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필자는 대한민국의 사회적 시선-눈치가 어떤 식으로 작동되는지 리포트를 쓴 적이 있다. 해당 리포트에서 필자는 남의 시선, 체면을 신경쓰는 문화가 마치 제레미 벤담의 파놉티콘처럼 모양생를 띠게 된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이에 대한 결론은 확고하다.
현대사회에 들어 SNS가 팔달하면서 우리는 너무나도 서로를 잘 감시하고 있다. 오히려 감시당한다는 느낌없이 자신의 일상들을 익명의 누군가에게 공유한다. 서로서로 공유하기에 SNS가 양뱡향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실상은 시선의 비대칭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무수한 가십거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한 쪽에서 무언가 일이 터지면 하루가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박제된다. 온갖 커뮤니티에서부터 유튜브까지도. 그렇게 인터넷에 업로드하는 사람은 인터넷에 손쉽게 접속할 수 있는 익명의 누군가들에게 강제로 털어놓게 되는 셈이다. 약간의 안전장치로 '친구에게만', '팔로워끼리만' 공유하는 기능이 있지만, 누가 어느 새 전체공개로 풀어버릴지 어떻게 알 수 없으며, 실상 인터넷 친구인 팔로워조차도 그 사람이 기록한 정보들이 정말 그 사람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물론 반대로 조작된 자료를 올리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러한 조작들은 다수의 익명들에 의해 검증당하여 손쉽게 밝혀지곤 한다.
여튼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선의 비대칭으로 인해 어떤 주장을 할 때 다수의 익명에게 욕먹을까봐 스스로 검열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인터넷이라고 막말을 쏟아내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자기주장을 할 때 도덕적인 것들을 끌고 온다. 내가 싫으면 싫은거고, 좋으면 좋은 것인데, 그러한 감정적인 부분을 밝히는데 있어서 최대한 도덕적으로 포장하려 든다. 내가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에 피해를 입었으니까 기분이 나쁘다든지, 내가 최대한 노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게 되었다든지, 나의 이러이러한 분노는 사회적인 정의, 도덕에 의한 것이라든지, 어떻게서든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내려 들며, 비난하는 자들 역시 어떻게든 자신들의 비난이 합리적이며,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라 포장한다.
감정이라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는가?
누군가에게 너무 예민한 것이 누군가에겐 당연시 되는 것일 수 있다. 감정에 대한 척도와 기준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 이해 못할 분노가 누군가에겐 평범한 분노일 수도 있다. 혹은 누구가에겐 도덕적인 것들이 누군가에겐 자신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일 수도 있으며, 또한 누군가 보기엔 상관없는 행동들이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수 많은 익명의 사람들은 뭐 하나 건수가 걸렸다 싶으면 잔인할 정도로 물어뜯으며, 그 물어뜯는 것에는 '너가 비도덕적이다.','너가 비인간적이다', '너가 잘못했으니 욕먹는 것은 당연하다'며 정당한 이유를 붙인다. 그들은 집단적 언어 폭력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도덕적 포장을 방패로 삼는다. 흔히 말해 욕먹을 짓을 했으니 너는 처단당해도 할 말 없는 악인이고, 악인을 욕하는 우리는 나쁘지 않다고 한다. 물론 그 욕먹을 짓도 고무줄 잣대로 판단한다.
(잘못된 행동을 보고 욕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영역에 한한 것이며, 공개된 장소인 인터넷에서 다수가 모욕을 주는 것은 분명히 다른 영역이라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인터넷을 공개된 장소가 아닌 개인적인 장소로 인식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는 댓글을 다는 이가 집이라는 개인적 공간에서 글을 작성하기 때문에 흔히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이나 감정을 밝히는 것을 주저하곤 한다. 그냥 내가 손해기 때문에 싫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온갖 도덕적인 가치를 끌고 와서 반대한다. 물론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그럴듯한 명분이나 이유가 있어야 하지만, 누군가를 설득할 목적이 아니라 그냥 감정적인 '싫다'고 개인적인 생각을 쓰는 것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진다. 왜냐면 일단 인터넷에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만인에게 보여주겠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결국 설득을 목적으로 쓰는 글이 아님에도 설득을 위한 글처럼 만인에게 도덕적 검증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대사회에서의 인터넷, SNS 발달은 인터넷 마녀사냥과 함께 자기검열을 강화하는 현대판 파놉티콘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p.s
물론 이 글에서 말하는 것과 정반대로 완전한 익명 뒤에 숨어서 마음대로 글을 싸재끼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은 완전한 익명성 덕분에 그런 짓을 하고 다닐 수 있는 것 뿐, 자신의 정보가 어느 정도 밝혀진다면 결코 그렇게 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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