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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에 대한 절대적 관념화, 이분법적 다툼

어둠속검은고양이 2019. 6. 8. 02:03

비가 그쳤네요.
생각보다 시원한 빗소리는 공기를 맑게 일깨워줍니다.

선(善)이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철학사에서도 아주 오래된 질문이지요. 원래 관념을 가리키는 두루뭉술한 단어들은 정의 내리기가 무척이나 힘들죠. 그리고 많은 논쟁을 가져와요. 단위를 가리키는 단어들처럼 관념적인 단어들도 딱딱 맞아떨어지면 삶도 한결 깔끔하고 쾌적해질텐데 그렇지 못하죠. 대신 재미가 없을 것란 생각도 드네요. 우린 결국 두루뭉술한 단어 위에 문명과 삶을 쌓고 있지요.

제가 뜬금없이 선에 대하 질문을 던진 것은, 많은 사람들이 선/악 이분법적은 사고에 한다는데 있어요. 이분법적 사고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에요. 오히려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이 어쩌면 좋을 때도 있어요. 다만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좁아지는 단점이 있지만요. 하지만 문제는 이분법에서의 선/악의 정의가 두루뭉술하다는데 있어요. 그건 마치 무게별로 물건을 쌓는데, 그 기준이 되는 무게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과 같아요.

우리는 수 많은 사건과 정치적 입장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들게 돼요. 그리고 그러한 사건들 중 어느 것들은 분명하게 선과 악의 대립으로 '보일 때'가 있지요. 이러한 대립에서 등장하는 가장 흔한 것 중 하나는 선에 대한 도덕적 정당성에 관한 흠집내기죠. 무슨 말이냐면, 많은 이들이 선은 뭔가 '절대적인 선'으로 가정해서, 선은 '모든' 일에 선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관념적으로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죠. 괜히 선과 악으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선이 아니라, 입체적인 사람이지요.
그래서 늘 선할 수가 없어요. 늘 선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현자, 불생, 선지자 같은 이가 되었겠죠. 경제적 대립에서 '선'의 입장을 보였던 사람이 외교부문에서는 '악'의 입장을 보일 수도 있지요. 그리고 그 사람의 사생활에서의 선악은 또 다른 문제구요. 결국 정의의 반대는 악이 아니라 또 다른 정의라는 말이 정확하다 생각해요.

애초에 현실의 문제들을 도덕과 선악의 개념으로 접근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이지요.
어느 새 현실의 문제 분석과 해결책에 대한 대책은 등한시 된 채, 선과 악의 대표주자로서 싸움하는데 치중하게 되지요. '어떻게 하면 저놈들을 악으로 몰아세울까?' , '어떻게 하면 선의 입장을 취하게 된 저놈들의 가면을 벗겨낼까?'와 같은 갈등만 연출되지요.

물론 도덕(일종의 선)도 현실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분명히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은 맞아요. 하지만 이러한 기치들은 어떤 이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선의 입장에 서게 된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철저하게 대립하는 이들을 없애야 할 악으로 규정할 뿐이죠.

예를 들어, 당장 굶어죽게 생겨서 빵을 훔친 아이가 있다면 우리는 이 아이를 두고 어떻게 이야기할까요? 어떤 이는 훔친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것이며, 굶주린 이들 모두가 저 아이처럼 도둑질을 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떤 이는 당장 굶어죽겠는데, 도둑질이 문제냐고 할지도 모르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도둑질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사람들은 모두 도덕을 모르고, 항상 비도덕적으로 살아가는 파렴치한 일까요? 아닐 거라 생각해요. 단지 그들에게는 극한의 생존이 도덕보다 더 중요한 가치라 생각하는 것 뿐이에요.

가치판단은 늘 사람에 따라 '상대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지요. 사람은 입체적이라, 어떨 때는 선의 스탠스를, 어떨 때는 악의 스탠스를 취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스탠스들은 결코 선/악의 스탠스가 아니라, 그저 자신들이 생각하는 상대적 중요 가치에 의한 스탠스 차이일 뿐이에요.

선이란 무엇일까요.
선에 대한 정의가 분명하게 내려져 있다면, 현실에서 상대방의 매도하는 것과 같은 이분법적 다툼이 사라질까요. 선악은 다분히 관념적이라 이론상에서나 명백하게 존재할 수 있을 뿐이에요. 현실은 그저 개개인이 생각하는 가치의 우선순위에 따라 달라질 뿐이고, 그 우선순위에 선악이 상대적으로 정해질 뿐이지요.

p.s

대한민국의 정치는 이제 선악의 이분법적 대립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느 것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가, 어떤 정책이 어떠한 장점과 단점을 지니는가, 어떤 정책이 '국가'로서의 의무에 적잡한 것인가. 등등 합리적인 분석과 우선순위 가치판단을 따져볼 수 있는 성숙한 민주주의가 오길 바라는 것은 제 욕심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