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도 하지요.
날씨가 더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면 당신이 떠오르곤 해요.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못했던 당신이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당신과 수없이 지낸 한여름 날들이 인상 깊었기 때문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그저 당신이 아름다웠다는 그 단순한 이유 때문일까요.
에어컨 하나 없이 창문 하나 덩그러니 달린 단칸방에서 당신과 나는 밤을 지새우곤 했죠. 옥상 위에 지어진 벽돌 건물 위로 태양이 내리 쬐고 사라지면, 달궈진 벽돌들은 열기를 내뿜곤 했죠. 우린 그 더운 방안에서 꾸역꾸역 앉아서 탁자를 놓고선 노트북으로 당신이 좋아하던 공포 영화를 봤죠.
그거 알아요? 그 탁자도 당신이 탁자 같은 거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해서 산 걸요. 꽤나 고심했어요. 안 그래도 좁아터진 방인데, 너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싸구려 느낌이 들지 않는 탁자를 고르느라 고민 좀 했죠. 아쉽게도 그 탁자는 다른 사람이 요긴하게 쓰고 있어요. 이사올 때 넘겨주고 왔죠.
당신은 제 방이 대학교와 가깝다는 이유로 시험기간에 자주 찾아왔었죠. 저는 하나 있는 책상에서 공부를 했고, 당신은 탁자에서 과제를 종종 했죠. 그런데 저는 공부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사실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도통 기억이 나질 않거든요.
뚜렷하게 기억나는 건 밤산책할 때 앞장 서서 걷던 당신의 뒷모습과 한여름 밤의 열기 뿐이에요. 시험공부를 하다가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면 우린 종종 밤산책을 가곤 했어요. 당신이 방문하던 날, 제 단칸방의 열기가 유독 덥게 느껴졌던 것은 단지 한 명 뿐이던 제 방에 두 명의 사람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그래도 이 모든 추억들이 제가 당신을 떠올리는 이유가 되진 않아요.
날씨가 더워질 때면 당신의 모습이 종종 떠오르는 것이지, 추억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러한 추억들은 이제는 이 글을 쓰는 것처럼 생각에 잠기고 나서야 떠오르는 것들이에요.
아마도 더운 계절에 당신이 떠오르는 것은 단지 이 날씨가 당신과의 매개체이기 때문이고, 제가 당신을 떠올리는 이유는 당신에게 닿으려고 노력을 했고, 마침내 닿았지만, 그러나 끝내 잡을 수 없었던, 그리고 진정 닿을 수는 없었던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원래 잡힐듯 말듯, 그 아슬아슬한 간격이 더 아쉽게 만드는 법이니까요.
어쩌면 당신과 헤어진 것이 성격차이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문득 떠오른 당신 때문에 모처럼 오랜만에 당신 생각을 꺼내서 반추해봅니다. 하지만 더 이상 당신 생각에 매달리지는 않을 거예요. 아쉽지만, 놓쳐버린 기회에 대한 후회는 한번으로 족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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