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어째서 그녀일까.

어둠속검은고양이 2018. 9. 30. 20:17

'이곳에 기억이란 오지 않는 상대방을 기다리는 방식이자, 포즈임을 배운다.' -

....문득 그녀가 생각나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어째서 그녀일까.

세월을 걸어오면서 나는 여러 번의 사랑을 했고, 여러 번의 이별을 겪었다. 미처 내 마음을 깨닫지 못해 흘려보내기도 하고, 한심한 내 처지에 차마 용기내지 못하고 보낸 적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와 헤어진 이후의 세월들이며, 그렇다고 그녀가 나의 첫사랑인 것도 아니었다. 말하자면 어떠한 방향에서 생각하든 그녀가 특별한 기준이 될만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허나, 내가 읽어가는 것들 속에서 그녀의 편린들은 종종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그녀는 나른한 오후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

그녀의 과거를 나는 알지 못한다.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다. 그녀의 삶의 궤적은 현재 나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만이 중요했을 뿐이다. 그녀는 타인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지긋지긋하다는듯이 나른한 눈빛을 보이곤 했다.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아왔던 것일까.


그녀는 사람을 상대하는데 매우 능숙했다. 자신의 강점과 처지를 알고 있었고, 타인이 자신에게 어떤 생각을 가질 지 읽어내는데 능숙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그녀의 연륜과 세월을 짐작하곤 했다. 그러나 그녀는 태도와는 다르게 매우 여린 멘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을 몹시 사랑했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이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녀가 행하던 식단이나 몸관리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식이자, 세상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한 방식이었으며, 그녀만의 사투였다. 그녀는 종종 나에게 기대어 쉬어 가곤 했다. 선후배로서 오랜 만남을 가졌던 우리는 연인으로서의 만남은 무척이나 짧았다. 채 피지 못하고 끝나버린 관계였다.


그래서일까.

스쳐 지나가는 글들에서, 이야기 속에서 그녀의 편린들이 내가 추구하던 인간상에 맞물려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내 인간상이 바뀌어갈 때쯤이면 이 편린들 역시도 사라지지 않을까 한다.


p.s

' ' - 인용부분, 권여선, 사랑을 믿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