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화두가 된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쓰고자 한다.
바로 '여경'이다.
사실, 이 주제를 다루고 싶지는 않았다.
엄밀히 말해서, 조만간 사그라들거라 생각했고, '떡밥'이 식은 뒤에서야 내 의견을 적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화두는 생각보다 길어졌고, 최근에는 여성단체협의회에서 새로운 장작을 넣음으로써 기름을 부었다. <여성단체협의회에서 공권력 경시가 문제이기 때문에 여경체력검정 보완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해당기사 :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449361
이 주제에 관하여 필자가 할 말은 과거 '소방공무원 현장직 부족은 여성채용증가가 원인이 아니다'라는 것과 같다. 이는 사실 '여경' 이 문제라기 보단 국가의 채용 시스템이 문제인듯 하다. 하지만 외부인인 필자로서는 '필자가 생각한 방안들이 적용하기 힘든 것일까?'라는 의구심도 생긴다.
일반적으로 국가에서 공무원을 뽑을 땐, 직렬별로 구분해서 뽑는다.
그것은 전문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함이고, 공무원에 지원을 하는 이들도 그것을 감안해서 준비해서 지원을 한다. 그래서 직렬 상관없이 공무원이라는 타이틀만을 위하는 사람들은 경쟁률과 커트라인을 보면서 눈치껏 지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방직과 경찰직은 좀 다른 모양이다.
일괄적으로 뽑아서 성적이나 역량, 체력 등을 다 고려해서 배정하는 모양이다. 어째서 이런 비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소방직이나 경찰직도 직렬별로 나누면 안되나? 사실, 누구나 다 외근직보단 내근직을 선호할 것이다. 그러므로 외근직에는 특별수당을 지급하는 방향으로 맞추면 알아서 맞춰서 지원하지 않을까. 체력에 자신있는 사람은 외근직으로 지원할 것이고, 고생을 더 하겠지만, 그 대가로 돈을 더 많을 것이며, 체력보다 행정처리에 자신있는 사람은 수당을 좀 덜 받겠지만, 대신에 덜 고생할 것이다.
필자가 과거에 썼다시피, 소방직에는 현장직 외에 구급직과 행적직이 있는데, 관력학과와 자격증 때문에 구급직에 여성분들이 많이 몰린다는 것을 봤다. 이처럼 필요한대로, 직렬별로 나누어 뽑고, 그 직렬별로 기준을 달리 하면 되지 않을까.
경찰의 주된 업무는 치안담당이므로 외근직일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분야에 따라 내근직일 수도 있고, 체력보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홍보부서'도 있을 것이고, '사이버 전담팀'도 있을 것이고, '청소년 범죄담당'도 있을 것이며, '여성 범죄 담당'도 있을 것이다. 분야별로 범죄가 딱딱 떨어지진 않지만, 어느 정도 카테고리화 해서 나눌 수 있고, 그에 맞춰서 직렬별로 뽑으면 안되나.
당연히 특정부서 쏠림 현상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기피하는 부서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법으로 유도해나가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정부의 미숙한 대처'다.
시민들은 전문성을 갖춘 경찰을 원한다.
이러한 전문성은 체력, 지능, 친철, 봉사정신 등 여러가지가 있으며, 해당 가치들은 부서에 따라 좀 더 중요시되는 것이 다를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외근직, 강력계 형사들은 체력이 매우 중요요소로 꼽힌다. 번뜩이는 추리력, 눈썰미도 중요하겠지만, 일선에 서서 범인들과 물리력 싸움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체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근직에 해당하는 경찰을 뽑으려면 체력을 필수 요소로 뽑아야 하며, 그것은 성별적 격차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여성과 남성의 체력차가 있는데, 동일선상에서 기준을 정한다면 차별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렇게 말한다면, 사람들은 저마다 타고나는 지능이 다른데, 어째서 높은 지능의 사람들만 뽑으려고 하는가.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이는 지능이 낮은 사람에 대하여 지능차별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직업에 관하여 어떤 능력을 요구하는 기준은 결코 '성별'에 따라 고려해야 할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묘하게 성별갈등을 일으켜서 이득을 보는 것이다. 능력 요구에 있어서 성별 차별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애초에 성별을 이유로 '지원 자체를 금지하는 것' 단 하나다.
필수 요구 기준은 말 그대로 기준이며, 그 기준을 지원하는 사람이 맞춰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운동선수를 했던 여성분이 있다면, 당연히 외근직의 체력기준에 쉽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며, 이 여성분은 오히려 남성분들보다 더 일처리를 잘할 것이며, 시민들이 더 선호할지도 모른다.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이 기준점을 낮춰야 한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은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발생한다. 내가 컴퓨터를 못한다고 해서, 해커가 내 컴퓨터는 해킹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업무처리가 미숙하다고 해서, 거래하는 상대방이 나를 봐가면서 거래해주지 않는다.
정부의 주장대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없애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허나 치안이라는 가치를 생각했을 때 어떤 것을 우선 순위로 고려해야 되는지는 너무나도 자명하지 않는가? 솔직히 여성 차별을 없앤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할 뿐이지, '표 의식' 아닌가.
사회적 차별을 완화하기 위해 여성할당제를 채운다는 목표 아래, 자꾸 눈감고 아웅하는식으로 정책을 펼치는 것을 보면, 솔직히 말해서 진정 사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표'를 위해서 시스템이 개판 나든 말든 내 알바 아니라는 식으로 진행하는 것 같아 보여서 화가 날 뿐이다.
과거에도 누누이 말했다시피, 정책이라는 것은 부작용의 최소화가 중요하다. 시민들부터가 받아들이 수 없는 방향으로 정책을 진행한다면 그 정책은 원하는 목표 달성도 힘들어지고, 부작용만 난무하게 된다. '의도가 좋은 정책'을 밀어붙인다고, 정작 현실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입을 꼭 다문다.
여로모로 이번 사건이 '여경'에 대한 일방적인 혐오, 비난으로 인해 판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판을 키운 것은 정부였다는 것은 명백하다. 자신들의 채용 시스템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자신들의 시스템이 잘못된 것이 없다는 듯이 열심히 커버치면서, 비판하는 시민들을 향해 여성혐오로 몰아가는 것이야 말로 적반하장이다.
물론, 필자는 이번 사건의 여경을 비난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여경을 비난해서도 안된다. 그 분은 정당하게 지원했고, 그 기준에 합격해서 들어온 분일 뿐이다. 문제는 국가 채용 시스템이다. (어떤 이들은 이 사건을 빌미로 정말로 여성 혐오를 펼치며, 여경을 욕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의 비판 아닌 비난은 고려할 필요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저번 정부도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번 정부도 갈수록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마추어리즘을 떠나서, 전 전부의 불통을 비판하고 나온 정부가 전 정부의 불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자신들이 펼치는 정책에 대해 어떤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현실을 외면한채 밀어부치기만 한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이제 정책에 대해서 잘 까지 않는다. 의미가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비판을 하고, 주장을 해도 정부는 말을 듣지 않는다. 오로지 그들의 표를 위해서만 활동하기 때문이다. 진보는 시민단체의 표만을 의식하고, 보수는 자신들의 지지자들(지배층)의 표만을 의식한다. 정치권의 저 모습들이 마치 통일신라나 고려시대 말 중앙귀족들의 밥그릇 싸움 같아보여서 냉소만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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