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실/잡념들-생각정리

생의 감각

어둠속검은고양이 2020. 1. 16. 15:58

감각을 뚜렷하게 느껴본 적이 언제였더라?

생의 감각이 옅어진다는 느낌이 들때가 있다.
하루하루는 그냥 흐드러지고, 속시원하게 화내거나, 울거나, 웃어본 지도 오래다.

그런 의미에서 익숙해진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아, 새해부터 이러면 안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먹는 것도 그냥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하나의 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가끔씩 어떤 음식이 먹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것 역시 피상적인 느낌에 그칠 뿐이다.

옅어지는 생의 감각 만큼 삶의 경계는 희미해져 간다.
내가 살아가는 것인지, 살아가고 있는 것이 나인지.
도통 알 수 없다.

아니면 살아지고 있는 것인가?
왜 사는가?와 같은 현실도피적 생각들이 내 머리를 맴돈다.
그렇게 무기력은 서서히 내 몸을 감싸 안는다.

생의 감각의 실종
무기력해진 나
왜 사는가? 와 같은 답없는 생각들

그건 우울증에 들어서는 문턱에 있는 것과 같다.


이윽고 욕망을 내려놓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벼룩을 병에 가두면 뛰어오르는 높이가 서서히 작아지듯이 그렇게 나를 작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선 보상받기 손쉬운 것들을 탐닉하기 시작하고, 그렇게 뇌도 몸도 서서히 망가져간다.

내려놓음으로써 자유로워지고 있다.
이건 일종의 자기 방어이자, 자기 암시에 가깝다.

내려놓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나 자신이 내려놓은 것이라고 말해도 시선은 여전히 위를 머문다.
내려놓은 것도, 그렇다고 쟁취하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

포기하면서 살아가야하는 이 시대에선 많은 이들이 그렇다.
오직 소수만이 투쟁의 기쁨을 맛보고, 그 투쟁 속에서 내려놓음을 깨닫고, 그 깨달음을 설파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쟁조차 하지 못한 채 내려놓아야만 한다. 일본에서 불리던 빙하기 세대(잃어버린 세대) - 지금이 바로 그 시대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그 세대들을 해결할 의지가 없다. 이미 버린 카드고, 외노자를 수입하거나 그 다음 세대를 중심으로 정책을 짜고 있다. 그렇기에 이 세대는 그 어떤 세대보다도 '수저론'이 절박한 세대다.

그렇다고 우린 정부탓, 사회탓할 수는 없다.
원래 세상은 자기가 개척해나가야 하는 법이다.

시대운이라든가, 행운이라든가, 타고난 유전자라든가 뭐 그러한 것들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 내가 갖고 있는 걸 어떻게 굴리느냐로 내 인생이 돌아간다. 물론 갖고 있는 것에는 차이가 좀 나지만서도. 현실이 가혹하다고 징징대봐야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현실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우린 스스로가 일어서야만 한다.


..........
가만히 누워서 눈을 감고, 나의 호흡에 집중해본다.
그리고 내 귀에 어떤 소리가 들려오는지, 내 몸에는 온기가 느껴지는지, 한기가 느껴지는 집중한다. 손과 발을 천천히 움직이며 느껴지는 촉각들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내가 내 몸으로 무언가를 느껴본 적이 얼마만인가.

흐드러져가는 하루하루와 생의 경계를 일깨운다.
왜 사는가? 라는 도피적 질문 따윈 던져 버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현실적 질문을 떠올린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이고, 어떻게 가고 싶었는지 생각한다.

무기력을 벗어나는 건 굉장히 어렵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것을 우린 스스로 극복해내야만 한다.

우린 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생의 감각을 되찾으며, 앞날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넘어지면서.

미래는 분명 불안하다.
그러나 난 희망찬 미래를 그려낼 것이다.