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이 분명하게 구분되면 좋겠지만, 세상은 불분명하게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논란'이 되는 대부분의 것들은 '분명한 문제'라서 논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기준이 다른 지점이기 때문에 논란이 된다. 결국 어느 정도까지인지가 문제인 셈인데, 이 문제는 대부분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 즉, 뭉쳐서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러나 이렇게 뭉쳐서 한 목소리를 내서 결정되는 일종의 기준들은 생각보다 대다수를 만족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것은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인데,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사를 내비치는 사람은 매우 소수에 불과하며, 대다수는 방관 혹은 침묵하기 때문이다. 방관, 침묵하는 대다수의 이유는 생계 문제, 무관심, 귀찮음, 방법에 대한 무지 등 다양하다.
정치적 의견 표출을 할 창구가 복잡해지고, 다단해질수록 대중들의 관심은 멀어질 수 밖에 없고, 결국 소수의 의견에 정치가 휘둘리게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그를 뒷받침하는 제도나 시스템이 복잡하다. 국민 신문고나 청원이나 민원 등 나름대로의 직접적 소통을 할 창구가 몇몇 있긴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경우가 드물고, 필수 교양과목으로 지정되어 있지도 않다. (위정자와 정치인들은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또한 그 몇몇 소통 창구도 그저 보여주기식에 불과한 것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소수의 의견에 잘 휘둘린다.
여튼 간에 다시 이야기하자면 논란이 되는 것들은 정치적인 것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공론화 시키기에 애매한 것들도 많다. 아주 사소한 예로 연예인이 팬들을 무시하는 투로 말했고, 그로 인해 팬들이 상처를 받았다고 해보자. 이런건 연예인의 그 생활 태도, 몸가짐에 관한 논란일 뿐, 법적으로 이 연예인을 어떻게 어떻게 해주라고 요청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그 논란거리들은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외적인 부분에서 일어난다. 그 말은 결국 그 논란거리에 관심을 갖고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집단에게 초점이 맞춰지게 되므로, 이 논란에 의사표현을 하지 못했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가라앉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 문제가 몇몇 집단만 관심을 보일, 그런 논란 - 즉, 사회에 있어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중요하지 않는 논란들이 중복되다 보면 그것은 일종의 규율로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결국 정치화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예인의 과도한 의상이 문제가 되어 논란이 일어났다고 해보자. 처음엔 그 연예인에 대한 개인적 문제로만 논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비슷한 논란이 한 번, 두 번, 여러 번 일어나다 보면, 자체적으로 연예인의 의상에 대해 기준이 생기게 되는데, 그러한 기준은 결국 개인의 자유 침해에서부터 성적 차별이라는 문제까지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정치적인 의견들은 기존에 그 사소한 문제에 관심갖던 집단의 의견이 반영된 채로 정치적 의사가 결정되기 시작한다. 논란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그 의상을 문제시하여 지적한 집단들이 있었기 때문이니까. 정치인들이나 위정자들은 그러한 여러 논란들에 대해 법적-정치적 시각으로 그 기준을 정하려들지 않고, 단순히 논란을 잠재우자는 식으로 접근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외부적인 논란들이 쌓이고 쌓여 정치적, 법적인 기준을 건드리게 되는 동안, 그 기준들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소수의 집단 의견들의 기준으로만 결정되어 버린다. 물론 그 정도가 꽤나 심각한 사안일 경우에는 여론조사가 이루어지겠지만, 대체적으로 그 문제들은 갑작스럽게,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게끔 다가오는 것이 아니기에 개구리가 물에 삶아지듯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자뭇 심각한 문제다.
그나마 법적, 정치적 기준이 당위성을 갖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다수의 동의가 이루어졌다는데 있는데,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정치적, 법적 기준이 마련된다니.
이것은 심각한 문제지만, 이런 심각한 문제를 가져오는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논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논란'에 대해서 심각할 정도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국민을 무서워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일견 괜찮아 보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 두려움으로 비판 혹은 비난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여서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고, 애초에 '논란'거리 자체를 없애려 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논란이 일어난 문제들을 각자만의 소신이나 기준을 가지고,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아니라, 소신이고 기준이고 나발이고, 덮기에 급급해져서 '예예.'하고 굽신거리며 빨리 넘기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전반적으로 그렇다. 그래서 진짜 목소리 큰 놈이 장땡이 되어 버린다. 요즘 말하는 '떼법'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일견 그런 수순의 연장선이다.
그래서 사회는 갈수록 통제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엄근진한 분들이 나와서 자신만의 기준과 잣대를 들이밀면서 한소리씩 던지기 때문이다. 이건 이래서 불편하고, 저건 저래서 불편하고, 그건 그것 때문에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대부분의 논란거리는 선과 악으로 분명하게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기준에 의해서 충분히 불편해질 수도 있는 것들이며, 이것은 인류가 한명만 남아있을 때까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분쟁거리다. 결국 논란을 무서워하게 되면, 논란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아주 조금씩만 변화하거나, 기존에 있던 개방성 마저도 폐쇄적으로 바꿔버린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적질하는 분들이 무서워서 논란을 없애려 들지 말고, 나름의 소신과 기준에 맞춰서 지적질 하는 분들의 의견을 때론 과감히 무시하면서 혹은 조율하면서 천천히 정리해나가야 하는데, 과연 그런 인식 변화가 일어날지는 의문이다.
그런 사회를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논란에 대해서 끝가지 관심 갖고 결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 가지고 문제시하는 우리들 때문이고, 논란 그 자체를 두려워하여 없애려 드는 집단들 때문이다.
논란을 두려워하는 사회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 든다.
p.s
필자는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의 그 개방적인 분위기가 이미 많이 퇴보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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