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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패션인가 - 각자의 입장에 서서 말할 수 밖에 없는.

어둠속검은고양이 2018. 10. 7. 21:55

3주 전쯤인가, '가난이 패션인가'에 대한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59만원짜리 명품 운동화(?)인데, 복고풍 서민패션을 차용했다는 것으로, 닳아빠진 모양과 테이프로 이어붙인 모양의 운동화였다. 이에 대해 외신에서도 논란중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필자가 예전에도 글을 썼다시피, 과연, 가난이라는 것은 부끄러워 해야할 것들인가? 에 대해 다시금 질문을 던져본다. 가난이란 무엇인가. 가난이라는 것은 '가난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만이 지녀야 할 이미지인가.


저 명품 운동화에 비판을 가하는 이들의 사고 기저에는 이미 '가난'이라는 이미지가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가난하지 않는 이들과 가난한 이들로 구분짓고, 가난한 자들은 약자이자, 불쌍한 자(?)로써, 감히 가난하지 않는 이들이 가난한 자를 따라하거나,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사고방식을 지닌 것은 아닐까. 오히려 가난한 자와 가난하지 않는 자에 대한 구분짓기야 말로 문제 있는 것은 아닐까.


가난한 사람으로 정의되어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약자로서 특별한-어쩌면 비정상적인-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으로서 보이고 싶어할까. 아니면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하나의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할까.


딴에는 행한다고 하는 배려가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살다보면 무수히 많은 활동 속에서 위치가 바뀌고, 약자가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약자를 좀 더 배려하려고 한다. 신체적인 이유로, 정신적인 이유로, 환경적인 이유로... 어느 이유에서든 활동 중에 뒤쳐질 수 있고, 우리는 그 활동에 대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으로 기다려 주는 것이다. 그 마음은 '아..쟤 때문에 뒤쳐지는데...짜증나, 하지만 내가 배려를 해줘야지.'라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특별히' 배려해준다는 것이 아니라, '나도 언제든지 그럴 수도 있는데, 공교롭게 이번에는 네가 그런 경우가 되어버린' 일상적으로 발생한 일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가난한 이를 코스프레(?)하지 말라는 것은 이미 가난한 이/가난하지 않은 이를 구분지어 놓고, 가난한 자는 우리가 '특별히' 배려해야 하는 존재라는 의식을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저 남과 다르지 않는 한 사람이 아니라, 철저하게 '남과 다르다-일반적이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도둑맞은 가난이라는 말은 가난을 특정 집단의 전유물로 만들어버린다. 그런 의미로, 가난을 패션화한다는 것은 가난을 전유물에서 탈피시켜서 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가난이 패션인가'라고 비판하는 이들의 마음이 일견 이해가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가난'이라는 말은 자신의 삶을 가리키는 말이며, 끝없는 고통이고,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말이다. 그런 가난을 가져다가 패션화시켜 버리는 것은 일종의 기만이자, 타인의 고통을 비웃는 행위이기도 하다. 나의 고통이 누군가에게는 패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러한 패션을 달고서 나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친구들을, 지인들을 보면 어떤 기분이 갖게 될지 추측해본다면 조심스러워질 수 밖에 없다. 이 마음에는 상대의 고통을 헤아리려는 자상한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 자상한 마음이 오히려 상처를 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참 까다로운 존재다.)


사실, 부끄러워 했던 것, 돈이 없어서 괴로웠던 것들.... 그런 것들은 그들에게 그 자체로 삶인데, 그것을 제 3자(필자를 포함한, 비판을 가한 모든 이들)가 가난에 대해 어쩌고 저쩌고 얘기하는 것조차도 어찌보면 오만이다. 하지만, 입장이 다를 수 밖에 없는, 타자로서 생길 수 밖에 없는 오만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 맞다고 말할 수는 없다.

타자를 생각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