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짜뉴스에 대해 말이 많다.
필자가 가짜뉴스에 대해 직접적으로 썼던 글은 없지만, 현대 사회에서의 언론의 문제점이라든가, 인터넷 상에서의 과잉정보, 왜곡된 정보로 인한 판단력의 악화에서부터 정보에 대한 경계 및 태도 지적, 하버마스의 공론장에 이르기까지 여러 글 속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다룬 적이 많다.
<투명사회>라는 책을 읽고 필자가 투명사회의 폭력성과 하버마스의 토론장에 희의감을 표했으나, 여전히 하버마스의 토론장 -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에 무게를 두는 입장으로서,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책임지는 자유로 꼽는 입장으로서 한 마디 하고자 한다.
일단 앞서 하나의 질문을 던져 보고 싶다.
과연 직접민주주의는 최고의 덕목이자, 최고의 가치인가? 라는 질문이다.
직접민주주의가 민주주의라는 사상의 최종적 발현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또한 민주주의는 '자기이 행동(자유)하고 그 행동한 대가(책임)를 치루겠다'는 의미를 근간으로 한다는데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논리적(?)인 사상으로 생각되어 지는 편이고, 왕정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는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공산주의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다수의 소수에 대한 횡포를 정당화시켜주는 사상이기도 하다. 과반수만 넘으면 나머지의 의견은 묵살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부여한다.
이러한 단점을 떠나서도 민주주의를 그나마 가장 올바른 정치라고 가정했을 때조차도, '직접' 민주주의가 과연 가치가 있느냐에 대한 물음을 가질 수 있다.
몇몇 글에도 썼다시피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것은 진리다. 딴에는 집단지성을 믿는다고들 하지만, 수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의 정보 - 그렇기에 하버마스는 완전한 수평적 관계와 완전한 정보 공개를 전제로 토론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로, 제각각 사고능력을 통해, 제각각 판단하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소모적인 논쟁이 발생될 것이다.인류가 만약 구석기 때부터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했더라면, 인류는 고대국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답변이 달라질 질문이긴 하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행동에 자유가 있으며,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직접민주주의는 최고의 가치를 지녔다 할 수 있지만, 어떠한 효율이나, 현실적인 부분들을 고려한다면 직접민주주의가 결코 최고의 가치를 지녔다 말하긴 어렵다.
여튼 간에 필자는 일단 민주주의 가치를 긍정하고, 직접민주주의 방향으로 나아가길 원한다는 가정 하에 글을 쓸 것이다.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솔직히 필자도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이런저런 뉴스를 보면서 어느 것이 진실인지 복잡해질 때도 있고, 잘못된 정보로 인해 판단에 혼선이 오는 것을 볼 때마다 답답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가짜뉴스를 처벌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된다.
'가짜뉴스'라 불리는 것들은 근거가 전혀 없는 황당무계한 것들도 많지만, 그 이전에 정보라는 것은 어떻게 글을 쓰느냐, 어떤 측면을 부각하고, 드러내지 않느냐 등에 따라 왜곡될 여지가 다분하다. 여기서 어느 '정도'까지가 '진실'되고 '거짓'이라 누가 결정할 수 있는가.
가짜뉴스 방지법은 말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이는 조던 피터슨이라는 유명한 교수가 트랜스젠더 관련 법안 C16에 대해 우려를 표했던 것과 정확히 같은 맥락이다. 물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아무리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할지라도, 그 말들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발언이나 혐오 발언도 마음껏 하라는 방종의 의미는 아닐 것이다.
허나, 그러한 '방종'에 대해서 우리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제재를 할 수 있을 뿐이며, 그것은 '법적'으로 금지한다는 것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사회적, 문화적 제재는 소비자 개개인이 특정 상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하는 것처럼 '자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행동이다. 자연스러운 도태인 것이다. 그러나 이를 법으로 제정할 경우, 이는 인터넷을 전반적으로 감시하는 용도로 남용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가짜뉴스를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자발적인 자료조사, 교차점검, 시민의식의 함양이다. 물론 그것은 매우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토대를 만들어 진정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법으로 일괄적으로 재단해버리겠다는 것은 쉽고 빠른 길, 행정 편의만을 생각한 결과다.
비록 이렇게 글을 써지만, 필자 역시 가짜뉴스를 매우 싫어한다. 그것은 올바른 토론장을, 직접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스스로 감내해야할 고통으로 받아들일 생각이다.
p.s.
가짜뉴스 방지법을 찬성한다고 해서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재갈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필요악이랄까. 어째서 찬성하는지 이해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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