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라는 말.
공감능력의 중요성이 커져가는 이 때, 공감능력은 오히려 퇴보했다.
공감하는 듯한 사람들의 분노는 순간적인 감정에 치우져져 있고, 사람들의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도덕적 교육이나 법/불법의 규정, 그리고 이성판단에 의해 이루어질 뿐인다. 이 사이에 공감능력이 끼어들 자리는 매우 낮다.
공감능력은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자라나는 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으리라 추측한다.
경험이 다양해질수록 상황에 따른 감정이입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추론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경험하지 않아도 감정적 추론에 의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공감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반면에 추론능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자신이 직접 쳐해보는 경험을 했다면, 공감할 가능성이 높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공감능력을 키우기 위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다양한 체험뿐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경험하지 못한다.
책으로 미디어로 경험을 바라보기만 할 뿐 후각으로, 촉각으로, 몸으로 경험하지 못한다. 체벌이나 훈육이 되지 않아서, 맞는 입장이 되어 보질 못하고, 아픔이라는 것을 느껴보지 못한다. 어린아이가 잠자리나 벌레를 장난으로 괴롭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바로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날카로운 물건에 찔려보거나, 크게 넘어지거나, 세게 부딪쳐 보았다면, 그러한 괴롭힘들과 아픔을 타인에게 줄 수 있을까. 본인이 당해봐야지 타인에게 행사하는 것을 주저할 수 있는 법이다. (물론 반발심이랄지, 악에 받쳐서 똑같이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도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아이들이 갈수록 악독해지는 것은 경험부족에 의한 공감능력 결여라고 생각한다.
공감능력이 결여된 소시오패스 경우, 이성에 의한 행동제약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들었다. 어떠한 행위를 했을 때, 나에게 불이익이 돌아오게 되는 것을 숙지시키는 것이다. 이것과 비슷한 경우다. 현재 아이들은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도덕을 체득하지 않는다. 하면 안된다고 배우고, 하면 불이익을 당하기에 안해야 한다고 인지할 뿐이다. 결험은 미디어로 대체된다. 그래서 그들의 범죄는 날로 악독해진다. 느껴보질 못했으니까. 선(line)이라는 것을 모르니까. 게다가 안 들키면 그만이니까. 혹은 들켜도 어리다는 이유로 처벌이 미미하니까.
'개인'이 중시되면서 우리는 타인에 대해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그나마 '단체생활'이라는 것을 배우나, 결국 상대평가에 의한 적에 불과할 뿐이다. 나-개인 우선이라는 사고방식이 자연스러운 흐름이고, 그에 맞춰 '법'도 개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회적 환경에 의한 정상참작은 있어야 겠으나, 더 이상 나이, 성별, 인종과 같은 개인적인 특성으로 정상참작이 되는 일은 없어야할 것이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확실한 처벌과 불이익이 있어야만 아이들의 범죄는 사라질 것이다. 아이들이 악독해진 이유는 공감능력을 등한시한 입시위주의 교육탓이 크다. 국민들이 범죄자를 강력하게 처벌하길 바라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인성에 의한 자구력이 부족해지고 있다면, 처벌을 통한 억제효과를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보고, 만지고, 듣고, 체득하는 공감능력을 키워주지 않는 이상 흉악범죄는 늘어만 갈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범죄예방을 위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몸으로 익히는 공감능력일 것이다.
p.s.
시간이 돈이고, 모든 사람과 경쟁해야만 하는 현대 사회에서 체험-경험을 통한 정서적 함양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우린 궁극적으로 개인이 존중되면서도 사회를 위해 협력적인 집단문화로 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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