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해 관심이 없다.
사람들이 관심있는 것은 상대방 그 자체가 아니라 상대방이 말하고 있는 주제뿐이다.
대화에서 상대방은 그저 그 관심사들을 펼쳐 놓게 만드는 도구일 뿐이다.
하물며 그 도구가 펼쳐놓는 대화의 주제가 내가 1도 관심없는 주제라면?
그건 그저 소음과 소음 공해를 일으키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묻는 안부들도 대부분 소식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대화하기 위한 시작점일 뿐이다.
마치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자!'와 같은 하등 의미없는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상대방 그 자체에 관심이 생기는 경우는 크게 2가지다.
첫 번째는 상대방에 호감이 생겨서 호기심이 생기는 경우인데, 여기서 호감이란 단순히 사랑(love)뿐만 아니라, 의리나 팬심과 같은 것들도 포함하는 걸 말한다. 그냥 상대방이 무얼 먹었고, 누굴 만났고, 어떤 일을 했고,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일상이 궁금한 것이다.
두 번째는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해서 말 그대로 호기심이 생긴 경우인데, 이것은 마치 과학자가 어떤 대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것처럼 순수하게 그 대상에 대한 호기심이다. 이 역시 상대방이 무엇을 배웠고, 어떤 것을 경험했고, 어떤 연인이 생겼는지, 오늘날까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한 것이다.
이 외에 상대방에 대한 관심은 정말로 상대방에 대해 궁금한게 아니라, 단지 상대방은 관심의 매개체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자면 말랐던 사람이 1년만에 2배로 모습이 불어서 나타났다거나, 성격이 밝았던 사람이 음울해져서 나타났다거나 하는 등 뭔가 변한 모습으로 인해 상대방의 근황에 대해 물어볼 수가 있다. 그래서 매일 치킨 피자를 먹었더니 살이 이렇게 2배가 됐어! 라는 답변을 받았을 때, 상대방의 모습이 2배가 된 원인을 알게 됨으로써 호기심이 해소되어 버린다. 상대방이 정말로 매일 어떤 치킨을 먹었고, 어떤 피자를 먹었고, 그 때 기분이 어땠는지는 궁금치 않다. 중요한 것은 원인에 대한 궁금증 해소였으니까.
지금 든 예시는 앞서 말한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관심이 생기는 경우의 두 번째와 유사하지만, 해소되는 지점이 엄연히 다르다. 이 경우는 궁금증이 상대방을 변하게 만든 원인들에서 생성된 것이기 때문에 원인을 알게 되는 순간 해소되고, 매개체에 대한 정보는 사족이 되어 버린다.
결국 대화에 있어서 상대방은 본인들이 원하는 관심사에 대한 교류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도구로서 존재할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해 정말로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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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적인 경우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어린아이들의 호기심이다.
어린 아이들이 외부 세상에 관심을 갖고 왜? 라는 질문을 던지듯이, 관찰하는 대상이 어떻게 행동하고, 무얼 먹고, 생김새는 어떤지 순수한 호기심을 지니게 되는 경우다.
이것은 상대방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라는 점에서 두 번째와 매우 유사하지만, 그 호기심의 주된 목적이 상대방에 대한 앎이 아니라 알고자 하는 내 욕구 충족이라는 면에서 두 번째와 궤를 달리한다. 여기서 상대방은 앎의 욕구를 유발하는 시작점이자, 충족시키도록 도와주는 매개체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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