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관계 메카니즘과 전원버튼

어둠속검은고양이 2018. 10. 3. 17:29

얼마전에 지인의 고민이라 해야 하나....고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다들 갖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관계를 맺고 끊는데 있어서 일종의 각자만의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메커니즘은 상당부분 겹친다고 해야 할까, 일정부분 공유되는 지점이 있다. 예를 들어, 친근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대하는 태도, 싫어하는 사람에게 대하는 태도, 싫어하지만 일종의 '예의'를 위한 표정관리라든가, 적절하게 거리감을 유지한다든가, 점차 멀어지기 위한 포석들 같은 것이다.


가령,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과 친하게 지냈는데, B에게 큰 실망을 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A는 B에게 두 가지 중 하나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직접적으로 욕하면서 싸우거나 / 데면데면하게 굴다가 '언제 밥이나 먹자'와 같은 형식적인 말만 적당히 하다가 멀어지는 것이다. 이럴 경우에 B 역시도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다. A와 싸우거나 / A가 자신에게 대하듯이 자신 역시도 데면데면하게 굴다가 형식적인 말만 적당히 하고서 멀어지는 것이다.


싸우는 경우는 둘 중 하나의 결과로 확실하게 나타난다. 1) 대놓고 쌩까게 되거나, 2) 화해를 하고서 다시 친해지는 것이다. 싸움이라는 것이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일종의 '서로에게 있어서의 선(line)'을 보여주는 신호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관계가 개선될 여지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데면데면 멀어지는 경우는 결과가 거진 한 가지다. 그냥 끝이다. 우연히라도 마주치면 '어,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나중에 밥 한번 먹자.'와 같은 이야기 30초간의 어색함이 이어지고 서로 갈 길 간다. 물론 앞으로 밥 한번 먹을 일은 없다. 이는 서로가 잘 안다. 이젠 완전한 남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여기서 보자면, 이별(?)이라 해야 하나 - 멀어짐의 과정이 있다. 가까워지는 과정도 당연히 있고, 헤어짐과 만남이라는 것에는 일종의 과정들(메커니즘)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사회성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데면데면 멀어지는 것은 최소한 상대를 '적'으로 돌리진 않는다. 사실, 내가 상대에게 실망했다고 해서, 상대가 나에게 일부러 악의를 갖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메커니즘이 어그러질 때가 있다.


일방적인 통보, 잠수, 회피와 같은 것이다. 둘 사이에 묘한 어색함이 감돌면 자연스레 각자 헤어질 준비를 한다. 허나, 한쪽이 전혀 그럴 마음도, 눈치도 채지 못했는데, 한쪽이 잠수탄다면? 아니면 헤어짐을 통보한다면? 당연히 다른 한 쪽은 당황, 분노, 어이없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데면데면하게 굴어서 멀어지게 될 땐, 이유를 모르더라도, 상대가 나를 부담스러워한다는 신호를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시간을 준다. 하지만 위와 같이 갑작스러운 끝맺음은 대처도 안되고, 이유도 모르고 그렇게 되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어차피 안 볼 사람이고, 이제 완전히 남으로 돌아설건데 상대가 준비되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기적으로 들릴 수는 있으나, 그게 사실이긴 하다. 내가 '내 관계'를 끝내는데 타인에 대한 고려는 필요없다 여길 수도 있다.


이러한 관계가 흔히 보이는 것이 SNS다. 마음에 안들면 차단하면 그만이다. 마치 컴퓨터에 오류가 생겼는데, 해결될 기미도 안 보이고 다 귀찮아져서 전원버튼 눌러서 재시작해버리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은 컴퓨터에도 안 좋듯이, 사람의 메커니즘에 있어서도 매우 안 좋은 결과를 낳는다. 흔히들 말하는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지인이 그런 경우였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답답해져서 잠수를 탔다....잠수라기 보단 그냥 몇몇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당연히 그 사람들은 요즘 왜 연락이 없냐, 뭐하고 지내냐는 등의 안부나 만남을 주선했지만, 까닭 모를 회피에 이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관계는 한쪽의 일방적인 부팅으로 끝나버린 것이다. 하지만 양쪽 모두에게 찝찝함을 남겨놨다. (본인이 그렇게 만들었지만) 본인도 이별의 메카니즘(?)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마음에 안드는 것이다.


필자는 그것을 컴퓨터에 비유하며, 그냥 털어버리라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필자 역시 살아오면서 그랬던 적은 없었나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지만서도, 그런 시도는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컴퓨터를 리셋하듯이 그냥 관계를 무로 되돌리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동아리 사람들 중에 그렇게 동아리 사람들을 모르는 척 쌩까고 다닌 분도 있었으니까, 이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불행하게도, 이미 맺은 관계는 무로 돌릴 수는 없다. 과거를 그냥 덮는 것이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한 마디는 해주고 싶었다. 관계라는 것이 살다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어쩌다 내가 전원버튼을 누를 수도 있고, 또 상대가 전원버튼을 눌러서 꺼버릴 수도 있다고.... 메카니즘이 어그러지면, 혹은 어그러뜨리게 되면 납득이 되진 않겠으나, 저렇게라도 이해한다면 좀 더 마음이 편해질 거라 생각한다. ( 영문도 모른 채, 미완으로 끝나버리는 관계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너무 목맬 필요는 없다.

그러나 손쉽게 전원버튼을 누르다가는 고장나고 말테니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