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조금씩 잦아들고 있지만, 여전히 논의 중인 낙태죄에 다루고자 한다.
이 논쟁은 끝없이 계속 된 논쟁으로서, 단지 합의의 정도 문제일 뿐 정답은 없다.
최근에 낙태법에 관하여 헌법불합치 판결이 떨어졌다.
현재 대한민국은 특정한 경우를 제외하고 원칙적으로는 낙태를 금지시키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낙태를 한 당사자와 시술을 한 의료인에 대하여 형법상으로 처벌을 하고 있다. 해당 법을 헌법재판소에서는 헌법불합치로 판단하였으며, 헌법불합치는 실질적으로 해당 죄가 위헌이라 판단되지만,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임시적으로나마 유지하되, 조속히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낙태에 관해서는 부분 찬성, 부분 반대, 완전 반대, 완전 찬성, 그 외 등등 수 많은 정치적 대립이 있으므로 다 다루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핵심이 되는 '충돌 지점' 자체에 대한 분석만을 할 예정이다.
낙태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태아의 생명권/여성의 자기결정권 이 두 가지다.
왜냐면 낙태는 이 두 권리를 저울질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말이 '태아를 어디까지 생명으로 볼 것이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낙태는 이미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한 상태에서 어떤 권리를 더 우선시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기 때문이다.
즉, 낙태에 찬성하는 쪽이든, 반대하는 쪽이든 '태아가 생명'이라는 것에는 합의된 상황이다. 하지만 '살인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신화에 가까운 도덕적 관념으로부터 비난을 피하기 위해 태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는 것 뿐이다. 낙태에 관하여 '태아를 어디까지 생명을 볼 것이냐?'에 대한 논의는 (법적 정당화가 아닌) 도덕적 정당화 과정에 대한 논의일 뿐이므로,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낙태의 찬반여부를 따지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낙태의 중요 본질인 산모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논의를 사라지게 만든다.
이런 '태아를 어디까지 생명을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낙태와 연과짓게 되는 과정은 아래와 같다.
태아가 생명이 아니다 -> 살인이 아니므로, 낙태를 찬성해도 무방하다.
태아가 생명이다. -> 살인이므로, 낙태를 반대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 속에는 낙태 찬성하든/반대하든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다'라는 대전제가 숨어 있는데, 이러한 대전제를 깔고서 논의하게 되는 까닭은 '살인의 정당화'라는 무게가 대중의 지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애초에 낙태는 태아의 생명권 vs 자기결정권 이다.
이러한 법률적 판단은 권리간의 이익형량을 따지는 것일뿐, 낙태를 찬성한다고 해서 살인자라고 도덕적으로 비난할 필요도, 비난받을 필요도 없다. 그건 단지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한 전술에 불과하니까. (물론, 대중의 지지에 의해 공론화되면 법률도 달라지므로, 정치적 힘싸움으로서 중요한 전략이긴 하다.)
마찬가지로, 낙태는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보는 것이라는 주장도 대중의 지지를 위한 정치적 전략에 불과할 뿐이다. 생명권 vs 자기결정권에서 낙태를 죄로 보는 것은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여성을 출산도구로 보기 때문아닌가? 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잘못된 시각이다.
두 권리가 명백하게 대립할 때, 어느 한쪽 권리를 좀 더 인정한다는 것이 다른 한쪽 권리를 개무시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맞지만, 어찌됐든 두 대립적인 극한의 상황에서 법은 판단을 내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낙태를 하지 않으면 산모가 위험한 극한의 상황에서 산모의 생명을 택할지, 아이의 생명을 택할지 결정의 근거가 되는 것은 결국 어느 삶을 살렸을 때 더 큰 이득인가 고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정도의 문제인 셈이고, 이러한 정도는 시대적 변화, 인식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가령, 지금 논의되는 것 중 하나가 22주까지 낙태를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것인데, 10주 이후부터 낙태를 금지하면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보는 것이고, 22주 이후부터 낙태를 금지하면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보지 않는 것인가? 낙태 허용 기간에 따라 여성을 비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달라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출산의 도구로 바라본다는 주장은 낙태의 전면적인 반대에 의해서만 해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낙태를 허용할 수 있는 기간을 두는 것은 이익의 형량에 따른 여성의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두 가지 권리를 함께 고려하기 위함일 뿐이다.
정리하자면, 낙태는 생명권 vs 자기결정권 중 어느 것은 좀 더 우위로 둘 것이냐에 대한 결정이다. 태아를 어디까지 생명으로 볼 것인가 혹은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보는 비하적 시각이 숨어 있다는 두 주장은 대중의 지지를 위한 정치적 전략에 불과할 뿐 낙태에 대한 논의와 별개 사항일 뿐이다.
p.s
사형제는 또 다른 논의이긴 하지만, 이것 역시 살인의 정당화에 대한 논의로서 연관이 있다.
애초에 낙태죄와 사형제 모두 이익의 형량에 따른 살인의 정당화에 대한 논의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살인(낙태/사형)에 대해 제도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인 셈이다. 하지만 이 역시 각각의 주장에 대한 의견이 논리적으로 일치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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