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쯤엔가.
일명 아싸의 브이로그라는 컨텐츠가 약간의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이것이 논란이 된 것은 소위 말하는 '기만질'이라는 것인데, 이건 과거 필자가 썼던 '가난이 패션인가'라는 글과 맥락이 비슷하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서 이 '아싸'라는 단어에 대해서 좀 짚어보자.
'아싸'. 아웃사이더의 준말(?).
예전에 필자가 인싸템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면서 인싸와 아싸를 구분짓는 단어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원래 아싸는 자발적인 아싸와 비자발적인 아싸가 있으며, 대체적으로 이 모든 것을 가리키는 단어로서 나홀로족을 지칭하는 단어에 가까웠지만, 인싸라는 단어로 사람을 구분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 아싸라는 단어는 단순히 나홀로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비자발적 아싸 - 외톨이에 가까운 느낌을 지니게 되었다. 결국 '아싸'라는 단어는 부정적이고, 부끄럽고, 사회적인 고립을 의미하게 됐다.
다시 돌아와서, 결국 이 슬픈(?) 아싸라는 단어는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정체성을 말해주는 단어가 되었기에, '가난을 패션화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을 지니게 됐다. 우리가 가난을 패션화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일어나는 이유는 그것을 패션화하든 말든 그 사람의 자유이긴 하지만, 인본주의적 사고에 입각해서 타인의 고통을 철처하게 무시한, 어쩌면 이기주의에 가까운 발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그건 그 사람의 자유이기에 우리가 강요할 수는 없다. '넌 왜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지하니? 넌 가난한 사람에 대해 좀 공감해야 해.'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만, 우리는 우리 나름의 가치관에 의거하여 속으로 욕을 하고 지나칠 것이다. 행동력 있는 사람은 직접적으로 비판을 할 것이며, 성질 급한 사람은 주먹을 날릴지도 모른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싸'라는 단어는 이제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원치 않지만 지니게 된, 강제적인 그런 단어로서, 사용에 유의해야 할 단어가 되었다. 물론 아싸라는 단어를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고, 필자가 말한 것처럼 '나홀로 족'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단어의 정의는 생각보다 두루뭉실하며, 그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아싸-브이로그 라는 컨텐츠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그 기만질(?)에 분노했다.
물론 그 단어를 쓴 사람은 기만하려는 목적에서 쓴 것은 아닐 테지만. 오히려 그 사람들은 아싸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기에 아싸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잘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몰랐다는 사실이 그의 행동의 결과물(기만질로 인한 고통?)에 면죄부를 줄 순 없겠지만,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 억울할 것이다.
크리스 락의 '그건 너무 하잖아?'라는 스탠딩 코미디를 소개하며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 가난한 애들은 부자들을 까도 돼. '빙산에 요트 몰고 가다가, 쳐박혀 뒤져라. X발 부자 새끼들.'
그런데 부자들은 가난한 애들을 까면 안돼. ....그건 너무 하잖아? '얼씨구, 파산한 놈들 보게!'
아싸라는 컨텐츠는 분명히 조심해야할 컨텐츠다.
그것은 누군가의 고통, 현실을 지칭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스러움을 가져와서 유행처럼 가벼운 소재로서 사용하는 것은 좀 너무하지 않는가. 사람에 대하여 어떤 정체성을 가리키는 단어를 쓰는 것은 당사자가 아닌 이상 조심해야 한다. 인터넷 매체가 발달된 이 사회에서 말이다.
p.s
이것에 대해 분노한 사람들이 대거 몰려가서 과할 정도로 욕설과 비난을 쏟아냈다고 들었다.
요즘 인터넷을 보면 건수만 생기면 남을 짓밞고 싶어서 안달난 것 같다. 인터넷 상에서 상대방이 나의 기분나쁨을 고려해줘야 하는 것을 당연시 여겨선 안된다. 인터넷은 넓고, 인생은 다양하다. 보는 시야와 시각은 다르고, 그렇기에 사람들 간에 오해가 생기기도 쉽고, 무지로 인해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할 가능성도 높다.
가서 비난을 일삼은 사람들은 역지사지를 주장하며, 기만당했다고 분노하지만, 정작 그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제목을 지었는지 고려할 생각이 없다. 오로지 자신이 기만당했다는 것만 중요하고, 이것에 분노하여 해소할 생각만 한다. 그러면서 당신이 기분을 나쁘게 했으니 문제라는 식으로 도덕적 포장으로 자신들의 그 무례한 행동을 정당화한다.
정 기분 나쁘면 가서 지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테지만 무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맛대가리가 없기로 소문한 음식점을 굳이 찾아서 음식점을 욕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소비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어서 거부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거부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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