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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목적과 행복과 공부, 그리고 삶의 방식

어둠속검은고양이 2018. 5. 15. 18:38

삶의 목적을 여전히 모르겠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거창한 무언가일 수도 있고, 본능과 같은 자손번식일 수도 있다.

허나 분명한 건 기왕 던져진 것 행복하게 사는게 낫지 않는가?와 같은 물음이다.


과거에 필자는 삶의 목적을 '행복'이라 규정했었다. 허나, 과연 행복해야만 하는가? 의문을 던져 보게 되는 것이다. '행복해야만 해.'라는 것은 일종의 강박관념처럼 우리를 괴롭힌다. 그래서 더욱 우리는 우리를 행복한 모습으로 보여주기 위해 포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모습을 통해서 '난 내 삶을 잘 살고 있다'라는 것을 인정받으려 하는 것이다.


각자의 삶의 방식은 저마다의 방식일 뿐인데, 어째서 타인의 인정이 필요할까. 삶의 방식에 옳고 그름의 정당성 따위는 존재치 않는다. 다만 그러한 것들이 나에게, 혹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따라 나뉘어질 뿐이다. 다만 '영향'이 문제인지라,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는 것일 게다.


삶의 목적은 살아가는 동안에 찾을 수도, 찾지 못할 수도 있고, 그 목적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자신의 행복'이라는 것은 삶의 주된 목적 중 하나일 수도 있지만, 다다익선-다홍치마와 같은 보조적인 목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삶의 행복은 '내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극대화된다. 세상을 바로 볼 수 있을 때, 우린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결과는 중요치 않다. 우린 늘 결과를 예측하면서 최선의 선택을 할테지만, 결국 결과는 도박처럼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린 자율적인 선택권의 극대화를 위해 이해의 노력을 하고 있는 셈이고, 자율적인 선택권의 극대화는 삶의 행복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은 역설적이게도 선택권을 제한함으로써 삶의 행복을 찾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너무나도 많은 선택지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그것 역시도 본인의 선택일 뿐이겠으나, 아무래도 다채로운 선택을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다시 돌아와서, 우리가 다양한 경험을 중시하는 이유도 세상을 입체적으로 보고,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경험을 하기엔 우리의 인생이 너무나도 짧다. 세상은 넓고, 무수히 많은 사람과 문명과 사회와 역사가 존재하고 우린 찰나를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행해지는 다양한 경험은 개인의 능력과 이해도에 따라서 또 다르게 다가온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는 세상에 대해 간접 경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직접 경험할 때 경험의 질을 높여주기 위해 하는 것이다. <아주 이상적으로 훌륭한 모범생적인 답안이다.> 하지만 그러한 공부들이 삶의 경험을 갉아먹고 있는 상황은 굉장히 역설적이다. 


정리하자면, 삶의 목적 - 행복 - 자율적인 선택 -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 - 다양한 경험들 - 공부로 연결이 된다. 그리고 이 중에서 [자율적 선택 - 다양한 경험들 - 공부]는 행복에 있어서 장점 뿐만 아니라, 단점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추구하는 '삶의 행복' 역시도 과연 삶의 목적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하다.


결국 남는 것은 나와 내가 인지하는 세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