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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존재, 사랑한다는 의미

어둠속검은고양이 2018. 9. 6. 16:46

세월이나 시간이라는 단어는 결국 사람이 만들어낸 관념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그 무언가'에 무수히 많은 개념과 관념을 불어넣는다. '그 무언가'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에 기초하여, 직선상에서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흐른다'라는 표현을 불어넣는다. 세월, 시간, 흐른다, 나아간다.. 그리고 이와 연관된 무수히 많은 개념들을 파생시킨다. 사람의 성장을 비교하기 위해 '나이'라는 개념을, 특정한 시기를 구분짓기 위해 '과거','현재','미래' 등과 같은 개념을 사용한다.


인과관계, 과거에서 미래로, 선형적으로 나아감, 물이 흐르듯 흘러감 등의 특성을 지닌 '그 무언가'는 대표적으로 '시간'이라는 단어로 지칭되어진다. 필자가 '그 무언가'라고 쓴 이유는 '시간'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는 그 언어적 단어에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고정관념들에 의해 '그 무언가'에 대한 생각을 제한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무언가'를 시간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설명하기란 무척이나 어렵다. 이러한 설명은 마치 사과를 설명하는데, '사과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와 같이 해당 단어를 그대로 가져와 설명하는 것과 같다.


'그 무언가'에 24시(시간을 가리키는 단어)를 빼고, 년도, 월, 일수(세월을 가리키는 단어)를 뺀다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과거-현재-미래 라는 단어는 특정한 사건이나 시기를 기준으로 나눠지는 상대적 개념일 뿐이기에, '그 무언가'를 가리키는 단어가 아닌 이상 굳이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시 돌아와서, '그 무언가'를 지칭하는 단어들을 모조리 빼버리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앞으로 나아간다', '흐른다'라는 특성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필자가 여기서 사용하는 '그 무언가'라는 단어 그 자체는 (비유적 표현이지만)'흐른다'라는 것 자체- 즉, 시간의 '속성/특성'이 아니라는 의미- 이며, 우리는 그것을 시간으로 지칭하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 무언가'를 지칭하는 '시간'이라는 단어를 벗기고 나면, 과연 '흐른다'는 개념자체도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시간이라는 단어가 있기에 '흐른다'라는 특성을 지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그 무언가'에 관한 모든 언어적 표현들, 관념을 삭제시키고 나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그 끝에 남는 것은 결국 '있다'라는 존재뿐이다.


책상이 있고, 의자가 있고, 책이 있고, 노트북이 있고, 내가 있고, 글자가 있다. 이것은 '과거에는 없었고, 현재에는 존재가 진행중이며, 미래에는 소멸 or 존재가 여전히 진행중일 것'이다. 부득이하게 과거-현재-미래의 표현을 빌릴수 밖에 없는 까닭은 '있다(be)'라는 사실, '존재'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선 시간적 표현이 필수적으로 따라 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있다(being)'라는 것에는 이미 '현재'라는 시간이 함유되어 있다. 시간과 관련된 모든 관념을 벗어던진다고 하지만, '있다'라는 표현 그 자체가 시간에 종속되고 마는 것이다.


내가 시간이라는 관념을 벗어던지는 생각을 한 까닭은 '있다-존재'라는 것,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함이었다. 관계라는 것에 생각을 파고 들다보면 자연스레 존재로 생각이 옮겨가게 되고, 결국 시간-존재까지 다다를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관계는 존재가 있어야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 당신이라는 존재.... 이러한 존재는 시간이라 지칭되는 그것을 벗어날 수 없으며, 끊임없이 변해갈 것이고, 변해가고 있으며, 변해왔다.


내가 좋아했던 당신은 어떨까. 당신이 좋아했던 나는 어떨까. 우리는 늘 변해가고, 사랑하던 그 순간은 그 한순간의 '점'에 지나지 않기에, 우리는 늘 새로워지는 상대를 늘 새롭게 사랑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외모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가치관 등은 영원불멸-동일성을 지니지 않을까. 그러나 이 역시도 우리는 속단할 수 없다. '흐른다'라는 시간적 관념에 속해 있는 이상 영원불멸은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이라는 관념에 의해 '영원불멸'이라는 관념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모순적이다.


시간을 초월한다는 것이 바로 영원불멸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가리킬 수 있는 것들은 어떠한 '관념', '정의' 들이다. 예를 들어 '세 직선으로 이루어졌고, 내각의 합이 180도인 것을 삼각형이라 한다.'라는 정의로 내려진 '삼각형'은 과거에도 삼각형이었고, 지금도 삼각형이며, 미래에도 삼각형일, 변하지 않을 확고한 정의다. 미래에는 내각의 합이 360도인 것을 삼각형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느냐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표면적 용어' 변경 - 기표의 변화일뿐, 내각의 합이 180도이며, 세 직선으로 이루어진 도형이라는 기의, 그 자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여튼 간에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영원불멸은 시간을 초월할 수 없는 존재 자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속성이다. 이 존재는 시간, 현실에 존재하기에, 모두가 각자의 역사를 지니듯, 항상 축적하며 늘 새로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는 어릴 때 온순했던 아이가 성인이 되서는 호전적인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것처럼 가치관, 성격 역시도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시간이 성격의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이는 시간을 따라 서서히 혹은 급격히 변해온 것이다.


다시 말해, 서로를 향했던 사랑은 결코 다시는 오지 못할 순간이라는 것이다. '아차' 하는 순간마다, 0.01초도 안되는, 그 찰나의 순간마다 상대를 늘 새로이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한다'라는 말이 식상하거나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들을 때마다 설레는 것은 다시는 오지 않을 그 순간을 표현하는 말이자, 늘 새로워지는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며, 지난 '사랑의 감정'을 이어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시간에 의해 1회성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단어이자, 당신과 나의 관계를 표현해주는 순간의 단어이며, 아낄 수 없는 말이자 가벼울 수 없는 말이다. 1회성으로 끝난다는 것은 가벼울 것 같으면서도, 단 한번이기에 무겁다.


세월이 흐른 지금 나와 당신은 또 새롭다. 당신은 그저 있을뿐이고, 나 역시도 그저 있을 뿐이다. '있다'는 것 외엔 어떠한 미사여구도, 표현도 존재치 않는다. 조금 수사적 표현을 빌리자면 세월의 흔적이 각자의 양 어깨에, 얼굴에 내려 앉았다와 같은 그런 정도?


내가 사랑'했'다라고 말하는, 사랑'하고 있는' 당신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미지, 표상일 뿐이다. 함께 공유하지 못했던 시간의 간극은 커져서 시간의 연속성마저도 무너뜨리고, 마침내 '사랑한다'는, 늘 새로운 의미마저도 지워낸다.


이 글은 '사랑한다'라는 말에 담긴 의미 - 관계에 대한 생각들이 존재와 시간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확장된 글이나 별 의미 없는 글이기도 하다. 그저 난 '사랑한다'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쓸데없이 확장되는 글을 쓸 때 주의해야할 것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