셋 운동'은 분명히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는 점에서 의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너무나도 이상적인 슬픈 운동이며, 성별대결로 인해 본질이 가려져버린 안타까운 운동이라 생각한다.


p.s 탈코르셋이 향해야 할 칼끝은, 획일적인 기준을 강요하는 미용산업, 미디어산업이다. 이들은 판에 박힌 기준을 세워놓고, 외모로서 줄 세우기를 강요한다. 그렇기에 탈코르셋은 남성-여성으로 나뉘어 다툴 이유가 없는 운동이기도 하다. 남녀를 떠나서 미용산업에서 말하는, '외모가 뛰어난 사람'은 소수일 수 밖에 없다. 타고나게 되는 외모마저도 경쟁력으로 삼는다면, 살아기에 너무 퍽퍽하지 않는가. 외모가 일정부분 경쟁력을 가진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겠지만, 획일적 기준을 강요하는 미용산업, 미디어산업을 거부한다면, 적어도 지금보단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