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큰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겪는 심리적 외상.
종종 사람들은 트라우마라는 단어의 정의에 써져 있는 '큰 정신적 충격'라는 문구 때문에 본인들이 겪었던 마음의 상처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감기가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감기가 위협이 될 수 있듯이 마음의 상처 역시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웃고 넘길 사소한 상처들이 누군가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상처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더 전문의와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서 파악해야만 한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외상이면 좋으련만, 트라우마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상처다. 외상이야 수술하고, 깁스를 하고, 부목을 대고 나면 상처가 점차 아물어간다. 그리고서 마침내 X-ray를 보고서 "완치가 됐습니다!"라는 의사선생님의 판정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물리적으로 치료할 수 없다. 그저 상담을 해보고 괜찮아졌다고 여겨질 정도인지 점검하는 것에 그칠 뿐이고, 그 정도까지 끝없이 보듬고, 다독여줄 뿐이다.
트라우마는 생각보다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아주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가 어떤 계기가 생기면 가만히 떠오른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어느 순간 떠오르는 것이다. 그 상처를 다 극복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저 고통을 가리고서 안 아프다고 여긴 것일 뿐이다. 아픈 걸 계속 헤짚어봐야 낫지는 않고 아프기만 할테니까. 나도 모르게 톡 건드리면 상처가 콕콕 쑤시는 것이다.
그 계기는 무척 사소한 것들이다. 길가다 담배연기가 살짝 스쳤을 뿐인데 금연자의 담배욕구가 일어나는 것처럼, 차를 타고 가면서 지나쳤던 풍경이 기억에 뚜렷히 남아버린 것처럼, 아주 살짝 닿았을 뿐인데 떠오르는 것이다. 트라우마는 후각, 촉각, 시각, 청각, 미각으로 되어 내 주변을 끝없이 맴돌다가 슬그머니 등장한다. 그 순간 본인들은 그 기억들을 상기하며 괴로움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애써 다른 것들로 시선을 돌려서 넘어간다.
과거에 내가 썼던 몇몇 글들을 읽었다. 읽으면서 되살아나는 그 기억들은 늘 고통스럽다.
그 때 그 공포감과 무력감과 억울함.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나의 무력감과 대상을 마주했던 공포감과 증오감, 그리고 그러한 감정들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던 서운함까지도. 이제와서 과거 있던 일들을 미안해하는 사람, 미안해하지만 차마 사과를 못하는 사람, 여전히 낮잡아 보는 사람. 이제 와서 그들을 저주한다거나, 곱씹는다거나, 그러진 않는다. 별 생각이 없다. 그것들이 나의 현재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러나 이렇듯 어떤 사소한 계기로 상처가 콕콕 쑤실 때면 지난 날을 반추하며 그냥 가볍게 지나가듯이 "불행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저주를 뱉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내가 더 원하는 것은 처음부터 아무런 사이가 아니었던 것처럼 그들과 나의 관계가 깨끗하게 지워지는 것이다. 내 과거가 리셋이 되어 그들이 나에 대해 떠올릴 수 없도록 아무런 연관이 없는 완전한 타인이 되는 것이다. 그 때 그 시절의 아픔들이 나에겐 부끄러움이며, 도려내야 할 오욕의 역사같은 것이니까. 난 그저 우연히 그들을 만났을 때, "사람 잘못보셨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살아온 과거는 지워낼 수 없고, 한번 엮인 관계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혹은 모른다. 나만 그 기억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일지도. ......아마 이게 맞을 거라 생각한다. 그것들은 이미 내 머리 속에 저장되어 남아 있다. 그들에겐 그저 지나쳐간 수 많은 일상 중 하나였을 뿐인데, 나에게만 남아있는 것이다. 그건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아마 이 기억은 평생 내가 안고 가야할 것이다. 물감으로 도화지를 덧칠할 순 있어도 처음에 칠해졌던 물감을 지울 수는 없으니까. 얼만큼 나이를 먹어야 찌릿한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될까.
혹은 그 대상들과 대면해서 풀어내야만 이 고통이 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얽혀 있던 것들이 풀리지 않은 채로 끊어져 버린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이제와서 그 대상들을 만날 수도 없고, 꾸역꾸역 만나고 싶지도 않다. 그들은 웃으며 "야, 아직까지 그런걸 기억하냐? 그냥 장난이었는데" 하고 말할지도 모른다. 사소함은 상대적이니까. 어쩌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트라우마의 한 대상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우린 상처입고, 또 알게 모르게 상처입히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상처입을 것이고, 상처입힐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은 작은 파편으로 남아 트라우마가 될 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냥.... 나의 트라우마들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지 말라는 것과 우린 트라우마를 이겨내야 하고, 이겨낼 거라는 것이다.
자신이 아픈데, 그것이 타인이 보기에 사소한지 커다란 것인지가 왜 중요한가. 아프면 아픈 것이지. 애써 안 아픈척 자기 검열하고, 속으로 앓다가 곯아터져서 우리의 삶이 망가지지 않았으면 한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아파왔다. 앞으로는 안 아팠으면 한다. 우린 결국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마침내 우리의 삶을 되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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